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세계화의 흐름을 가로막으며 폐쇄적인 국가주의를 강화한다는 우려도 있지만 실상은 모든 것이 자유로이 오간다는 세계화의 기치가 환상임이 드러난 데 가깝다. 코로나19와 씨름하는 과정은 육신과 그것이 속한 장소의 결속이 간단히 초월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 과정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팬데믹이라는 전지구적 위기가 요구하는 거대한 변화의 실마리 역시 한국사회라는 특정 장소의 감각에 충실함으로써만 포착될 수 있다고 믿는다. 더욱이 세계 다른 많은 나라들, 특히 서구 국가들이 민주주의적 동력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기에 한국은 촛불혁명에서 비롯한 남다른 변화의 기운을 발동하던 중이었다. 팬데믹의 확산과 저지가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달렸듯 팬데믹이라는 무시무시한 계기를 대전환으로 돌파할 방도 역시 주어진 맥락과 역량에 연동될 수밖에 없다면, 다른 어느 곳이 아닌 ‘한국’의 길을 모색하는 의의는 한층 크다고 하겠다.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그러나 배제를 전제하므로 제대로 ‘작동하는’ 공동체란 애초에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저항’ 강박의 또다른 사례일 뿐이며, 배제를 멈추기 위해 공동체 자체를 ‘작동하지 않게’ 만들자는 제안도 당면한 위기에 응답하는 대안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끊임없는 포함의 운동으로 공동체를 재구성하는 것이 적절한 방향이며 여기에는 다시 포함의 성격을 재규정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그렇듯 전면적으로 공동체를 혁신하려는 담론적 실천으로 ‘커먼즈’(commons,공동영역) 논의가 있다. 이 담론에서 ‘커먼즈’란 단순히 공유지나 공유자원 같은 것이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정치의 주체라는 자각 속에서 국가와 공적인 공간을 장악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 그 자체"16를 핵심으로 한다. 그런 공동체의 구성원이란 ‘소속’된 이들이 아니라 주체임을 자각하고 변화의 노력을 수행함으로써, 다시 말해 ‘커머닝’(commoning) 작업을 수행함으로써, 공동체를 비로소 생성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여기서도 배제가 야기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의 배제는 억압이 아니며 ‘포함’의 대립물조차 아닌, 실현을 기다리는 대기 상태의 잠재성이다.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하지만 데리다의 우정론은 늘 그렇듯 공동체와 사회적 유대를 넘어 근본적 비대칭과 이질성에 개방된 우정이라는 문제에 초점이 가 있고 타자를 향한 (무조건적) 환대 개념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공동체의 재구성에 방점을 두는 커먼즈 담론과는 거리가 있다.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코로나19 이후 한국에서 부상하는 돌봄 중심 사회로의 전환 논의는 이제까지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돌봄과 재생산 노동에 대한 재평가 없이는 근본적인 사회변화가 불가능함을 역설한다는 점에서 페미니스트 탈성장 논의와 통하는 바가 있다. 김현미는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우리가 확인하는 진실은 인간이란 돌봄과 가치를 추구하는 존재이고, 개인의 희생이 아닌 협력적 공공의 개입을 통해 돌봄이 이뤄질 때 가장 공평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생명과 생태계를 돌보는 노동의 가치가 여전히 다른 노동에 비해 저평가되고, 이런 노동을 여성이나 이주자의 일로 본질화한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하면서 "포스트 코로나의 대안적 사회 구성은 이제까지 들리지 않았던 여성과 소수자의 목소리를 담아냄으로써만 가능하다. 이들의 경험과 희망이 직업의 재설계와 대안적 사회기획에 반영될 때, 인간과 동료 종의 공존, 인간 사이의 평등에 다가갈 수 있다"라고 주장한다.14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돌봄민주주의 개념에 대해서는 조안 C. 트론토 『돌봄 민주주의』, 김희강·나상원 옮김, 아포리아 2014 참조. 트론토(Joan C. Tronto)는 돌봄을 ‘가능한 한 세상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우리의 세상을 바로잡고 지속시키고 유지시키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을 포함하는 종(種)의 활동’으로 정의한다. 그는 이제까지 성별화된 형태로 수행되어온 돌봄노동이 많은 무임승차자를 양산했음을 지적하면서 돌봄의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함께 돌봄’(caring with), 즉 정의·평등·자유에 대한 돌봄의 민주적 기여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돌봄민주주의 개념을 문학비평에 활용한 최근의 글로는 신샛별 「불평등 서사의 정치적 효능감, 그리고 ‘돌봄 민주주의’를 향하여」, 『창작과비평』 2020년 여름호 참조.
-알라딘 eBook <코로나 팬데믹과 한국의 길> (황정아 외 지음)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