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적 방식에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모든 논의가 그것을 둘러싸고 조직되는애매한 지점을 건드리고 있다. 말해진 것을 언표하는 말함은 감성적인 것 속에 있는 최초의 "능동성"으로서, 이 능동성은 이것을 저것으로서 포착해낸다. 그러나 이 포착과 판단과 주제화와 이론의능동성은 그 말함 속에서 순수한 "타인을 위함으로서, 순수한 기호의 부여로서, 순수한 "기호되기"se-faire-signe로서, 순수한 자기표현으로서, 순수한 진정성으로서, 순수한 수동성으로서 출현한다. - P138
다시 복구하는 운동으로 귀착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식의 자기 회수, 재정복, 대-자pour-soi가 생동시키는 것은 여전히, 실체의바탕에서 인지된 주체성이다. 즉, 존재성은 자신의 코나투스를 빠져나가지 못한다. 감성의 주체성, 육화인 주체성은 복귀 없는 포기이며, 타자를 위해 고통을 견디는 모성의 몸이다. - P173
적 의미를 가질 것이다. [반면에] 근접성의 절대적이고 고유한 뜻은 "인간성"을 전제한다.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과연 인접성 그 자체가 근접성 없이, 즉 다가감, 이웃함, 접촉 없이 이해될 수있는가? 그리고 이 공간의 동질성이 모든 차이에 맞서는 정의의 인간적 의미작용없이, 따라서, 정의가 그것의 항인 근접성의 모든 동기작용 없이 이해될 수 있는가? - P176
근접성은 하나의 상태나 휴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불안정이고, 비장소이며, 휴식처의 바깥이다. 이것은 한 자리에서 휴식을 취하는 존재의 비-편재가 누리는 평온함을 뒤엎는다. 따라서 근접성은 포옹처럼, 언제나 불충분한 근접성이다. "충분히가깝지 못하므로", 근접성은 구조로 굳어지지 않는다.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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