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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티마이오스 ㅣ 정암고전총서 플라톤 전집
플라톤 지음, 김유석 옮김 / 아카넷 / 2023년 6월
평점 :
“가는 날이 장날이다˝
그 많은 날 중에, 비가 온 날은 유독 6월 20일뿐이었다.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했지만, 이상하게도 6월 20일을 제외하곤 비다운 비가 내린 날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하필 그날, 내 이사가 있었다. 새벽부터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원래는 사다리차 없이 진행하는 반포장 이사였지만, 업체 사장님이 교파트 구조를 살펴보더니 “사다리차 되겠는데요”라고 말했다. “가능하다면 해야죠!” 나는 현장에서 바로 사다리차를 추가했다. 빗속에서도 신속하게 짐을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희한하게도 나는 위기 상황에서 머리가 잘 돌아가는 편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 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사법고시 포기가 준 선물이기도 하다. 내가 못하는 것을 포기할 줄 아는 것을 배우면서, 이 이후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과감히 선택하는 능력이 생겼다.
한편, 반포장 이사라고 해도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나누는 최소한의 분류는 필요했지만,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하필이면 이사 직전에 대학원장단의 해외 출장 전 마지막 업무들이 몰려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일들이 정말 ‘마지막‘이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연가 중에도 카톡은 계속 왔고, 이사 전날까지도 나는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꼭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박사 논문’ 관련 원고들이다. 지난 10년간 써온 A4 용지 두 박스 분량의 원고들을 과감히 모두 버렸다. 새 집에서 정말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진짜 아이러니였다. 박사 논문은 닫혔고, 집은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