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가 쓴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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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락처럼 그 말이 내 몸속에 들어온 순간, 머릿속에 들어차 있던 혈압, 맥박, 산소포화도 등이 싹 달아나버렸다. 이곳에서 이 말을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고, 내가 주치의였다. 나는 의사라는 명찰을 달고 내 환자의 존엄과 고독은 깡그리 무시하고 있었다. 자기혐오가 들어 구역감이 밀려왔다. 나는 처음으로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열어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그것은 내가 몇 년 만에 사용하는 중국어였다.
"당신은 죽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은 곧 편히 잠들 것이고, 눈을 뜨면 당신의 남은 세계가 펼쳐질 겁니다. 당신은 죽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당신을 살려낼 겁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더이상 중얼거리지도 않았다. 의외의 모국어를 들어서인지, 아니면 의식이 떨어져서인지 그의 표정이 약간 풀렸다. 그러고 고개를 바로 놓고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곧, 그를 실은 침대가 수술방으로 빨려들어갔다.

-알라딘 eBook <만약은 없다 : 응급의학과 의사의 죽음과 삶, 그 경계의 기록> (남궁인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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