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리스트 피아니스트의 탄생
우라히사 도시히코 지음, 김소영 옮김 / 성안뮤직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예술의 사명은 고뇌로 가득 찬 현실을드높은 하늘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리스트는 그야말로 시대를 풍미한 인물이었다. 단정한 이목구비, 야무진 입매, 엄숙하고 강한 의지가 느껴지는 눈빛,
빨려들 것만 같은 그윽한 눈동자. 그의 초상화를 보면 수긍이 간다. - P7

이제는 서양이라는 주술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클래식‘ 을 만들어 볼 때가 아닐까? 그러려면 서양 음악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문화에 어떻게 접목할지 생각해야 한다. - P11

정보를 겹겹이 쌓는다고 그것이 곧 지성이 되는 것은 아니다.
풍부한 문화적 토대를 갖추고 있으니 서양 음악을 감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것을 ‘지‘로서 흡수할 수만 있다면 실로 엄청난 성과를 거둘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생긴다. - P9

온갖 음악의 홍수처럼 경박한 음악부터 철학적 깊이를 담은 전위 음악까지, 이 진폭의 너비야말로 리스트 음악 세계의 놀라운 스펙트럼이자 특별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 P12

나는 프란츠 리스트가 19세기의 문화 현상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는 우리에게 지나간 과거가 아니다.
우리가 프란츠 리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 문화 예술이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19세기에 그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프란츠 리스트라는 초상으로 19세기의 파노라마를 펼쳐보고 거기서 현대에 다다르는 한 줄기 선을 그려 보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또 다른 테마이기도 하다. - P14

18세기는 여성이 자신의 직업을 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였다.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지성과 교양뿐만 아니라 담력과 직관력, 통찰력을 갈고닦아야했다. 그러한 능력들을 부단히 익혀서 배신과 증오와 질투와 책략이 휘몰아치는 궁정 생활을 꿋꿋하게 버텨 내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이란 말인가?
18세기 여성들은 계몽사상가들과 함께 국가의 존망에대해 열띤 토론을 펼쳤다. 또한 뛰어난 감식안으로 젊은 예술가들의 재능을 발굴하고 지원했으며, 필요할 때는 자신의 재산까지 기꺼이 내놓을 줄 아는 대인배였다. 이것이 과연 쉬운 일이었을까? - P59

‘파리의 살롱에서는 한 번에 단 하나의 주제에 관해서대화를 나눈다. 어떤 주제든 상관하지 않는다. 때로는 혁명에 대해 토론하기도 하고 자선 바자회나 혜성, 지진이논의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번 주제가 정해지면 2주간이나 논의가 이어진다‘ - P61

이처럼 살롱은 지성과 교양, 심미안을 갖춘 이들의 모임으로서 예술가들에 대한 지원은 물론, 자선 활동도 활발히 펼친 일종의 사회복지재단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였다.
만약 ‘살롱 음악‘이라는 말에 아기자기하고 경박한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그것은 후에 귀족 문화를 동경한 부르주아들이 만들어 낸 ‘살롱 음악‘과 착각했기 때문이다. 쇼팽이나 리스트의 음악이 경박한 음악으로 오해받은 이유는 그 차이를 모르는 사람들 때문이다. - P69

그리고 살롱을 더욱더 찬란하게 장식한 또 다른 공연은바로 음악이었다. 살롱에서 열리는 콘서트에는 단순한 청중과는 격이 다른, 상류 계급 중에서도 음악에 정통하다고손꼽히는 사람들이 모였다. 그들은 가령 쇼팽의 섬세하기그지없는 피아니시모의 음영을 구분하고, 그것이 어떠한 의미를 갖는지 정확히 평가할 수 있었다. 유럽 구석구석까지연결된 사교계 연결망을 통해 발굴한 재능을 세상으로 선보일 수도 있었다.
리스트가 살롱을 떠나기 전, 유럽에서 열린 대규모 콘서트 투어를 성공리에 마친 배후에는 파리, 빈, 베를린,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각 도시의 살롱과 살로니에르 들의 존재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P67

보통 프란츠 리스트라고 하면 초절기교를 떠올리는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콘서트 때문에 만들어진 이미지이다. 적어도 살롱은 화려한 재주 하나만으로 통하는세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리스트는 어떻게 살롱에서 성공했을까? 키워드는 ‘스캔들‘이다.
리스트는 스물한 살 되던 해 겨울을 파리에서 아득히 멀리 떨어진 프랑스 남동부의 마를리오즈 성에서 지냈다. 열다섯이나 많은 아델르 라프뤼나레드 백작 부인과의 위험한사랑 때문이었다. - P71

리스트를 기다린 새로운 시대는 바야흐로 스캔들이 음악가의 트레이드마크가 되는 시대, 상업주의로서의 예술이탄생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 P73

리스트를 헝가리 출신의 독일 작곡가라고 생각하면 놓치기 쉬운 사실인데, 실제로 그가 가장 자신 있어 했던 언어는 프랑스어였다. 리스트는 열두 살부터 살았던 파리에서교육을 받았다. 문학, 종교, 철학 등 그의 사상적이며 정신적인 ‘골격‘은 프랑스어로 형성된 것이다.
이 글을 쓰면서 문득 대화와 리스트 악곡의 관계에 대해생각에 잠겼다.
리스트의 방대한 작품 중에는 다른 작곡가의 멜로디를리스트 풍의 화려한 기교로 편곡한 ‘패러프레이즈‘ 곡이 무수히 많다.
패러프레이즈란 원래 수사학 용어로 ‘유사한‘, ‘의사적인‘
을 뜻하는 ‘패러para‘와 ‘글, 말‘ 또는 음악의 ‘악구‘를 뜻하는 ‘프레이즈pharase‘가 합쳐진 말이다. 본래의 글이나 한 절을 다른 말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다시 들어보면 이 패러프레이즈는 프랑스어 대화를 피아노로 치는 듯이 들린다. 마치 살롱에서 오페라나 회화나 문학에 대한 화제를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 P78

여성들을 매료시킨 세련된 동작이나 고귀한 분위기, 홀륭한 매너 등은 모두 그가 살롱에서 배운 무기들이다. 많은사람에게 절찬을 받은 그의 인품이나 품격은 리스트가 노년이 될 때까지 빛이 바래는 일이 없었다. 그것은 매너뿐만아니라 피아노나 작곡에서 다채로운 표현을 할 때도 크게공헌했을 것이다.
살롱이라는 무대에 우뚝 선, 누구와도 감히 견줄 수 없었던 리스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 P8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