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자 대부분은 개인적인 삶의 틀 안에서 외상 경험을 완결해 간다. 그러나 특정한 소수는 외상을 경험하고서 더 넓은 세계에 참여하도록 부름받은 것처럼 느낀다. 이러한 생존자들은 불운에 놓인 정치적, 종교적 차원을 인식하고, 이것을 사회적인 활동의 근간으로 삼으면서 개인적인 비극에 담긴 의미를 전환시킬 수 있음을 발견한다. 잔학함을 보상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지만, 이것을 초월하는 방법은 있다. 다른 이들에게 힘으로 남겨 주는 것. 외상은 생존자 임무의 원천이 되고 나서야 구원된다.
-알라딘 eBook <트라우마>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중에서
연구 과제에서 착취적인 관계가 재현되는 양상을 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끔찍한 사건에서 생존한 이들은 다른 이들을 도움으로써 자신의 고통에 의미와 존엄을 부여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연구 참여자로 나서겠다고 마음먹는다. 생존자와 연구자 사이의 관계는 다른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권력이 불균형적이며, 정서적으로 전염될 위험을 가지고 있다. 초기 연구자들은 외상 생존자와 강한 개인적 유대감과 정치적 연대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은 생존자를 냉정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닌, 공유된 목적을 나누는 협력자로 보았다. 그러나 거리를 두는 냉랭한 위치에 서야만 곧 편향되지 않은 관찰이 된다고 간주하는 연구 문화 속에서 이러한 종류의 친밀감과 상호성을 유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것이 없다면 서로를 신뢰하고 이해할 가능성은 사라질 것이다.
-알라딘 eBook <트라우마> (주디스 허먼 지음, 최현정 옮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