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첨단 장비 및 기술에 대한 의존성은 과학기술 또는 의료기술에 내재한 경향성이나 동력의 결과가 아니다. 어떤 과학기술이 사회적으로 채택되고 촉진되는 데, 또는 기각되고 위축·소멸하는 데는 일정한 사회적 조건과 맥락이 작용하며, 이 또한 권력관계가 작동한 결과이다.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코로나19 백신이 좋은 예가 아닐까. 다른 신종 감염병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신속하게 백신기술이 개발되고 대량생산에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세계적인 대규모 수요가 존재하는 데다 선구매 등을 통해 생산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장했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주지하다시피 수명 증가와 현대의학의 발전 방향 속에서 ‘밥숟가락 뜰 수 없는 몸’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질병, 장애, 노화 중 무엇이 계기가 되든 피해가기 쉽지 않은 우리의 미래이다. 그리고 모두가 밥숟가락 뜰 수 없을 정도로 극도의 상태가 되지 않더라도 현대사회는 만성질환의 시대이다. 이상적인 건강한 몸은 많지 않으며, 상당수의 시민은 일상적으로 아픈 몸을 적당히 관리하며 질병과 공존한다. 그렇다면 아프고 병약한 몸은 어떤 조건과 관계 속에서 약자화되지 않고, 불행으로 미끄러지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해 ‘질병권’을 주장해 왔다. 건강의 손상이 삶의 손상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었다. 질병에 대한 사회의 제도와 태도가 바뀌면 아픈 몸들도 지금처럼 불행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살 수 있으며, 질병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비혼의 이유는 제각각이다. 가부장적 결혼제도에 부응하는 삶이 수치스러워서, 성소수자라서 혼인신고가 불가능해서, 독점적 관계가 싫어서, 그저 혼자인 삶이 좋아서인 친구도 있다. 어쨌거나 다들 비혼이라는 방식 자체가 가부장적 가족제도,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에 균열을 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현행법은 노동시간이 월 60시간(4주간 주 평균 노동시간이 15시간인 경우)에 못 미치는 이른바 ‘초단시간노동자’에 대해서는 주휴 수당, 퇴직금, 연차휴가(미사용 시 수당 지급) 규정을 적용하지 않고 있다. 또한, 보험료의 일부를 사용자가 부담하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직장 가입 의무도 없어진다. 이 때문에 직원들의 노동시간이 주 15시간을 넘느냐 마느냐는 사업체 전체 인건비 규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같은 자본주의 사회경제체제에서도 보건의료 생산 조직과 의료와 돌봄 등 생산물의 특성은 달라질 수 있다. 거시적으로는 보건의료의 ‘생산양식’이 어떤지에 따라*, 미시적으로는 이윤 추구의 강도가 얼마나 강한지에 따라 생산 조직의 특성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여기서 거시적 생산양식과 미시적 이윤 추구의 동기는 독립적이거나 병렬적이라기보다 한쪽이 다른 쪽을 규율하고 의존하는 관계이다. 미시적이라 표현한 이윤 추구 또한 우연히 나타나는 개인의 성향이라기보다 생산체제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구조적인 요소이다. 같은 비영리병원도 어떤 국가 소속이냐에 따라 영리 추구 행태가 다르고, 같은 체제 안에서도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수익 추구 행태가 다른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돌봄이 돌보는 세계> (김창엽 외 지음, 다른몸들 기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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