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건강의 편에는 항상 편안함, 안정, 힘,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아프지 않은 내 몸으로 사는 일은 얼마나 행복한지요. 탄탄한 근육을 드러낸 모습에서, 최신 유행의 옷을 입고 멋진 자세를 취한 모습에서 우린 아름다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반대편을 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모습이 나에게 초래하는 불편은 어떤 반응으로 이어지는지요. 나의 불편함을 상대방의 안녕으로 치환하여, 상대방을 도움받아야 할 대상으로 격하시킬 때가 있습니다. 도와줄 테니 더이상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죠.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을 테니 우리가 준 도움으로 만족하라고요. 물론 마투슈카의 사진이 당시 유방암 운동의 상징이 되었을 때, 사진은 그런 사회의 구속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으로 읽혔습니다. 하지만 벌써 이십 년이 지났습니다. 마투슈카의 사진, ‘폐허가 된 여성의 신체’는 다른 방식으로 읽혀야 할 때가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진은 운동의 색채를 벗고 슬그머니 머릿속으로 들어와 속삭입니다. ‘지금 느끼는 불편함을 부정하지 말아요, 당신은 상처 입었고, 상처 입을 수 있어요.’ 우리는 영원히 살 것처럼 상처의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애써 지우려 애씁니다. 하지만 온전함이란 환상 같은 것, 오히려 수많은 상처를 기우고 꿰매며 여기까지 온 것이 삶 아니었는지요
-알라딘 eBook <아픔은 치료했지만 흉터는 남았습니다> (김준혁 지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