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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카프카
김살로메 지음 / 도서출판 아시아 / 2025년 10월
평점 :
[안개가 걷히고 들꽃 화관이 떠내려가는 풍경]
첫인상은 평생 간다고 했던가. 처음부터 던지는 궁금증을 반기며 표지를 찬찬히 훑어본다. 멀리서 능선에 걸린 해가 보인다. 여명인지 해거름인지 모를 해는 하늘과 땅을 온통 황금빛으로 물들였다. 언덕 정상에는 웅장한 성곽이 돌올하게 서 있다. 성 쪽으로 난 구불구불한 오솔길 하나가 선명하다. 은은하면서도 감각적인 파스텔 색조의 책 표지다. 누가 봐도 단번에 카프카의 성을 연상하게 한다. 그 성을 바라보고 서 있는 한 사람, 아마 작가 자신이라 생각된다. 왜 작가는 첫 장을 펼치기도 전에 망연히 성을 바라보는 일로, 입을 열기 시작했을까. 어쩌면 이 무언의 초점은 가고자 하나, 닿을 수 없는 곳이 이데아의 세계이며, 소설가이자 생활인의 숙명임을, 즉 미로를 헤쳐 나가는 게 삶이라는 것을 알아버린 자의 뒷모습이 아닐까.
작가는 2016년 단편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을 첫 책으로 냈다. 이후 에세이집 미스 마플이 울던 새벽과 엄마의 뜰을 썼고, 2025년에두 번째 단편소설집 뜻밖의 카프카를 출간했다. 첫 소설집 라요하네의 우산에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소설가적 위트라는 핀셋으로 틈틈이 박힌 인간성을 발굴하는데 탁월했다. 두 편의 에세이에서는 소설에서 펼치지 못한 작가의 평소 풍경을 볼 수 있다. 가족, 사회 속 인간관계, 문학과 작가로서의 눈을 수채화처럼, 한 편의 콩트처럼 깔끔하고 다정한 문체로 펼쳤다. 드디어 두 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전보다 더 현란한 밑줄이 그어졌다.
이 책은 총 8편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었다. 다양한 인간군상이 상황에 따라 취하는 본능과, 위악, 위선을 밀도 있게 파헤쳤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는 이중성에 대해 작가는 현미경을 들이대듯 추적했다. 그 이중성도 무엇 때문에 더 따뜻한 쪽으로 기우는 자와, 차가운 쪽으로 향하는 자로 나뉘는지를 묻는다. 유리나 월산아재, 오디와 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도금이나 미희, 캄란콩이나 기찬세같은 캐릭터가 있다. 작가는 인물들이 순간마다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본인은 물론이고 타인 인생에도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준다. 그렇게 본인 의지와는 무관하게 영향 받고 문제를 해결하거나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인간의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질문한다 . 독자여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냐고.
[헬리아데스 콤플렉스]
중학교 동창인 유리와 도금, 이들보다 열 살 아래인 지수, 세 여성이 나온다. 사심 없이 양보하고 배려하는 게 천성인 유리와는 반대로, 도금은 무례하고 거침없다. 자기 본능에만 충실한 일차원적인 인물이다. 그 두 친구와 함께 우정을 나누는 지수는 관찰자적 인물이다. 도금은 투자차 사놓은 적산가옥에 무단 침입해 사는 독거노인을 내쫓으려고 전기 차단부터 하겠다고 말한다. 반면에 유리는 그 노인을 위해 무료 급식소와 구청을 수소문하고 도금을 설득해 보겠다고 한다. 또한 덤불에 숨겨둔 텀블러를 잃고도 “누군가는 그 덕에 따뜻한 겨울나겠지.”라며 오히려 미안해할 지수의 입장을 생각한다. 자신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고라도 난처한 순간의 타인을 모른체 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유리이다.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아무나 못 하는 행동을 마땅하다는 듯이 실천하는 부류의 사람들을 작가는 유리를 통해 보여준다. 이들의 일련의 대화와 행동에서 콤플렉스란 스스로 그렇다고 인지했을때 콤플렉스이고, 천성에서 우러나는 행동은 그만의 기쁨이자 고유한 성정임을 깨닫고 지수는 한없이 무해한 유리를 그 자체로 인정하게 된다.
[내 모자를 두고 왔다]
보랏빛 꽃이 만발한 시드니 거리 한 모퉁이 벤치에 시집을 낀 한 사내가 있다. 스물네 해의 수형생활을 마치고 시인이 된 남자다. 그 주위는 자카란다 꽃이 휘황하게 흩날린다. ‘모자를 두고왔다’라는 모호한 제목의 시집을 품고 화자를 기다리는 남자 마린. 실재인지 환영인지 화자의 바람인지…. 화자는 독서치료사다. 마린이 수감된 교도소에서 수요일마다 독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마린의 독특한 아우라에 끌린 화자는 그를 주시하며 소소한 부탁도 들어준다. 수강생들은 각자의 '마음상함'에 대해 털어놓는다. 과거에 그는 죄를 짓고 자책과 공포에 떨며 엄마 집으로 숨어든다. 아무것도 모르는 엄마는 아들에게 피자를 시켜준다. 막 먹으려던 순간 들이닥친 경찰에게 끌려 나온 마린은 그날부터 수인이 되었다. 사랑의 완전체, 용서의 종착역인 엄마가 사준 피자가 내동댕이쳐지던 날의 장면과 냄새를 마린은 잊지 못한다. 그 장면을 봐버린 엄마는 평생 허깨비처럼 현장에 박제되어 있었을 테다. 그 마음을 단번에 헤아린 화자는 송별 파티에서 피자를 시켜준다. 어쩌면 시를 쓸 수 있는 마음을 지켜준 화자때문에 마린은 더 구체적인 꿈을 꾸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사소한 환대가 어떤 이에게는 꿈의 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십 년 뒤엔 자카란다 꽃 아래서 시를 쓸 거라는 마린, 그가 그리는 내일은 <모자를 두고왔다>라는 시집 제목이 상징하듯이, 진실한 자신과의 만남을 추구하리라는 선언임을 보여준다. 역설적으로 마린을 통해 화자도 자신의 모자에 대해 생각한다.
[뜻밖의 카프카]
가장 가까이서 상대의 삶을 궁지로 몰아가는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 있다. 가깝기에 당연함을 가장한 일들이 한 사람의 생을 쥐락펴락한다. 소리 없이 언제 그랬냐는 듯, 그렇게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하기 때문에 다치는 타인의 마음에는 무관심하다. 첫사랑 해도 때문에 사랑이라는 거대한 환에 사로잡혀 눈물 좀 흘린 로사, 로사의 시시콜콜한 일까지 다 꿰고 있는 대학 친구 미희, 소심한 예민남이자 잔소리꾼인 로사의 남편 군소를 중심으로 인간 심리를 깊이 파헤친다. 미희가 로사 일기장을 훔쳐보고 로사의 남자 친구에게 은밀히 흘리는 심보는 사악하다고밖에 표현이 안 된다. 머리 검은 짐승 거두지 말라는 옛말이 괜히 나왔겠나 싶다. 미희의 의뭉한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 신의는 상호작용할 때 온전하다. 한쪽은 그러한데, 다른 쪽은 농락이나 가벼운 농담 수준에 머문다면 인간사 누구를 믿을 수 있겠는가. 믿음도 보이지 않는 허상인데 그것을 지키는 자의 고결함은 누구나 꿈꾸지 않는가. 살다 보면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칠 때가 있다. 친구 미희의 이중성에 이는 환멸, 끝을 알 수 없는 피곤한 심리 게임으로 평온해야 할 부부간 정서가 불안으로 잠식당할 때, 로사는 카프카라고 외친다. 대학 시절에 모순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카프카를 외쳤던 기억을 소환한다.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의 기로에 있을 때, 그런 게 세상이지 어쩌겠어,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는거지 하며 부조리를 인정하고 스스로 내일을 모색해 나가는 일이랄까. 한없이 무거운 주제를 유머와 초월의 느낌으로 가볍게 치환하며 스스로 살길을 찾는다.어떤 이들과는 공정한 게임을 한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특히 "비난받을 이유가 있는 자들 곁에 넌지시 도화선을 연결해 놓고 도망가는 건 죄가 아니었다."라고 하며 고통의 굴레를 과감히 벗어나려는 로사의 행동 앞에서는 통쾌했다.
[안개기둥]
언젠가는 다시 부닥칠 장면임을 예감하는 순간이 있다. 혼자만 알되 반드시 되새기게 되는 일이다. 어릴 적 수안마을에서 보고 겪었던 사건은 평생 화자의 삶을 따라다니며 제 역할을 한다. 언젠가는 소설로 등장하리라는 예감은 적중한다. 오십여 년이 지난 후 화자는 기억을 현실로 꺼내 과감히 그 문을 열고 들어간다. 생에 알 수 없는 그늘을 드리운 어린 날의 사건을 정면으로 마주한다. 마을 근동의 이단아 캄란콩. 베트남에 참전했던 일이 유일한 훈장인 젊은이다. 그와 대척점에는 연파시의 양반이자 수안의 선비인 월산아재가 있다. 마을이 수몰 지역으로 포함되어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야 한다. 떠나기 전 개인재산을 보상받는 문제로 캄란콩은 월산아재를 닦달하며 위협한다.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을 아는 월산아재가 어떤 방법으로 캄란콩 자신을 위해 힘써놨는지도 모른 채 그에게 복수하겠다는 오기를 품는다. "적의가 쌓이면 판단력을 잃게 되는 모양이었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는 모든 게 끝난 뒤였다." 그날 화자는 빨간 고무대야를 타고 강을 건너오던 월산아재를 보았다. 강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캄란콩도 보았다. 비록 얄미운 순경에게 앙갚음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그녀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광경을 보았을 뿐이다. 홀로 목격했다. 이 일 때문에 화자는 오십여 년이 우울했고, 죄책감에 시달렸다. 목격자의 딜레마다. 우연히 눈으로 본 어떤 상황을 인지했을 때, 그 순간부터 목격자는 참여자가 된다. 참여자로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는 또 그의 선택에 따라 달라진다. 사실은 하나지만 진실은 제각각이다. 사실을 하나의 진실에 맞추어 해석하기에는 인간의 다양한 입장 때문에 정답이 없다. 결국 월산아재가 사망한 것은 지병에 의한 사고사일 수도, 안개 때문일 수도 있다. 아니면 화자가 생각했던 그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진실에 접근하려고 노력했기에 면죄부가 될만한 뜻밖의 변수도 알았다. 월산아재가 강조한 염치를 아는 사람이 되는 일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다. 화자는 어릴 적부터 그분의 고고한 인격체를 우러르며 자랐다. 그런 화자이기에 자신을 속이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테다. "인간에 대한 도의와 사랑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는 아재의 한결같음에 목이 메었다."라고 뇌이며 화자는 선착장에 도착한다. 이어서 강 주위의 야생화를 꺾어 화관을 만들어 강물에 띄운다. 사죄의 마음을 담아 아재의 삶에 경의를 표하며 혼자만의 애도식을 치른다. 묻혀서는 안 될 어떤 삶은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오십여 년이 흐른 뒤에야 어린 화자를 바위처럼 누르던 죄책감도 강물에 떠내려간다. 수안 마을을 드리운 안개가 걷히고 있다.
[따뜻한 컵 프로젝트]
화자는 서른 후반의 노처녀 양난이 부팀장이다. 약간의 허당끼에 소심한 성격이지만 염치가 있는 인물이다. 방송용 영상을 제작하며 음악과 네레이션을 담당하고 있다. 화자의 입사 2년 후배인 기찬세는 같은 프로젝트 총책임자이다. 화자의 아이디어까지 도용해 가며 직위를 추월한 시류에 강한 인물이다. 이들은 웜 컵 프로젝트라는 오류투성이의 실험을 방송영상으로 제작 중이다. 확정된 답을 전제로 만들어야 하는 난감한 상태다. 심란한 마음으로 카페에서 팀원들을 기다리던 화자는, 한 노년 커플을 목격하게 된다. 그들은 한때 무명의 남자배우와 유부녀 유명 배우였다. 드라마를 찍다 사랑에 빠졌고 통속적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관계이다. 하지만 의미 없는 관계를 청산하고 마음이 흐르는 대로 서로를 선택한다. 비난과 자책도 스스럼없이 끌어안는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번, 단 한 번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가는데….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에 나오는 구절이다. 카페에 앉았다가 나올 때는 티슈로 테이블 위를 훔치고 나오고, 햇살 부드러운 아파트 마당에서 서로의 머리를 잘라주며, 한때 신세졌던 친구가 위급하다는 소식에는 곧장 달려가는 인지상정을 아는 사람들. 물욕도 허세도 다 비운 자리에는 자유와 마음의 평온이 들어찼다. 스스로 선택한 후에 오는 폭풍은 기꺼이 감당하고,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간 견우옹과 수로부인이다. 급하게 친구 위문을 가면서도 무슨 꽃을 사 가겠느냐는 수로부인의 질문에 견우옹은 ‘올라꽃’ 이라고 답한다. '올라'는 안녕하세요! 라는 스페인어 인사말이다. 좋은 생각임을 인정한다는 마음과, 설사 부정적인 상황에 부닥쳤을 때도 올라를 외치면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동그래지는 걸까. 한 송이의 꽃을 보는 것처럼 순한 마음이 되도록 자기암시 하는 걸까. 팀원들이 수행해야 하는 프로젝트라는 것도 얼토당토않은 실험 결과가 나왔다.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결과가 강요된 픽션이 되어버린 황당한 임무를, 사명인 양 행하는 기찬세의 모습에 씁쓸했다. 한때 화자는 기찬세에게 마음을 둔 적도 있었다. 하지만 결이 안 맞아 그와는 모든 게 꼬인다. 어쩌면 조작의 프로젝트가 기찬세 자신을 대변하는 무의식이 작동했을까. “취중에 말싸움이라도 난 걸까. 제발 그래 줬으면 좋겠다. 술 핑계 삼아 완력 좋고 펀치력 강한 누군가가 기찬세를 한 방에 눕혀줬으면 좋겠다.”라는 화자의 속마음 부분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진실은 조작할 수 없다. 과감히 껍데기를 벗고 내면과 마주한 후, 순연하게 여생을 누리는 견우옹과 수로부인의 모습을 보았다. 꼬인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왜곡의 부당함을 따지는 용기 있는 인물 오디도 보았다. 화자는 이제 허위의 창을 과감히 깨부순다 “조작하는 마음은 결코 따뜻한 컵 프로젝트가 될 수 없다.”라는 확신으로, 그녀도 노부부를 따라 ‘올라’ 라고 호탕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통렬하나 머뭇거리기도 하고, 진솔하면서도 투박한 인물들을 만났다. 작가에게 축적의 시간이 치열한 창작의 기간이었음이 전해진다. 미궁 속에서도 어김없이 따뜻하게 비추는 해 같은 존재들 때문에 희망을 발견한다. 다양한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을 지키면서도 남에게 무례하지 않는 법, 더 나아가 타인을 향한 인간애에 자신의 작은 손해쯤은 기꺼이 감수하는 사람들이 있다. 돌고 도는 게 순리이듯 거짓의 토양 위에는 평온의 싹이 돋지 않는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라. 그리고 삶을 누리라. 이 순리를 작가는 명쾌한 문장과 맛깔스러운 은유로 독자에게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