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 그리며
채명희 지음 / 북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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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꿈은 언젠가는 싹이 튼다. 작가는 평생을 영어학자이자 교수로 살았다. 어릴 적부터 무언가를 그리는 일을 좋아했지만, 교육자라는 현실 때문에 그 길을 비켜 살았다. 그러던 십여 년 전쯤, 다시 미술을 접하게 된다. 그림을 그리면서 고향 같은 마음의 안식을 재발견한다. 교직 생활 중에도 틈틈이 창작에 몰두한다. 그렇게 풍경과 기억들 사이를 오가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한다. 그리고 한 점 한 점 그림으로 그려낸다.

 

작가는 꿈꿔온 삶을 살아라.’라는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을 되새기고, 과감히 두 번째 꿈을 펼친다. 그림을 그리며 마음의 소리에 대면한다. 그 소리에 집중하며 자신이 꿈꾸던 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 교직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어쩌면 원래 꿈일지도 모를 화가의 길을 가기로 결심한다. 붓으로 세상을 포착한 여정, 그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로 향한 오솔길에 동행해 본다.

 

이 책 살며 생각하며 그리며는 예술 산문집이다. 그동안 축적해온 유화 56편과, 편편이 그림에 담긴 사유를 함께 엮은 책이다. 탄탄한 지면에 펼쳐진 선명한 그림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작품에 들어가 그림 일부가 된다. 이런 생생한 추체험은 독자에게 원본의 느낌을 전달하고자 애쓴 작가의 애정이 아닐까 싶다. 그림 옆에는 진솔한 문장이 적당한 여백을 품고 들앉았다. 한글 원본 옆에 영문 번역본까지, 한 장의 텍스트에 맞춘 획기적인 구상은, 작가가 오랜 기간 영어학자로 살아온 내공임을 말해준다. 작가는 고인이 된 어머님과 시어머님께 이 책을 헌사 한다는 말로 서문을 연다. 그녀의 마음이 한 겨울 동백꽃처럼 붉고 애틋하다.

 

본문은 총 두 파트로 나뉜다. 전반부는 가을을 주축으로, 우리나라의 사계절을 담았다. 후반부는 여기가 아닌 저기로 향한다. 보통 사계절을 말하면 봄으로 시작해 겨울을 마지막으로 친다. 하지만 작가는 가을이 만물의 처음이자 정점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를 그림을 따라가면서 생각해 본다. 가을은 생명 순환과 존재의 안도라는 첫 문장에 눈길이 머문다. 생명을 잉태하는 시작이자 생의 절정인 결실의 계절, 가을이다. 본디 모든 생명은 열매 맺으려고 싹이 트고 꽃을 피운다. 추위를 견디는 인고의 시간도 자신을 다독이는 중이다. 텅 빈 듯하지만 충만하다. 진액을 열매로 모은 뒤 자신을 비울 준비를 한다. 어쩌면 작가는 인간의 숙명을 닮은 가을의 서사를 눈여겨보면서 마음에 담아 둔 것이 아닐까.

 

그림 <잎이 지는 이유>에서 단풍은 갈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진다. <감나무 집의 겨울>은 둥근 초가지붕 위에 쌓인 눈과, 미처 따지 못한 홍시가 달린 감나무의 대비가 압도적이다. 둥글고 포근한 어머니를 닮은 초겨울 풍경이다. 내 고향 마을을 떠올리는 이 그림은 한 폭의 장엄한 서사시다. 단순하고 소박한 풍경이 어떤 그림으로 탄생하는 일은, 가을에서 겨울을 향하는 뭇 생명들의 소리를 조용히 듣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풍경에서 순간을 포착해 붓질로 표현하는 화가라는 존재는, 창작의 시점에 어떤 여행을 떠나는 걸까. 그림을 그리지 못하는 나는 알 수 없는 그 순간의 공명에 부러움이 인다. 마음의 울림이 그림이 되기까지는 심연까지 닿아야 하리라. 그래서 현상이 상상의 옷을 입고 그림으로 탄생하는 일은 자신과 닮을 수밖에 없다.

 

작가를 닮은 선명하고도 밝은 그림을 차례차례 음미하다 보면, 가을, 겨울에 이어 <살구꽃 피는 알바스텔라>의 봄이 온다. 알바스텔라는 그녀의 작업실이다. 작업실 뜰에는 봄이면 살구꽃이 피고, 여름이면 수선화와 수레국화, 개양귀비와 붓꽃이 새초롬하게 나풀댄다. 사시사철이 열두 폭의 그림으로 남는 곳이다. 이곳은 작가가 자연에 침잠하며, 자신을 창작으로 몰고 가는 몰입의 공간이리라. 흰 캠퍼스를 펼친 듯 새하얀 건물이 이국적인 공간에서, 그림을 그리며 비상하는 꿈을 다졌을 작가의 고독한 시간이, 마침내 그림책으로 탄생했다.

 

나의 화양연화는 언제였을까. 혹시, 바로 지금이 아닐까?”라며 작가는 수레국화 무리와 개양귀비 군락을 그리면서 자문한다. 어쩌면 현실의 만족스러운 상황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사는 지금이, 가장 찬란한 순간임을 알고 있으리라. 강아지풀과 천일홍이 유월 넘어 구월로 달리면, 해만 좇던 해바라기도 슬슬 가을 채비를 한다. 들판의 갈대와 억새 무리 서걱대는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천지는 또다시 물감 스미듯, 두 번째 봄이 된다. 낙엽 꽃 휘황한 가을이 온 것이다. 이렇게 계절의 순환, 생명의 연속성,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 그리고 그 속에 내가 있다는 안도감. 가을이 참 좋다.”라고 작가는 다시 가을이 오는 순리에 기뻐한다. 또한 자신도 자연의 일부로서 무연히 흘러감을 뿌듯해하며 감사해한다.

 

사계절을 느끼다 보면 다른 곳으로 여행하고 싶어진다. 작가는 삶이라는 여정을 길 삼아, 붓을 챙겨 이국의 풍경으로 들어간다. 계절 따라 펼쳐지는 나무와 꽃, 그 풍경을 이루는 마을에서 인생을 반추하고 지금, 여기를 예찬한다. 여행 중 뉴질랜드 어느 호수에서 말뚝에 앉은 물새와 마주친다. 어디에서 날아왔는지, 저들이 바라보는 곳은 어디인지. 물새들의 망중한에서 작가는 어쩌면 자기 모습을 보았으리라. “다음 비상을 위한 잠깐의 쉼상태. 그렇게 여행자로서 느끼는 마음까지 담아 차곡차곡 화폭에 담는다.

 

작가는 모네의 수련을 그리기도 하고, 샤갈의 마을에서는 중세풍의 집들을 그림에 담는다. 프랑스, 독일, 탈린의 시가지 풍경도 하나하나 붙박는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순간을 영원히 붙드는 일이다. 그림은 시간을 품으며, 보는 이의 마음속으로 흐른다. 고정되었으나 새 생명을 얻기 때문에 그림을 바라보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섞여 한 덩어리로 다가온다. 보는 순간의 감정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존재가 된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목소리를 드러내는 것이 그림일 수도 있겠다. 대상을 추상으로 추출해 그림에 담아내는 일은, 본질에 다가가는 일이다. 거짓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그림이 진실과 닿았고, 본성을 자극하는 이유이다.

 

<증도에서 본 석양의 바다>와 해 뜨는 <여명의 바다>는 작가의 또 다른 삶의 원형이다. 진도에서 태어난 작가는 마침내 <청산도의 봄>을 완성한다. 노랑과 초록이 어우러진 들판에 빨간 지붕의 집들이 바다를 향해 두런두런 모인 섬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당신을 그리워하는 작가의 마음에 내 마음도 아려온다. 너무 찬란한 어떤 순간에는 오히려 억누른 슬픔이나 그리움이 불쑥 솟아오르는 상태를 경험한다. 작가는 어느 아름다운 봄날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슬픔을 청산도의 찬란한 봄으로 승화한다. 그리하여 모태의 바다를 생명이 넘치는 터로 표현한다. 압권이다.

 

고사목이 되어서도 몸이 다 스러질 때까지 늘 그 자리에, 서로를 향해 마주 선 두 그루의 주목을 바라본다. 나 감히 저런 사랑을 꿈꿀 수 있을까.” 비로소 작가는 궁극의 꿈을 마주한다. 살아서 천 년, 죽어서 천년이라는 주목처럼 <늘 그 자리에> 있는 서로의 나무가 되고 싶은 마음을 이야기한다. 삶의 완성은 어쩌면 늘 그 자리에서 서로를 기다리고 품어주는 주목 같은 사랑이 아닐까. 전설처럼 떠돈다 해도 누구나 꿈 중에 가장 도달하고픈 꿈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그녀의 지극한 사랑이 성취되고, 마침내 그 꿈과 함께 펼쳐갈 그림 그리는 영어 교수의 여정을 마음 다해 응원한다. 그 여정에서 출산한 첫 책이다.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인간과 자연을 대하는 그녀의 내면 일기이자 꿈 모음집이라고 봐도 좋다. 나도 이 투명하고 감각적인 예술 산문집 살며 생각하며 그리며」를 두고두고 소장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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