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 견해마저도 부분적으로만 진리일 뿐이다. 더 높은 시각에서 바라보면 우주의 진화에서 이탈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의 무의식과 그것이 만들어 내는 고통까지도 진화 과정의 일부이다. 끝없는 고통의 악순환을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당신은 깨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므로 더 넓은 그림에서는 고통체 역시 그 나름의 존재 가치가 있다.
-알라딘 eBook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중에서
그러나 아이는 이미 부모의 고통체로부터 나오는 고통을 흡수했을 수도 있고, 그렇다면 부모는 아이에게서 자신들 안에도 있는 것의 반영을 볼지도 모른다. 특히 예민한 아이는 부모의 고통체에 영향을 받기 쉽다. 부모의 정신이상적인 드라마를 눈앞에서 보는 것은 견디기 힘든 감정적 고통의 원인이 되며, 예민한 아이는 종종 무거운 고통체를 지닌 어른으로 성장한다. 부모가 자신들의 고통체를 숨기려고 하면서 "아이 앞에서는 싸우지 말자."라고 말해도 아이는 속지 않는다. 부모가 정중하게 대화를 나누어도 그 가정은 부정적인 에너지가 가득하다. 억압된 고통체는 특히 해로우며, 드러내놓고 활동하는 고통체보다 훨씬 독성이 강하다. 그 정신적인 독은 아이에게 흡수되어 아이의 고통체까지 발달시킨다.
-알라딘 eBook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중에서
아이가 고통체의 공격을 받는 동안은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 순간에 깨어 있으면서 감정적인 반응에 말려들지 않도록 하는 것 외에는 별로 없다. 아이의 고통체는 감정적인 반응을 먹고 더 커질 것이다. 고통체들은 매우 극단적으로 드라마틱하다. 그러므로 그 드라마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야 한다. 원하는 것을 방해받아 고통체가 활성화된 경우에는 아이의 요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는 ‘내가 더 불행해질수록 갖고 싶은 것을 더 많이 얻게 된다
-알라딘 eBook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중에서
그런 활동적인 고통체를 가진 사람과 맞닥뜨리게 되면 반응하지 않기 위해 매우 강하게 현재의 순간에 존재할 필요가 있다. 당신이 현재의 순간에 머물 수 있다면, 그것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자신의 고통체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갑작스러운 깨어남의 기적을 경험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 깨어남은 단시간에 끝날지 모르지만 그것으로 인해 깨어남의 과정이 시작된다.
-알라딘 eBook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중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자주 물어보자.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사람, 이 상황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아도 풍요를 느낄 수 있고, 늘 풍요를 느끼면 모든 것이 계속해서 당신에게로 온다. 풍요는 이미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불공평하게 들리겠지만 그렇지 않다. 그것이 우주의 법칙이다. 풍요도 결핍도 내면의 상태이며, 그것은 당신의 현실이 되어 나타난다. 예수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했다.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알라딘 eBook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류시화 옮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