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흐마니노프와 체호프 간의 우정은 1904년 작가가 급서함에 따라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비록 라흐마니노프는 훗날 작가 이반 부닌과의 대화 중에 체호프는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언급하기도 했지만, 체호프가 사망하고 2년이 지나서는 《바냐 아저씨》의 마지막 대목에서 뽑은 글을 가곡 ‘쉬게 하소서’의 텍스트로 삼았다.5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00
무너지는 옛 세계의 그림자와 받아들일 수 없는(혹은 그럴 의향이 없는) 새로운 세상 사이에 갇힌 체호프의 주인공들이 처한 환경과 그들이 작중에서 겪는 경험은 라흐마니노프에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00
드레스덴에서 세 번의 겨울을 나는 동안(1906~1909), 라흐마니노프는 중앙역 바로 앞의 지도니엔가街 6번지에 있는 빌라를 빌려 지냈다. 그 사이인 1907년 7월 21일 둘째 딸 타탸나가 이바놉카(라흐마니노프 가족은 여전히 이곳에서 여름을 났다)에서 태어나면서 가족의 덩치는 더 커졌다.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07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는 사람도 하나 없으며, 아무 데도 가지 않아. 일을 엄청나게 하고 있고 기분이 아주 좋다네."9 말로는 고립된 삶을 살고 있다고 했지만, 이 시절에 라흐마니노프는 유럽 문화계의 흐름을 가까이서 목도하며 창조적 발전의 불꽃을 얻었다.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07
만약 특정 작곡 양식으로서의 ‘모더니즘’이 아니라 당대 흐름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현대성modernity’에 집중한다면 라흐마니노프가 드레스덴 시절에 쓴 작품은 하나하나가 유럽 전체의 문화적 환경 ─ 물론 러시아도 그 일부였다 ─ 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11
만약 특정 작곡 양식으로서의 ‘모더니즘’이 아니라 당대 흐름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현대성modernity’에 집중한다면 라흐마니노프가 드레스덴 시절에 쓴 작품은 하나하나가 유럽 전체의 문화적 환경 ─ 물론 러시아도 그 일부였다 ─ 과 깊은 관련성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12
〈교향곡 1번〉의 참패를 겪은 라흐마니노프가 선뜻 교향곡 장르로 다시 돌아오지 못한 것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13
‘진노의 날’ 모티프는 향후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 갈수록 빈번하게 등장하게 된다. 이 모티프는 〈교향곡 2번〉 전체를 은근히 떠받드는 역할을 하며 특히 스케르초풍의 제2악장에서 가장 뚜렷하게 등장한다.24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14
라흐마니노프는 1909년 "한 수의 시, 한 폭의 그림처럼 어쨌건 뭔가 구체적인 본질을 가진 것이 내게는 큰 도움이 된다"26고 말하였지만, 1928년에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알라딘 eBook <라흐마니노프> (리베카 미첼 지음, 이석호 옮김) 중에서 -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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