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우리는 거듭 현상학을 곧바로 하나의 형상적 학문이라 불렀다. 여기에서 다시 어떤 방법적 근본물음이 일어나고, 새로운 분야속에 열렬히 파고들어가려는 우리를 억제하는 하나의 의혹이 제기Lo PRA된다. 현상학에 단순히 기술하는 목표를 삽입하는 것은 올바른가? 기술적 형상학 이것은 도대체 전도(顚倒)된 것이 아닌가? - P239
우리는 이에 대해 그러한 다양체는 ‘수학적으로 남김없이 정의할 수있는 것‘이라는 두드러진 속성을 갖는다고 할 수도 있다. ‘정의‘(定義)는 공리적 개념과 공리의 체계 속에 있고, ‘수학적으로 남김없이‘ 는 다양체와 관련해 정의하는 주장이 생각해볼 수 있는 가장 큰 선입견규정되지 않은 것은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는 선입견을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 P243
여기에 관련되는 모든 원리적 물음에 대해 완전히 명석하게 밝히는 것, 따라서 결정된 다양체의 개념을 고정시킨 다음 실질적으로 규정된 분야가 이 분야가 이러한 이념에 상응할 수 있을 경우만족시킴에 틀림없는 그 필연적 조건을 숙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학문이론의 문제다. 이에 대한 하나의 조건은 ‘개념형성‘의 정밀성이다. 이 개념형성은 결코 우리의 자유로운 자의()나 논리적 기술(術)의 소관사항이 아니라, 어쨌든 직접적 직관 속에 반드시 입증할수 있을 추정된 공리적 개념의 관점에서 파악된 본질 자체 속의 정밀성을 전제한다. 그러나 어떤 본질분야에 어느 정도까지 ‘정밀한‘ 본질이 발견될 수 있는지, 하물며 정밀한 본질이 실제적 직관 속에 파악할 수 있는 모든 본질에 또한 그래서 모든 본질의 구성요소에 기초가될 수 있는지는 철저히 그 분야의 고유한 본성에 달려 있다. - P245
현상학의 정초를위해 유비화(化)에 의해서는 아무것도 획득되지 않는다는 것은지금 우리에게 완전히 명백하다. 역사적으로 주어진 철저하게 정밀한이념학문인 아프리오리한 학문의 방법론이 즉시 모든 새로운 학문, 특히 우리의 선험적 현상학에 대해 마치 유일한 방법적 유형을, 즉 ‘정밀함‘의 유형을 지닌 형상적 학문만 존재할 수 있을 것처럼-모범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단지 잘못으로 이끄는 편견일뿐이다. 그러나 기술하는 본질학문인 선험적 현상학은 수학적 학문과는 총체적으로 다른 근본부류의 형상적 학문에 속한다. - P250
모든 자아는 자신의 체험을 겪으며, 이 체험 속에는 많은 종류의내실적인 것과 지향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다. 자아가 체험을 겪는다는 것은 자아가 체험을 그리고 체험 속에 포함된 것을 ‘시선 속에 갖거나 체험을 내재적 경험 또는 그밖에 내재적 직관이나 표상의 방식으로 파악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시선 속에 있지 않은 모든 체험이 이념적 가능성에 따라 ‘주시된 것‘이 될 수 있으며, 자아에 대한반성은 이제 그것이 자아에 대한 객체가 되는 것으로 향하며, 체험의구성요소에 대한 그리고 그 지향성에 대한 체험이 그것에 관한 의식인 것에 대한) 가능한 자아시선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반성은 또다시체험이며, 그러한 체험으로서 새로운 반성의 기체(體)가 될 수 있고, 이것은 원리적 일반성에서 무한히 계속될 수 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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