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로냐프 강 2부 세트 - 전5권 - 이백 년의 약속, 한국환상문학걸작선
이상균 지음 / 제우미디어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2부의 이야기는 1부가 끝난 시점(퀴트린과 파스크란이 이나바뉴 기사단을 향해 단 두기로 돌진하고, 게르드 라벨과 저자를 산책하던 멜리피온 라벨이 아아젠일지, 혹은 그녀의 노래를 부르는 다른 음유시인인지 모를 어떤 여성 음유시인을 만난 그 후)로부터 70년 정도 지난 뒤의 이야기이다. 

  하얀로냐프강 1부가 인간적인 신화시대를 노래했다면, 2부는 그야말로 인간다운 인간의 시대를 그리고 있다. 긍지높은 기사와 낭만적인 카발리에로가 실존하던 1부에 비해 2부는 기사들이 자신의 욕망을 쫓아 기사도나 카발리에로를 수단으로서 이용하는 세계가 되어버렸다. 겨우 100년도 지나지 않은 그 시간동안 가치관이 많이 바뀌었고, 강한 적을 만나면 경의를 표하던 저 전설적인 기사들 대신 그저 이기기만 하면 그만이며, 승자가 정의라고 온몸을 외치는 이나바뉴의 기사 제라하 라벨(멜리피온의 핏줄에서 이런 자식이 나왔으니 이 또한 재미있긴 하다)이나 나이트 엑시렌이 자리잡고 있다. 비록 곳곳에서 1부의 기사들이 남긴 흔적이 보이지만, 그것이 영향을 미치기에는 이미 세상은 너무 많이 타락(?)해 버렸다. 크실과 로젠다로와 루우젤마저 지배하에 둔 대국 이나바뉴가  이룬 평화의 시대는 전투를 위해 존재하는 기사들의 존재의의를 퇴색케 했기에, 그 평화의 시대에 자신의 위치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기사들은 썩어가는 이나바뉴 계급제도와 함께 빛이 바랜다. 그에 반해 이나바뉴에 눌리고 천대받아온 루우젤 시민들은 오히려 인간답게-라는 로젠다로의 기치를 이어받아 계급제도를 타파하고 독립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데, 이 때문에 절대선과 절대악이 나뉘어져버려서(루우젤 <> 이나바뉴)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하며 계급제도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혹은 자신의 카발리에로를 위해 기사들이 자신의 검을 세우던 1부에 비해 몰입도가 떨어진다. 

  더불어 석궁대(파이아프렌)와 투석차(딤켈마로켄 나이트)라는 병종이 새롭게 등장, 기사의 입지를 서서히 줄여가는데 이때문에 절대적인 열세에 처해있던 루우젤이 이나바뉴와 대등하게 겨룰 수 있게 되지만 이것역시 수우판(후에 루우젤 왕 등극)이라는 한 천재적인 인물에 의해 창설되므로, 이를 보고 있으면 니가 짱드셈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루우젤 최강무적 기사단인 네프슈네 나이트를 창설하고 훈련시킨것도 수우판이고, 석궁대인 할파펠나이트나 투석차부대인 딤켈마로켄나이트를 만든것도 이녀석, 그리고 전장을 주도하는 전략을 짜내는것도 이녀석, 하여간 사실상 루우젤은 수우판 혼자 다 살려먹는거다 다름없다. 좀 투명드래곤인듯.
 
  아무리 평화의 시대라지만 그 큰 이나바뉴에 쓸만한 기사는 라벨빼고는 없다시피 하고, 마찬가지로 평화의 시대에 훈련 하나 안받고 살아온 루우젤 시민은 무적최강 기사단을 만들어서 장비나 훈련도에서 기본적으로 뛰어날 이나바뉴 기사단을 학살하고 다니는걸 보면, 그나마 마지막에 루우젤 기사단을 엿먹이는 엑시렌 역시 사실 루우젤 사람인걸 생각하면 1부의 그 막강한 인적, 수적 저력을 가진 이나바뉴는 대체 뭐였나 싶다. 2부에서 이런 막장전개를 할 것 같았으면 현실적이다 못해 수많은 독자들을 울린 1부의 그 비극(?)을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 퀴트린도 살려서 아아젠이랑 결혼시키고, 파스크란도 여자 하나 잡아서 아들내미 하나 낳고 금발의 귀여운 딸내미를 둔 퀴트린이랑 흑발의 귀여운 사내아이를 둔 파스크란이랑 자기 자식이 잘났네 하면서 싸우는 뒤에서 두 아이가 손잡고 새근새근 낮잠을 자는 화기애애한 엔딩을 왜 안해줬나 싶다. 

  어차피 70년 뒤에는 개볍신으로 전락할 이나바뉴인데 왜 그때는 그렇게 강했나? 똑같이 평화의 시대인데 루우젤은 조낸 강하다. 루우젤이 정의의 편이라서? 웃기지 말자. 이 소설이 검강이 난무하고 9써클 마법이 날아다니는 설정도 아니고, 마법조차 거세된 세계인데 그렇다면 당연히 인재의 수는 인구가 많을수록 많아야 하며 국가의 힘은 인구에 의해 결정되야 하는거 아닌가? 그래서 1부에서 이나바뉴가 그렇게 막강했던 것이고, 그래서 인간답고 가치있는 정치제도를 주창하던 로젠다로의 이상을 1부 마지막에 쪽수로 짓밟아 버렸지 않았나. 그 힘차이를 뒤집으려고 석궁대랑 발석차대를 내놓지만, 아무리봐도 이렇게까지 할까 싶을정도로 무지막지하게 강하다. 신병기의 이점 정도가 아닌듯. 그냥 메테오 날리고 검기를 쓰라니깐. 그 뿐 아니라 아무리 강한 기사라도 수많은 기사들 중 한명일 뿐이었던 1부와는 달리 2부는 수우판, 엘리미온, 라벨, 엑시렌 이 네명이서 다 해먹는다. 이놈들 이외에는 인재가 없다. 전부 이용당하거나 무작정 따르는 똘마니들 뿐. 이 소설이 이계이동차원판타지물이었나? 이놈들만 뇌가 있고 다른놈들은 뇌가 없는듯.
   

 하여간 소설 자체의 완성도는 매우 높은편. 대놓고 까놓고 뭔소린가 싶겠지만 1부에 비해 그렇다는거고, 독립된 작품으로 생각하면 역시 이상균 작가다운 필력이 스며있다. 고 생각이라도 해보고 싶다. 일단 돈주고 샀으니 아까워서. 1부 애장판이나 하나 더 살껄
 

 아 제길. 아아젠. 니 남편은 대체 1 부에서 뭐하러 죽은거래. 차라리 절벽에서 떨어져서 차원이동한 마교교주가 남긴 비급을 보고 무공을 깨쳐서 아수라파천무로 1만 이나바뉴 대군을 쓸어버려도 괜찮았을듯.
                

  조큼 진지하게 덧붙이자면 2부 시대의 기사들은, 퍼언연대기에서 등장하는 용기사들이 사포가 찾아오지 않는 긴 휴지기에 자신들의 존재의의에 회의를 느끼듯 이나바뉴가 만들어놓은 평화의 시대에 자신들이 소용될 곳이 없다는 현실에 치인다. 하지만 그것을 극복하려고 하지 않는다. 퍼언에서 용기사들의 정신적 수장이자 벤덴의 용굴령인 플라르는 용기사의 절대적인 존재의의인 붉은별에서 오는 은색 실 형태의 사포를 모두 물리치더라도 그 후의 먼 미래, 더이상 용기사의 전투력이 필요없는 시대에도 용기사가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고심하고 결국은 찾아낸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나바뉴의 기사들은 완전히 타락하여 권력의 개가 되어있다. 

  기사란 계급과 기사도라는 도덕률을 존중하며 그것이 진정 옳은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 안에서, 또는 그 밖에서 자신의 길을 찾아내던 1부의 기사들과 달리 2부의 기사들은 권력에 의해 타락하거나, 그 타락한 적을 베어넘길 정의의 입장에 서서 칼을 휘두를 뿐, 세계 안에서 기사란 존재가 가지는 의미를 생각하지 않는다. 이 점이 1부와는 달리 2부의 인물들이 깊은 맛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판타지적 로망이나 낭만이 없더라도 인물의 깊이를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만, 이처럼 단편적인 선-악의 대결구도와 권력에 찌들어버린 전형적인 악당들과 전형적인 주인공은 이제 매력이 없다. 


작가의 말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저는 하얀 로냐프강 2부가 "하얀 로냐프강"이면서 "하얀 로냐프강"과는 다른 소설이 되기를 바라면서 원고를 작업했습니다. 제 노력이 성공했는지는 독자분들이 판단해주시겠지요.] 


확실히 1부와는 제목은 같지만 다른 소설이 된듯. 작가님의 의도가 성공한듯. ㅊㅋㅊ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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