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입으로 대변이 나오는 광경은 과학적이라지만, 인간의 논리로는 설명되지 않는 일인 겁니다. 그들이 목도한 똥을 토하는 입이 그 과학과 논리의 아슬아슬한 접점에 있었다고나 할까요. 이토록 의학은 과학이지만 인문학적인 순간들이 있습니다. 흥미롭게도요.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응급실은 병원 안에 있지만, 바깥세상의 한복판에 있기도 합니다. 바깥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면, 응급실에서도 고스란히 그 일과 관련된 소동이 벌어집니다. 그래서인지 병원에서 근무하기도 하지만, 사회 한복판에서 일한다는 느낌을 받기도 한답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슬픔에 젖곤 하지만, 사회라는 곳이 꼭 슬픔만 가득찬 곳이 아니듯 응급실에도 가끔씩 기쁘거나 미묘한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날 저는 환자를 하나 잃고 다른 환자들을 정리한 다음 의국에 돌아오자마자 우루과이의 추가골 장면과 우리 대표팀의 패배를 똑똑히 지켜봤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잊히지 않는 것은 그날의 축구 경기보다 그 순간의 그 표정일 겁니다. 그것이 응급실이라는 미묘하고 특수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인간사가 주는 재미라고 해야겠지요.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우리나라 법규상 사망의 판단은 의사 면허를 가진 사람만 할 수 있다. 소방대원들은 당연히 의사 면허가 없다. 그래서 소방대원들이 현장에서 사체를 발견하면, 법적으로 사망을 선고할 권리가 없다. 사망한 지 너무 오래 되어 사체 강직이 있고, 시반이 뚜렷하며, 부패가 시작된 상태여도 법적으로 소방대원은 사체를 살리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한다. 부패가 시작되고 구더기가 끓는 사체의 입을 벌려 기관 삽관을 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일은 얼마나비효율적인데다가 충격적인가. 하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없다. 의료 지도 의사가 대신 그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대원들은 뻣뻣하게 굳은 사체를 발견하면 근무중인 나에게 전화를 건다. 그리고 현장의 상황과 사체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한다. 나는 그 설명을 가려듣고 객관적인 증거를 찾는다. 그리고 그 죽음이 명백하다고 판단되면 이렇게 말한다. "네, 심폐소생술은 유보하겠습니다. 사후 조치만 부탁드리겠습니다." 이것이 내가 할 일의 ‘거의’ 전부다.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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