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조지 오웰 지음, 이기한 옮김, 벤 핌롯 해설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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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
조지 오웰.

어떻게 피해도 어디서든 읽게 되는 책들이 있다. 데미안, 호밀밭의 파수꾼, 까라마조프라든가 .. 고전의 고전이라 인생의 인덱스가 되는 책들. 1984도 그런 책이다. 굉장히 많은 출판사의 다양한 표지와 다른 말맛의 번역들로 읽고 또 읽고 듣고 쓰고 공유하는 감상들까지. 몇 번째 읽는 1984인지 기억도 안 나지만, 펭귄클래식의 번역가 해설은 굉장히 좋았다. 도서를 지원받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간의 1984도 한번에 해소되는 듯 했달까.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국가, 권력이 유지되고 혹은 유지되기 위해 개인을 어떻게 통제하고 감시하는지, 언어가 사고를 어떻게 지배하고 폭을 좁히고 인간과 인간성을 파멸에 이르게 하는 지, 종국에는 빅 브라더를 사랑하게 된 윈스턴을 통해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전체주의 국가의 폐해라고만 할 수도 없이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맹목적으로 제공되고 사고를 허락지 않는 듯한 속도와 반응을 요구하는 어떤 현상들이 어쩌면 이 시대의 빅브라더는 아닐까. 서로가 서로를 들여다보며 내적친밀감 속에 모두의 평균과 상식을 강요하고 강요받는 우리 모두의, 개인적이지만 공공연한 공개된 일상들 속 알고리즘이라는 이름의 빅 브라더.

새삼 생각을 많이 하며 읽게 된 데에는 번역의 덕이 크다고 생각한다. 몇 권의 다른 출판사 책들가 비교해보아도 번역된 문장들이 읽기에 편안하다. 한자어나 번역을 번역한 듯한 표현들이 없이 윤독에도 낭독에도 맛있게 읽혀 좀 더 빠져들어 읽기 좋았다.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당신은 당신 안에 어떤 사유를 담고 무엇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어떤 미래로 나아갈지.
그럼에도불구하고 언제나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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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벨 이렌 네미롭스키 선집 6
이렌 네미롭스키 지음, 채단비 옮김 / 레모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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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디스 아이제나흐, 베르나르 마르탱 살인으로 기소
“용서를 구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글라디스를 악녀라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독모를 통해 이야기도 듣고 나눠봤지만, 그녀가 과연 악녀라 할 수 있을까?
그녀를 욕하고 벌할 수 있는 자가 호칭으로써 “제자벨”이라 부르는 것은 응당 받아들일만 하지만, 글라디스 그녀는 그녀가 원하는 곳에서 구미에 맞는 사랑을 얻으며 삶을 살고 채우는 것을 인생으로 알고 엄청난 노력과 의지로 그 날 그 밤 그 사건까지 살아왔다. ‘최소한의 최선’에 등장했던 외할머니처럼, 능력과 관심 외의 것에는 애쓸 이유가 없지 않나. 삶은 어떤 형태로든 거의 항상 치열하므로. 글라디스의 미래와 과거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니, 그 또한 축하할 일이다. 그녀가 원한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여자는 몇 살까지 매력적일까요?”

‘걸어, 내 몸아. 움직이라고, 이 늙어빠진 몸뚱아리야. 말 좀 들어!’

100년 전 소설 속 주인공의 삶에 대한 경건하고 곧은 태도와 의지와 노력을, 오늘을 사는 우리는 각자 어떤 장면에서 발휘하고 있는지, 혹은 더 분발해야 하는 지, 그 욕망에 대한 책임감을 마냥 욕망 자체를 손가락질하기보다, 나는 내 욕망에 어떻게 임하는지 잠시 생각해 본다.

‘읽어, 내 눈아. 더 읽으라고, 핸드폰 볼 때가 아니야. 말 좀 들어!’

글라디스, 비록 그대 인성은 별로지만, 그대의 어떤 부분은 굉장히 매력적이라오.
이 매력은 나이를 먹을수록 더 빛날 테니, 기대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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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불복종 - 헨리 데이비드 소로 수필집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39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김욱동 옮김 / 문예출판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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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데이비드 소로.
독자의 대부분은 ‘월든’으로 알텐데, 나에게 월든은 너무나 높은 벽이다. 사실 세 번 도전해서 그만큼 중도포기한 기억이 쓰게 남았다. 헨리 페트로스키의 ‘연필’에서 소로의 이야기가 잠시 등장하면서 소로가, 월든이 ‘언젠가 다시 한번’, 꼭 한 번은 언젠가‘ 하고 마음을 달래준 기억이 난다.

문예출판사의 『시민불복종』. 9개의 글이 묶인 이 책은 소로와 소로의 글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주었다. ’아니, 소로는 그대로인데?‘ 라고 할테니 다시 말하자면, ’나, 소로의 이런 글 좋아하네!‘ 정도랄까.

그러고보니 어느 출판사였나, 소로의 일기 시리즈를 읽고 놀란 때도 있었다. 앞의 두 편, 시민불복종과 존 브라운 대위를 위한 청원과는 다른 결로, 뒤를 채운 글들은 굉장히 깊이 들여다보고 느끼고, 기록하는 사람이구나. ’생태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라는 표현이 적확하다 싶게 요소요소의 장면들에서 대자연과 인간, 삶과의 연결고리에 대한 메시지들. 많은 작가들이 그렇겠지만, 그 글들은 ’본다‘는 것과 ’쓴다‘는 것에 대해 ’나‘라는 필터를 더 분발케했다.

게다가 시절이 시절인 지라, 충분히 정치적일 수도, 다분히 철학적일 수도 있는 요즘을 살면서 시민불복종, 이 글은 굉장히 좋았다. 문장의 엄정함과 간결함, 의미 전달로서의 글. 해설에서 연설이 먼저였고 그 뒤에 글로 발표되었다는 내용을 보고 느낌에 대한 이해가 단박에 가능했다. (이런 정보는 꽤 훌륭한 팁이다)

나는, 사회적이라는 말을 정치적이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혼자 숲에서 대자연을 누리고 느끼던 순간에도 소로는 충분히 사회적이었고 정치적이었고 완곡하게는 철학적이었다. 고뇌와 외침을 두루 그리고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던 문예출판사의 『시민불복종』. 추천한다.


내가 기꺼이 복종할 의사가 있는 정부라 할지라도, 정부의 권위는 아직 순수하지 못하다. …… 정부가 엄밀하게 정의로워지려면 피지배자의 허락과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p.49

“그 누구도 나를 이곳에 보내지 않았습니다. 내 발로 걸어서, 나의 창조주를 따라 왔습니다. 인간이 모습을 한 어떤 주인도 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p.93

낙엽 하나를 집에 가지고 가 한가할 때 난롯가에서 자세하게 살펴보라. 그것은 옥스퍼드 서체에서 가져온 활자도 아니고, 바스크나 화살촉의 모양 기호도 아니고, 로제타석에서 발견한 활자도 아니다. 하지만 만약 이곳에서 …… 또 윤곽은 얼마나 자유분방하고 보기 좋으며, 곡선과 각도는 얼마나 우아하게 결합되어 있는가! 잎이 아닌 부분과 잎인 부분, 널찍하고 자유롭게 탁 트인 결각 위와 길고 날카로운 억센 털처럼 뾰족한 열편 모두가 두 눈을 즐겁게 한다.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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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책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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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통브 책은 처음인 것같다. 작가의 이름을 기억하며 때로는 찾아 읽기 시작한 이래 노통브에 대한 기억이 머릿속에도 혀끝에도 없다. 그렇다면 손이 안 가는 게 평소의 자연스런 흐름이랄까. 하지만 『자매의 책』은 탱탱볼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음 전개와 발칙하다싶게 까발려진 표현들, 충분히 공감가능한 감정선들로 쭈욱-쭉, 읽었다. 재미있네, 노통브.

딸 셋 중 첫째로 큰 나에게 이런 자매 사이는 꿈에도 없을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래서 더욱 트리스탄의 고독과 사랑의 크기가 간절하고 진실하다 느껴지기도 했다. 플로랑과 노라의 서로만 보는 사랑과 트리스탄이 주변을 돌보는 사랑. 시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며 성장하는 사랑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라지도 못하고 그나마의 세상도 파괴해버리는 사랑. “선민의 사람”이라고 표현된 트리스탄과 그녀 주변 몇몇이 보여준 사랑은 정말로 강력하고 절대적이었다.

플로랑과 노라의 방임, 레티시아의 탄생이 이어진 그 시간의 트리스탄은 30년 전 쯤 읽었던 『딥스』나 『한 아이』같은 책이 떠오르기도 했다. 아이가 어른스러워질 때, 어른스러움에 대한 기준이라 레퍼런스가 없는 아이는 지극히 정상적인 예스와 노의 집합으로 이루어져, 현실의 어른보다 더 강하고 단단한 모습의 어른의 모습을 한다. 트리스탄이 그러했던 것처럼.

코제트의 마지막과 노라의 마지막. 둘의 선택에 대해서 이해가 아직은 불가하지만, 그 또한 이해되는 순간이 오겠지. 다만 트리스탄이 더는 침울해하지 않기를, 그래서 누구와도 그런 대화를 이어가지 않기를 응원한다. 언니같은 레티시아의 곧은 사랑이 트리스탄을 잘 지켜주기를, 부디.

내 여동생 둘에 대해 잠시 생각해보았다. 부모님 슬하에서야 다투면서도 곧잘 지내는 사이였지만, 더 이상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지 않게 되고, 그래서 서로의 자리로 감정을 끌고 가버릴 수 있게 된 언젠가부터, 트리스탄-노라보다 먼 사이가 된 우리는, 생각해보면 그저 지금 이게 정답이 아닐까 싶게, 비로소 편해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필요한 순간이 오면 조금은 거리를 좁혀봐도 좋겠지, 까지가 말하자면 독후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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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월일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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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하룻저녁에 다 읽지 말라던 이 책을 정말로 하룻저녁에 다 읽고야 말았다. 딩씨때도 그랬듯, 참을 수가 없어서, 궁금해서 병날 것 같아서, 도대체 이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런 이야기를 쓰는 이 작가는 또 어떻게 갈무리해야하나 .. 온통 당혹스럽고 모든 것이 경이롭다.

 

셴 할아버지와 눈먼 개의 삶과 죽음에서의 동행. 옥수수를 이렇게까지 들여다보고 응원한 적이 있었나 싶었던 주인공, 옥수수. 처절했던 더위와 강렬했던 쥐떼들. 적막과 고독. 모든 것이 경이지만, 많은 것들이 슬펐고, 삶도 죽음도 희망을 말하는 엔롄커. 굉장하다.

죽음 같은 정적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존재에 대해 의심하고 따져볼 필요도 없이 응당 그래야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 서로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이야기.

 

길지 않은 분량에 가독성은 최고이며, 바뀐 표지 덕에 동화로 읽기 더 좋을 연월일은 프랑스 중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꼭 읽어보면 좋겠다. 문학으로 울리는 가치는 문자나 말로 표현하지 못 하는 더 크고 단단한 어떤 것을 우리들 마음에 자라게 하니까. (나 역시 꼭 소중한 내 아이들에게, 귀한 이 글을 읽어보라고 강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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