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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카프카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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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가 걷히고 들꽃 화관이 떠내려가는 풍경]

첫인상은 평생 간다고 했던가. 처음부터 던지는 궁금증을 반기며 표지를 찬찬히 훑어본다. 멀리서 능선에 걸린 해가 보인다. 여명인지 해거름인지 모를 해는 하늘과 땅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언덕 정상에는 웅장한 성곽이 돌올하게 서 있다. 성 쪽으로 난 구불구불한 오솔길 하나가 선명하다. 은은하면서도 감각적인 파스텔 색조의 책 표지다. 누가 봐도 단번에 카프카의 성을 연상하게 한다. 그 성을 바라보고 서 있는 한 사람, 아마 작가 자신이라 생각된다. 왜 작가는 첫 장을 펼치기도 전에 망연히 성을 바라보는 일로, 입을 열기 시작했을까. 어쩌면 이 무언의 초점은 가고자 하나, 닿을 수 없는 곳이 이데아의 세계이며, 소설가이자 생활인의 숙명임을, 즉 미로를 헤쳐 나가는 게 삶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자의 뒷모습이 아닐까.

작가는 2016년 단편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을 첫 책으로 냈다. 이후 에세이집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과 엄마의 뜰을 썼고, 2025년에두 번째 단편소설집 뜻밖의 카프카를 출간했다. 첫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에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소설가적 위트라는 핀셋으로 틈틈이 박힌 인간성을 발굴하는데 탁월했다. 두 편의 에세이에서는 소설에서 펼치지 못한 작가의 평소 풍경을 볼 수 있다. 가족, 사회 속 인간관계, 문학과 작가로서의 눈을 수채화처럼, 한 편의 콩트처럼 깔끔하고 다정한 문체로 펼쳤다. 드디어 두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전보다 더 현란한 밑줄이 그어졌다.

이 책은 총 8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상황에 따라 취하는 본능과, 위악, 위선을 밀도 있게 파헤쳤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이중성에 대해 작가는 현미경을 들이대듯 추적했다. 그 이중성도 무엇 때문에 더 따뜻한 쪽으로 기우는 자와, 차가운 쪽으로 향하는 자로 나뉘는지를 묻는다. 유리나 월산아재, 오디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도금이나 미희, 캄란콩이나 기찬세같은 캐릭터가 있다. 작가는 인물들이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본인은 물론이고 타인 인생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그렇게 본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영향 받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인간의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질문한다 . 독자여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헬리아데스 콤플렉스]

중학교 동창인 유리와 도금, 이들보다 열 살 아래인 지수, 세 여성이 나온다. 사심 없이 양보하고 배려하는 게 천성인 유리와는 반대로, 도금은 무례하고 거침없다. 자기 본능에만 충실한 일차원적인 인물이다. 그 두 친구와 함께 우정을 나누는 지수는 관찰자적 인물이다. 도금은 투자차 사놓은 적산가옥에 무단 침입해 사는 독거노인을 내쫓으려고 전기 차단부터 하겠다고 말한다. 반면에 유리는 그 노인을 위해 무료 급식소와 구청을 수소문하고 도금을 설득해 보겠다고 한다. 또한 덤불에 숨겨둔 텀블러를 잃고도 “누군가는 그 덕에 따뜻한 겨울나겠지.”라며 오히려 미안해할 지수의 입장을 생각한다. 자신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난처한 순간의 타인을 모른체 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유리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아무나 못 하는 행동을 마땅하다는 듯이 실천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작가는 유리를 통해 보여준다. 이들의 일련의 대화와 행동에서 콤플렉스란 스스로 그렇다고 인지했을때 콤플렉스이고, 천성에서 우러나는 행동은 그만의 기쁨이자 고유한 성정임을 깨닫고 지수는 한없이 무해한 유리를 그 자체로 인정하게 된다.

[내 모자를 두고 왔다]

보랏빛 꽃이 만발한 시드니 거리 한 모퉁이 벤치에 시집을 낀 한 사내가 있다. 스물네 해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시인이 된 남자다. 그 주위는 자카란다 꽃이 휘황하게 흩날린다. ‘모자를 두고왔다’라는 모호한 제목의 시집을 품고 화자를 기다리는 남자 마린. 실재인지 환영인지 화자의 바람인지…. 화자는 독서치료사다. 마린이 수감된 교도소에서 수요일마다 독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마린의 독특한 아우라에 끌린 화자는 그를 주시하며 소소한 부탁도 들어준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마음상함'에 대해 털어놓는다. 과거에 그는 죄를 짓고 자책과 공포에 떨며 엄마 집으로 숨어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아들에게 피자를 시켜준다. 막 먹으려던 순간 들이닥친 경찰에게 끌려 나온 마린은 그날부터 수인이 되었다. 사랑의 완전체, 용서의 종착역인 엄마가 사준 피자가 내동댕이쳐지던 날의 장면과 냄새를 마린은 잊지 못한다. 그 장면을 봐버린 엄마는 평생 허깨비처럼 현장에 박제되어 있었을 테다. 그 마음을 단번에 헤아린 화자는 송별 파티에서 피자를 시켜준다. 어쩌면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을 지켜준 화자때문에 마린은 더 구체적인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소한 환대가 어떤 이에게는 꿈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십 년 뒤엔 자카란다 꽃 아래서 시를 쓸 거라는 마린, 그가 그리는 내일은 <모자를 두고왔다>라는 시집 제목이 상징하듯이, 진실한 자신과의 만남을 추구하리라는 선언임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마린을 통해 화자도 자신의 모자에 대해 생각한다.

[뜻밖의 카프카]

가장 가까이서 상대의 삶을 궁지로 몰아가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 있다. 가깝기에 당연함을 가장한 일들이 한 사람의 생을 쥐락펴락한다. 소리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다치는 타인의 마음에는 무관심하다. 첫사랑 해도 때문에 사랑이라는 거대한 환에 사로잡혀 눈물 좀 흘린 로사, 로사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다 꿰고 있는 대학 친구 미희, 소심한 예민남이자 잔소리꾼인 로사의 남편 군소를 중심으로 인간 심리를 깊이 파헤친다. 미희가 로사 일기장을 훔쳐보고 로사의 남자 친구에게 은밀히 흘리는 심보는 사악하다고밖에 표현이 안 된다. 머리 검은 짐승 거두지 말라는 옛말이 괜히 나왔겠나 싶다. 미희의 의뭉한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 신의는 상호작용할 때 온전하다. 한쪽은 그러한데, 다른 쪽은 농락이나 가벼운 농담 수준에 머문다면 인간사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믿음도 보이지 않는 허상인데 그것을 지키는 자의 고결함은 누구나 꿈꾸지 않는가. 살다 보면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때가 있다. 친구 미희의 이중성에 이는 환멸, 끝을 알 수 없는 피곤한 심리 게임으로 평온해야 할 부부간 정서가 불안으로 잠식당할 때, 로사는 카프카라고 외친다. 대학 시절에 모순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카프카를 외쳤던 기억을 소환한다.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그런 게 세상이지 어쩌겠어,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거지 하며 부조리를 인정하고 스스로 내일을 모색해 나가는 일이랄까. 한없이 무거운 주제를 유머와 초월의 느낌으로 가볍게 치환하며 스스로 살길을 찾는다.어떤 이들과는 공정한 게임을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비난받을 이유가 있는 자들 곁에 넌지시 도화선을 연결해 놓고 도망가는 건 죄가 아니었다."라고 하며 고통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나려는 로사의 행동 앞에서는 통쾌했다.

[안개기둥]

언젠가는 다시 부닥칠 장면임을 예감하는 순간이 있다. 혼자만 알되 반드시 되새기게 되는 일이다. 어릴 적 수안마을에서 보고 겪었던 사건은 평생 화자의 삶을 따라다니며 제 역할을 한다. 언젠가는 소설로 등장하리라는 예감은 적중한다. 오십여 년이 지난 후 화자는 기억을 현실로 꺼내 과감히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생에 알 수 없는 그늘을 드리운 어린 날의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을 근동의 이단아 캄란콩. 베트남에 참전했던 일이 유일한 훈장인 젊은이다. 그와 대척점에는 연파시의 양반이자 수안의 선비인 월산아재가 있다. 마을이 수몰 지역으로 포함되어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야 한다. 떠나기 전 개인재산을 보상받는 문제로 캄란콩은 월산아재를 닦달하며 위협한다.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아는 월산아재가 어떤 방법으로 캄란콩 자신을 위해 힘써놨는지도 모른 채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오기를 품는다. "적의가 쌓이면 판단력을 잃게 되는 모양이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모든 게 끝난 뒤였다." 그날 화자는 빨간 고무대야를 타고 강을 건너오던 월산아재를 보았다. 강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캄란콩도 보았다. 비록 얄미운 순경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광경을 보았을 뿐이다. 홀로 목격했다. 이 일 때문에 화자는 오십여 년이 우울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목격자의 딜레마다. 우연히 눈으로 본 어떤 상황을 인지했을 때, 그 순간부터 목격자는 참여자가 된다. 참여자로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는 또 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제각각이다. 사실을 하나의 진실에 맞추어 해석하기에는 인간의 다양한 입장 때문에 정답이 없다. 결국 월산아재가 사망한 것은 지병에 의한 사고사일 수도, 안개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화자가 생각했던 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기에 면죄부가 될만한 뜻밖의 변수도 알았다. 월산아재가 강조한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화자는 어릴 적부터 그분의 고고한 인격체를 우러르며 자랐다. 그런 화자이기에 자신을 속이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테다. "인간에 대한 도의와 사랑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아재의 한결같음에 목이 메었다."라고 뇌이며 화자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어서 강 주위의 야생화를 꺾어 화관을 만들어 강물에 띄운다. 사죄의 마음을 담아 아재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혼자만의 애도식을 치른다. 묻혀서는 안 될 어떤 삶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십여 년이 흐른 뒤에야 어린 화자를 바위처럼 누르던 죄책감도 강물에 떠내려간다. 수안 마을을 드리운 안개가 걷히고 있다.

[따뜻한 컵 프로젝트]

화자는 서른 후반의 노처녀 양난이 부팀장이다. 약간의 허당끼에 소심한 성격이지만 염치가 있는 인물이다. 방송용 영상을 제작하며 음악과 네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화자의 입사 2년 후배인 기찬세는 같은 프로젝트 총책임자이다. 화자의 아이디어까지 도용해 가며 직위를 추월한 시류에 강한 인물이다. 이들은 웜 컵 프로젝트라는 오류투성이의 실험을 방송영상으로 제작 중이다. 확정된 답을 전제로 만들어야 하는 난감한 상태다. 심란한 마음으로 카페에서 팀원들을 기다리던 화자는, 한 노년 커플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한때 무명의 남자배우와 유부녀 유명 배우였다. 드라마를 찍다 사랑에 빠졌고 통속적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관계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관계를 청산하고 마음이 흐르는 대로 서로를 선택한다. 비난과 자책도 스스럼없이 끌어안는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카페에 앉았다가 나올 때는 티슈로 테이블 위를 훔치고 나오고, 햇살 부드러운 아파트 마당에서 서로의 머리를 잘라주며, 한때 신세졌던 친구가 위급하다는 소식에는 곧장 달려가는 인지상정을 아는 사람들. 물욕도 허세도 다 비운 자리에는 자유와 마음의 평온이 들어찼다. 스스로 선택한 후에 오는 폭풍은 기꺼이 감당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간 견우옹과 수로부인이다. 급하게 친구 위문을 가면서도 무슨 꽃을 사 가겠느냐는 수로부인의 질문에 견우옹은 ‘올라꽃’ 이라고 답한다. '올라'는 안녕하세요! 라는 스페인어 인사말이다. 좋은 생각임을 인정한다는 마음과, 설사 부정적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도 올라를 외치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동그래지는 걸까. 한 송이의 꽃을 보는 것처럼 순한 마음이 되도록 자기암시 하는 걸까. 팀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것도 얼토당토않은 실험 결과가 나왔다.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결과가 강요된 픽션이 되어버린 황당한 임무를, 사명인 양 행하는 기찬세의 모습에 씁쓸했다. 한때 화자는 기찬세에게 마음을 둔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이 안 맞아 그와는 모든 게 꼬인다. 어쩌면 조작의 프로젝트가 기찬세 자신을 대변하는 무의식이 작동했을까. “취중에 말싸움이라도 난 걸까.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다. 술 핑계 삼아 완력 좋고 펀치력 강한 누군가가 기찬세를 한 방에 눕혀줬으면 좋겠다.”라는 화자의 속마음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진실은 조작할 수 없다. 과감히 껍데기를 벗고 내면과 마주한 후, 순연하게 여생을 누리는 견우옹과 수로부인의 모습을 보았다. 꼬인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왜곡의 부당함을 따지는 용기 있는 인물 오디도 보았다. 화자는 이제 허위의 창을 과감히 깨부순다 “조작하는 마음은 결코 따뜻한 컵 프로젝트가 될 수 없다.”라는 확신으로, 그녀도 노부부를 따라 ‘올라’ 라고 호탕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통렬하나 머뭇거리기도 하고, 진솔하면서도 투박한 인물들을 만났다. 작가에게 축적의 시간이 치열한 창작의 기간이었음이 전해진다. 미궁 속에서도 어김없이 따뜻하게 비추는 해 같은 존재들 때문에 희망을 발견한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면서도 남에게 무례하지 않는 법, 더 나아가 타인을 향한 인간애에 자신의 작은 손해쯤은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돌고 도는 게 순리이듯 거짓의 토양 위에는 평온의 싹이 돋지 않는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 그리고 삶을 누리라. 이 순리를 작가는 명쾌한 문장과 맛깔스러운 은유로 독자에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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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28 1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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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바꾸는 미래세상과 메타버스
안종배 지음 / 광문각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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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버스라는 단어가 근래에 자주 눈에 띄었다. 뜻을 알기 전에는 가상 버스를 타고 미래 세계를 탐방하는 정도로 생각했다. 메타 버스란 현실 세계와 같은 차원의 가상 세계를 칭한다고 한다. Meta+Universe 의 줄임 말이다. 하지만 내 방식대로 이렇게 규정하겠다. ‘가상 버스를 타고 차원의 세계로 진입하는 단계’ 라고

 

요즘은 한 걸음만 나가도 인공지능이 있다. 집안의 가전 기기부터 현관 도어락, 자동차 스마트키, 각종 건물의 코로나 체온 측정기 등, 도처에 인공지능과 관련 있다. 의식하지 못한 틈에 일상에 깊이 침투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 주었다. 첫 장은 인공지능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후 인공지능이 바꾸는 메타 버스 생활, 비즈니스, 직업, 미디어, 예술과 콘텐츠, 교육, 인공지능의 윤리, 종교에 관해 분석하고 통계를 보여 준다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란 용어는 1956년 다트머스 컨퍼런스에서 처음 소개되었다고 한다. 인공지능의 개념은 머신 러닝(기계 학습)과 딥 러닝(심층 학습)으로 분류한다. 여기서 딥 러닝의 중요성이 눈에 띈다. 딥 러닝의 원리는 인간의 뉴런과 시냅스를 본 딴 인공 신경망을 이용한 알고리즘 영역이다. 인간 지능에 정서 영역까지 넘나드는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의 소재는 딥 러닝에서 기인함을 알 수 있었다. 

 

인공지능은 음식 문화를 바꾸었다. 인공 셰프도 등장했다. 이젠 메타 버스에서 가족이 함께 식사도 가능하다. 최신 유행 패션 트렌드도 개인 별 맞춤으로 추천해 준다. 인공지능은 각 개인마다 최적화된 결론을 추천한다. 의료 혁명도 인공지능에서 출발했다. 헬스 케어는 질병의 진단과 예방, 관리 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요즘 스마트 워치가 대세다. 기본 기능 외에 혈당, 체지방 , 심전도 측정 등, 의료 기능도 있다. 이렇게 헬스 케어 라이프 영역은 인공지능이 일상과 밀접한 관계임을 보여준다

 

핀테크(Fintech)란 금융(Finance)+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다. 핀테크 또한 일상에 깊이 침투했다. 인터넷 은행, 간편 결제, 디지털 화폐등 인터넷 쇼핑이나 송금과 결제 시스템이 핀테크의 일부다. 이렇게 인공지능을 거치지 않고는 일상이 마비될 지경이다. 아이폰의 시리, 삼성의 빅스비는 음성 인공지능의 대표 격이다. 알람과 검색등 비서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러다보니 직업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앞으로는 사라질 직업군이 많다고 한다. 주로 단순 반복작업을 하는 일이다.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노동을 주로 하는 직업 5년 내에 사라진다고 한다. 대신 창조 융합형 직업 형태는 부상한다고 한다. 뜨는 직업으로는 주로 인공지능 전문가나 빅데이터 분석가등 정보와 창의력을 바탕으로 하는 직업군이다.

 

예전에 <너를 만났다라는 티브이 프로그램을 보았다. 영상 편집 복원 기술을 이용해 보고 싶은 사람을 재현해 만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딸을 잃은 엄마가 딸을 만났다. 사랑하는 아내를 보고 싶어 신청했던 가장도 있었다. 생전 모습과 가장 흡사하게 복원한 가상의 인물은 그들에게 살아있는 것처럼 나타났다. 사랑하는 이의 환영을 붙들고 오열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울었다.. 보고 싶은 마음은 사랑의 본능이다. 곁에 있을 때 마음껏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인간은 죽으면 흙이 다. 인간 유한성의 한계를 인공지능이 해결해 준 셈이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콘텐츠는 예술의 영역에도 많이 쓰인다. 대표적으로 영화 아바타의 실감 영상 기법이다. 가상현실을 증강현실로 살려 홀로그램을 도입해 다양한 캐릭터를 창조한다. 아바타의 인물과 가상의 자연공간 등 인공지능을 활용한 콘텐츠의 영역도 광활하다. 영화 <Her> <AI> <Never let me go>는 인공지능 인간과 인간의 사랑을 주제로 담았다. 사랑의 감정이 인공지능 인간에게도 같은 형태로 작용하는가를 질문하는 영화다. 나아가 그 불멸의 명제를 인간과 인공지능 인간의 "관계"를 통해 확인시켜 준 영화다

 

인공지능은 정치 영역에서도 활용한다. 이들은 인간 정치인과는 다르다. 욕심이 없고, 조직의 이익을 대변하지 않는다. 빅데이터를 활용해 최적의 정책 설정을 할 수 있다. 뉴질랜드에서는 세계 최초 AI 정치인 이 등장했다. 무한대 정보 저장력과 편견이 없는 성향으로 정치인으로는 최적이라고 한다. 이런 추세라면 인간의 능력을 추월한 인공지능 인간은   협업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듯하다.

 

언택트 수업도 인공지능을 활용한다. 앞으로는 단순 암기식 교육을 주로하는 과목의 교사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대신 인간 교사는 정서적 지지자, 멘토로서의 역할을 맡는다. 현장 교육에서도 많은 교육 혁명이 예상된다. 인간 모든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Singularity 지점이 되었다. 이 때문에 인공지능 윤리를 만들었다. 무분별한 인공지능이 기본 윤리를 지키지 않아 생길 부작용을 미리 차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애초에 인간을 이롭게 하기 위해 만들었다. 결국 인공지능 인간도 태어났다. 로봇 윤리 13개 항목이 있다. 그 첫 항목은 로봇으로부터 인간의 존엄과 인권 보호다. 어떠한 이유로도 인간을 헤치는 인공지능은 존재 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든 로봇도 필요 없을 때는 가차없이 폐기처분한다. 단순 로봇이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영화 속의 감정을 가진 인공지능 인간이라면 크게 다르다. 인공지능 인간에게 딥러닝 기술로 사랑이라는 영혼을 심어 놨을 때 영화 <AI>의 소년 데이비드처럼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인간은 무한 존재가 가능한 인공 인간과의 관계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인공지능은 인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함은 의무다. 신은 인간을 창조했고 인간은 인공지능을 창조했다. 인간이 온갖 죄에 빠졌을 때도 신은 인간을 버리지 않았다. 만든 이상 의지대로 선하길 기다렸다. 이제 인공지능이 바꾼 메타 버스시대가 왔다. 인간의 창조물인 인공지능이 의도치 않은 부작용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을 갖게 된 로봇이 통제 영역을 넘을 수도 일을 터이다. 문제의 심각성이 예상된다.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다.

 

저자가 말하는 미래 세상은, 인공지능이 초대하는 메타 버스의 세계다인공지능과 불가분의 관계인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미래 세상이 선명히 그려진다. 이제 인공지능 시스템의 선한 영향력을 맘껏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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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곁에서 내 삶을 받쳐 주는 것들 - 고전에서 찾은 나만의 행복 정원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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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수 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때 대부분 과거 경험을 기준으로 미래의 방향을 결정한다. 실제 경험이나 추체험이나 경험의 형태로 자리 잡은 근거는 한 사람의 앞날을 재편성 한다. 많은 문학 작품에서 만나는 추 체험은 순간마다 어떤 기로에서 선택이 어떻게 미래를 바꾸는지 알게 해준다. 이 책은 꾸준히 책을 읽던 저자가 고전에서 찾은 삶의 지혜를 구체적으로 일러준다. 고전이 주는 추 체험의 감동은 일상으로 연결된다. 저자는 고전을 통해 삶의 방향을 잡았다. 결국 사업체도 성공으로 일구었다. 고전에서 얻은 지혜를 이 책으로 묶었다.

 

총 6장의 대제에 인생의 다양한 주제를 풀었다.

자신에게 이르는 길부터, 사랑이란 무엇인가, 삶의 욕망, 삶의 의미, 마지막으로 행복에 대해서 묻고 답한다. 고전 속에서 삶의 핵심 주제들을 풀어 간결하면서도 선명하게 주제를 도출해 필력이 탄탄한 책이다.

 

자아를 이야기할때 헤세의 데미안은 고전의 대명사 격이다. 데미안의 서문에는 이미 우리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라고 말 하며 시작한다. 끝없는 삶의 여정은 나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행복도 불행도 남의 탓이 아니다. 내가 발견하는 것이고 나로 인해 나타나는 과정이다. 마지막 길에 당도하기 전 까지는 모든 길이 과정이다. 과정 속에서 성장과 후회를 반복한다. 그래서 삶의 여정이라고 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의 인생을 결정하는, 네 안에 있는 것은 그걸 벌써 알고 있어. 이걸 알아야 할 것 같아. 우리 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하고자 하고, 모든 것을 우리 자신보다 더 잘 해내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이야.”

자신의 능력을 믿고 묵묵히 나아가는 인간의 길을 말하고 있다. 해결 할 수 있는 능력도 파괴될 위험도 모두 자신의 능력 안에 있음이다. 그저 자신의 길을 가는 인간의 여정을 저자는 소설 데미안을 통해 보여준다.

 

그 사람을 드러내는 것은 그가 어떤 책을 읽느냐를 보면 된다고 한다. 프랑스 실존문학의 거장 사르트르는 어릴 적부터 책에 둘러 쌓여 살았다. 아버지가 사망 후 엄마와 외가에 들어간다. 학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서재는 내향적인 사르트르에겐 최상의 놀이터였다. 글을 몰랐을 때는 책장을 넘기고 책을 만지는 감촉을 사랑했다.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로 읽는 흉내를 내며 독서를 갈망했다. 그런 사르트르의 즐거움은 독서광으로 발전했고 책 속에서 무수한 인물과 상황을 만나고 경험한다. 그의 사고의 확장은 학문과 문학을 파고드는 즐거움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한 사람의 문학의 거장이 탄생한 연유도 어릴 적부터 책을 가까이 함으로써 가능했다. 누구나 자신의 길이 있다. 저자가 사르트를 부른 이유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사실을 사르트르 경험의 예로 보여준다.

 

알랭 바디우는 진정한 사랑이란 공간과 세계와 시간이 사랑에 부과되는 장애물들을 지속적으로, 간혹 매몰차게 극복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해 본다. 잠시 흥분되고 뭐든 할 것 같은 일시적 감정을 흔히 사랑이라고 착각 할 때가 있다. 그 순간이 아니면 영영 달아날 것 처럼 위태로운 감정의 고조를 사랑이라 생각할 때도 있다. 하지만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의 이 문장을 보면 정신이 번쩍 든다. 여우가 말한다. 내 비밀은 이런거야 그것은 아주 단순하지. 오로지 마음으로 보아야만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너의 장미꽃을 소중하게 만든 건 네가 그 꽃을 위해 쓴 시간 때문이란다.”

저자는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여우의 입을 빌려서도 보여준다. 사랑의 장애물을 지속적으로 매몰차게 극복해 가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한 말처럼 진정한 사랑은 고난을 함께 해쳐 나가는 지속성에서 완성 된다고 강조 한다. 사랑의 지속성, 어쩌면 그 완성을 위해 인간은 끊임없는 실패에도 다시 일어서고 화해하는지도 모른다. 지속성 없는 사랑은 한 순 간의 열망처럼 헛헛하다.

 

누군가 삶의 의미를 묻는다면 당장 뭐라고 답할까 생각 해본다. 그것을 깊이 생각 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것은 있다. “나는 타인의 행복에도 책임이 있다.”라는 글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공감 가는 문장인데 내가 먼저 한 말이 아니라는 게 아쉽다. 누가 선수 쳐서 글로 표현해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이 문장은 엄청난 뜻이 있다. 내 행복도 갈피를 못 잡는 마당에 내가 타인의 행복에도 책임이 있다니... 언뜻 오지랖이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다시 깊이 생각해 보니 오늘 내 행동과 말이 얼마나 큰 영향력이 있는지 말 해주는 핵 폭탄 같은 문장이었다. 보편적으로 상대로 인해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 하지만 나의 존재가 남을 행복하게 할 수도 불행하게 할 수도 잇는 책임이 있다니 오늘의 나를 다시 한번 추스려본다. 세상은 그렇게 함께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습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이 한 말이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강제 수용소에 갇힌 빅터 프랭클은 살아서 다시 아내를 만나야 한다는 소명 하나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사선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생명을 유지했다. 이렇듯 소명이나 삶의 의미를 기진 자는 죽음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인생을 지탱하는 힘을 생의 의미 찾기를 주장했다. 로고 테라피 창시자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란 인간을 지탱해주는 혼임을 온 몸으로 증명했다.

 

고도를 기다리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삶을 추구하며 살아가야한다. 권태로움 가운데에서의 기다림, 고도를 구원의 대상으로 여겼던 기다림, 그러다가 결국 인생 자체에 대한 염증으로 여겨졌던 기다림, 그런 기다림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약간은 권태롭더라도 버틸 수 있는 삶이다. 진정한 기쁨은 조금은 지루하더라도 이런 분위기 속에만 깃들기 때문이다.”

끊임없는 기다림 속에 매일 반복되는 지루함이 우리 삶이다. 행복과 불행이 수시로 교차하며 누군가 행운의 구세주처럼 나타날거라는 막연한 희망만이 우리의 사치품처럼 존재한다. 시간이라는 것이 있음으로 우리는 또 기다리며 삶과 죽음을 향해 한 발씩 내딛는다.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는 바로 나 자신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고전 속에서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 주었다. 이 책은 내가 어떤 태도로 오늘을 일구어 가야 하는지 깊이 생각하게 해주었다. 나도 고전을 좋아하기에 저자가 풀어 놓은 고전 속의 해석과 내 생각을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컸다. 저자는 삶이 늘 아름답지만은 않더라도 어떻게 내 삶을 가꾸어야 할지 고민하라고 한다. 그런 고민을 더 지혜롭게 풀 수 있는 방법으로 고전을 가까이 하길 권한다. 저자의 권유가 너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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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성지혜 지음 / 문이당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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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을 쓰기로 작정한 계기가 있다.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작가로서의 운명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여고시절 박경리 작가를 만난 순간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했다는 저자의 도발은 즉시 이 책을 읽고 싶게 했다. 존경하는 작가를 만난 순간, 미래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강단성은 그동안 얼마나 소설가의 꿈이 간절했는지 보여준다. 글 한 번 써보자고 대들며 닮고 싶은 작가가 있다는 점은 큰 자산이다. 글 길을 잃고 우왕좌왕할 때 등대가 되어준다. 저자는 박경리라는 거목을 등대 삼아 소설을 빚었다. 소설 속의 외침은 그동안 삶의 역경 속에서도 신앙과 글쟁이로서의 굳은 다짐을 주춧돌 삼아 글 쓰는 삶을 이어가리라 고백한다. 때론 느리게, 때론 몰아치는 숨으로 이야기를 잇는 문체가 무척 신선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느낌을 준 소설집이다.

 

글을 읽을 때 가장 먼저 접하는 게 제목이다. 제목의 의미를 유추해보며 글의 행간을 짐작한다. 그러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슬그머니 글 속에 들어간다. 하지만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라는 제목은 한참 동안 생각하게 했다. 향수 없는 향수병을 어디에 쓸까. 향수병은 있지만 인공의 향수는 향수가 아니라는 뜻일까. 단순히 향수병엔 향수가 없음을 말하는 걸까.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책을 접했다. 8편의 소설이 담겨있다

 

<나를 이겨라>는 저자가 소설가가 된 계기와 역경을 극복하며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저자는 여고시절 박경리 작가를 만난다. 그러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평소 흠모하는 작가가 진주에 온다는 기사를 접한 저자는 바로 작가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저도 선생님처럼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라며 고백한다. 그날 이후로 박경리 작가의 그림자를 쫓으며 소설 쓰는 사람이 되었다. 한 사람의 일생을 가르는 어떤 계기는 드라마 속에 나 나오듯 극적 순간 같아도 이런 현실은 늘 존재한다. 어쩌면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고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것이 현실일 때도 있다. 저자는 대작가들로부터 작가의 소질을 인정받고 몇 개의 필명까지 받는다. 결국 현재의 필명 지혜는 기도 중에 하나님께 받은 은사의 선물이다. 삶의 중간에 시들병이라는 무기력에도 빠졌다. 글쓰기에 큰 위기가 왔다. 결국 저자는 신앙심으로 극복하고 나를 이겨라라는 박경리 작가의 덕담을 가슴에 새긴다.

 

파란색 보석하면 사파이어를 떠올린다. 파랗다 못해 멍든 푸르름을 머금은 청량감이 일등이다. 터키석 또한 파란색이다. 사파이어에 흰 물감을 한 방울 떨어뜨린 듯 조금 연한 파랑이다. 향수와 보석은 여자들 취향 중에 조금은 고급 진 부류에 속한다. 향수야 그렇다 치지만 색상 별로 온갖 의미를 지닌 돌덩이에 경제적 가치를 지닌 로망의 물건이다.

터키석의 파란빛을 사모한다는 새미는 남편이 터키 출장길에 사 온 터키석 두 알을 선물 받는다. 보석과 향수, 살아가는데 필요하진 않지만 만족감을 주는 물건이다.

보석을 좋아하는 새침데기 성향의 새미가 모으기 시작한 향수병, 빈 향수병을 모으기 위해 값비싼 향수를 사는 새미 취미의 원인은 가족력에서 기인한다. 윗대로 냄새를 풍기는 체질 때문이다. 역겨운 냄새를 감추기 위해 향수를 사 모으기 시작했고, 급기야 향수병의 고급 진 외양에 빠진다. 새미는 전통 물품을 파는 세계 곳곳을 찾아 헤맨다. 진품이나 모조품을 가리지 않는다. 문양의 미에 빠진 새미의 향수병에는 향수가 없다. 향수가 없는 향수병은 빈 병이다. 빈 향수병이 가득한 집에 부부의 애정이 머물지는 않았다. “인간은 누구든지 자신만의 향기를 지녔잖아. 냄새가 싫다고 스스로 고립시키면 사람 사귐도 순조롭지 못하고 외톨이로 살아가기 마련이거든.” 남편의 충고는 향수병에 집착하는 아내의 수집병에 대한 충고였다. 새미 특유의 냄새에 사랑의 코가 멀었다는 남편, 수술로 특유의 냄새가 없어진 새미를 대하는 남편의 흔들리는 마음, 냄새를 그대로 물려받은 딸 토리의 결심, 이들은 냄새로 인해 향수를 접했다. 그러면서 차츰 인간에게 풍기는 진정한 향수가 무엇인지 알아간다. 결국 이젠 진정한 향수를 지녀야지라며 예루살렘 부활절 대축제 순례 여행을 계획한다. 나의 향은 무엇일까. 나만 모르는 향이 있고 모두 다 아는 향이 있을 터이다. 뿌리지 않아도 풍기는 자연스렁 향, 나만의 향이 좋은 향이었으면 하고 바란다.

 

<결을 향한 단상>에서는 다솔이, 엄마의 자궁에서 잉태되어 느끼는 숨결로 시작한다. 그는 세상에 온갖 의구심을 품고 바람과 함께 거리를 떠돈다. 바람과 함께 성장하는 다솔, 제주도의 하르방을 보고 돌의 숨결을 느낀다. 앙코르 와트에서는 세월의 이끼가 돌의 문양과 어우러지는 신비스러움을 본다. 자연의 품에서 떠돌다 갈릴리 호숫가에 도착해 성인식을 치른다. 다시 돌아온 다솔은 정착하기 위해 지리산 토굴에 둥지를 튼다. 움막을 짓고 채소를 가꾸며 연명을 하지만 인간적인 욕망은 잠재울 수가 없다. 결국 다솔은 세상으로 나와 결혼식을 치른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성인식을 함께 했던 나탈리의 구애로 다솔은 사랑하는 여인과 둥지를 튼다. 이렇게 항시 너를 지키는 눈동자가 있다"라는 엄마의 충언은 아들에게 현실이 되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순간 홀로 견뎌야 한다. 탯줄을 벗어난 인간은 독립적이다. 그 이치를 알아버렸나. 다솔의 여정은 생에 대한 온갖 의문으로 시작한다. 맨몸으로 겪고 느낀다. 인간은 육체적, 정신적으로도 혼자 살 수 없다는 이치를 깨닫는다. 다솔은 생에 육신과 영혼의 합일을 가져온 아내를 만났다. 저자는 결국 완전한 삶은 다솔이 도착한 지점임을 보여준다. 도착점은 다시 시작점이 되지만, 찾고 구하며 자신의 길을 나가는 이 일이 인생임을 말한다.

 

저자는 각각의 작품에서 이상적인 삶을 분주히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이렇게 소설을 누비며 드러나는 저자의 숨겨진 욕망은 어쩌면 나의 욕망과도 같았다. 글이라는 거울을 통해 비춘 나의 모습을 다시 한번 다독이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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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세계에 독백을 남길 때
가랑비메이커 지음 / 문장과장면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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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은 좋은 산문은 유리창 같다라고 했다. 그런 글은 활자 사이를 비집고 반사되는 세세한 감정이 문장속에 살아있다. 이 글은 산문에 시의 옷을 입은 일기장같은 고백서다. 이 여정에 저자는 여행하듯 찾아와줄 독자를 기다리며 초대장을 내민다. 그러면서 깊은 밤중의 시간을 허락해 주기를 부탁한다. 저자가 독자에게 밤중의 시간을 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투명한 자신을 만날 수 있는 밤에라야 적나라하게 내면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일까. 이렇게 민낯을 한채, 한껏 푸릇한 시어의 세계에서, 세상을 담은 마음의 조각들이 늘때마다 저자는 속엣말을 토해냈다. 관계와 대화, 독백으로써 끊임없이.

 

그러면서 문장이란, 한 사람의 독자를 향한 화살임을 고백한다. 저자가 쏘아올린 고백의 발자취를 따라가본다.

 

이를테면 이런 독백의 문장들이다.

당신의 시선이 머물 때 나는 무겁게 가라앉고 비로소 땅을 딛고 설 수 있다.” 수 백 번의 호의 보다 빚어 낸 문장의 온도를 함께 느껴줄 단 한 사람의 독자, 그들로 인해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작가로서 존재할수 있는 힘의 원천을 드러내며 글의 심지가 어디서부터 왔는지 가늠하게 하는 문장이다. 글을 읽다 보면 저자의 역사가 보인다. 정형화된 프로필과는 다른 내면의 역사다. 활자 사이에는 비집고 묻어있는 고유한 향기가 있다.

 

가슴속에 맴돌던 이야기를 삼키는 게 어른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아니다. 일그러진 마음까지도 꺼낼 용기를 가질때이다. 미성숙한 어제는 안으로만 삭이며 혼자 이해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진짜 어른이 되는일은 드러내며 자신과 타인의 모난 구석까지 마주하며 받아들일 수 있을 때라고 말한다, 나날이 성숙해가는 관계를 꿈꾸는 저자의 마음이 드러난다.

 

한 존재를 발견한 뒤 차츰 시간은 그대로도 충분했던 서로에게 틈을 만든다. 그러면서 발명에 집중하게 된다. 저자는 상대의 좋은 점을 끊임없이 발견해가는 과정이 위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빛바랜 사랑은 어느샌가 넘치는 무언가 발명하기를 갈망한다.

더 이상의 발견거리를 만들지 못하는 사랑은 유효기간이 지났음을 선고한다.

발견과 발명, 이 간극이 사랑과 이별의 거리임을 저자는 말한다. 끊임없이 한 존재에 대한 의미를 발견해가는 과정을 통해 사랑은 무르익고 유지된다는 뜻일터이다.

 

오해를 이해라 믿으며 자신을 숨기고 보이는 것은 유추할 수 있는 단서 쪼가리에 불과할 뿐, 내면의 나는 감춘 채 살았던 자신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젠 훌훌 털고 맨얼굴로 살고 싶다는 저자의 넋두리도 보인다. 무더위는 그림자까지 쓸고 가버리고 가을은 또 세월을 달고 온다. 여름을 보내면서 저자는 무심히 치달리는 시간을 또 아쉬워한다.

 

소리 내지 않으면, 부끄럽다고 아픈 표정을 숨기면 다시는 누구의 부축도 받을 수 없다는것을 저자는 알아버렸다.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 여기 있음을 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살다보면 우리가 얼마나 솔직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의무와 체면, 상황 때문에 나를 누르고, 정제된 모습의 나로 살아야 하는 것은 타인도 마찬가지다. 목울대를 누르는 책임감의 무게 앞에서 때론 벗어나고 싶은 본심을 그대로 뱉고 행동으로 옮긴다면, 오히려 만족감 이상으로 당혹감도 클 것이다. 타인도 하고 싶은 대로 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쌍방의 자유는 부딪힌다. 결국 나와 타자는 같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어떤 무게를 피하고 싶을 때는 반은 견디고 반은 호소한다는 기준이다. 그러다 보면 타인 또한 힘들어도 애쓰는구나라는 동지의식으로 서로의 어깨를 토닥이며 함께 할 수 있으리라.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며 내 자유를 누리는 최선의 방식이 아닐까 한다.

 

저자가 생각하는 무르익는 세계란 끝엔 늘 몇 줄의 문장이 남겨진상황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숱한 새벽의 응답을 다시는 의심하지 않는다 라며 기도한다. 이렇게 저자는 타자와의 관계를 돌아보고 작가의 소명으로 끊임없이 문장을 엮겠다고 선언한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을 마주할 때가 있다. 환경이 변하고 시간이 흘러도 벗어 날 수 없는 일이다. 생을 연명하는 일과, 내 안의 목소리를 듣는 일, 이 두 가지는 인간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저자는 한때 쓰는 삶이 세상에서는 청승이 되어버릴지 모른다라는 아버지의 충고에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쓰는 일이 '낭만'이라는 이유에서다. '낭만'을 사전에서 찾아 보았다. '현실에 매이지 않고 감상적이고 이상적으로 사물을 대하는 태도나 심리. 또는 그런 분위기.'라고 한다. 살기위해서는 필수인 경제적 뒷받침, '어쩔 수 없음'인 글쓰기는 불안정한 삶이라고 여긴다. 그런 연유로 딸이 안고 살지도 모를 경제적 곤궁까지 염려한 아버지 사랑의 표현 방식이었을 터이다. 부모로서 할 수 있는 걱정의 한 부분이다.

 

나는 늘 누군가 나를 발견할까 봐 두려웠고 막상 아무도 나를 발견해 주지 않으면 서러웠다.” 이 문장은 커티스 시튼펠트의 책에 나온다. 저자에게 영혼의 문장으로 다가와 영원의 문장이 되었다고 한다. 침잠한채 책을 좋아하고 쓰는 일로 희열을 느끼는 이들에게 어울리는 모습임을 직감했다. 숨어있으면서도 발견되길 바라는 숨바꼭질의 기억, 아슬아슬한 술래처럼 영원을 견디는 심정이었을까. 깊은숨이 몰아치는 화살같은 문장이다.

 

그러면서 더 이상 가면 놀이는 하지 않겠다며 끊임없이 나다움을 찾아간다. 쓰는 기쁨, 그 이상의 즐거움을 찾지 못했다는 저자다. 천상 작가로서의 숙명이 유리창에 비친다. 내면 밑에서 문장으로 건져 올리는 고백에 저자는 점점 더 무르익은 과일나무가 되어간다.

그러다가 돌이켜 보면 언제나 모든 건 기적이었고 축복이었다.”라고 회상한다. 힘든 일도 시간이 지나면 아쉬움이 된다. 저자 또한 일상이 기적임을 자각한다. 나 또한 사랑하는 이를 만나 지금의 내가 있고,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 오늘이 기적이다. 일상은 무수한 기적의 순간이 모여 평면으로 보일뿐이다.

 

쓴다는 건 읽어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다. 저자는 기다리면서 어찌 쓰지 않겠냐 반문한다. 문장을 읽어줄 단 한사람의 독자를 기다리는 일은 쓰는 시간만이 가능하다. 저자는 이렇게 벗어날 수 없는 쓰는자의 허밍을 키보드에 싣는다. 밤으로 초대한 투명한 활자들이 유리창에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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