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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 도종환의 산에서 보내는 편지
도종환 지음 / 좋은생각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늘도 여여합니다. 이 말을 하기가 참 송구스럽기는 하지만,
그렇습니다. 여여합니다. (중략)
"심심하지 않으세요?"
"심심하지요."
"심심하면 어떻게 하세요?"
"심심한대로 그냥 지내요."
그러면 재미가 없어서인지, 실망스러워서인지, 기대한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러는지 물음을 던진 사람도 피식 웃습니다.
"외롭지 않으세요?"
"외롭지요."
"그럼 어떡해요?"
"외로운 대로 지내지요. 살면서 외로운 시간도 필요해요.
저는 이런 고적한 시간이 내게 온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이렇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된 것도 복 받은 거지요."
그러면 그 사람은 또 피식 웃습니다. 이 웃음은 아까 웃은 웃음과는
다른 것도 같습니다. 조금은 수긍을 하는 듯한 웃음입니다.
(p.36~37)
도종환님의 그 여여하고 심심한 일상에 초대되어 가고 싶다. 이 책의 제목 처럼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의 질문에 답하고 싶다. 그의 숲속 생활이 얼마나 고즈넉하고 조용한지.. 책을 읽다보면 나 또한 명상에 잠기듯 고요해진다.
사람들은 너무나 바쁘다. 몸과 마음이 온통 회사에 쏠려 있거나, 집안일과 아이들의 육아에 온몸을 내던진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스트레스가 많다. 스트레스..언제부터 생긴 말인가. 사회가 좀 더 복잡해지고, 사람들이 조금 더 바빠지면서 우리 곁에 다가온 말이 아니던가.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이 '공자왈''맹자왈'하던 시절에는 없던 말이다. 전기도 없고, 공장도 없던 그때는 사람들이 손수 땅을 파고, 씨를 심고, 천천히 때를 기다려 수확하였다. 땀을 닦으며 세월을 벗으로 삼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여여하였다. 심심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스트레스가 없었다.
오늘하루 너무나 바빠서 밥도 먹는둥 마는둥, 피곤에 지쳐서 집에 왔다면 휴일에는 내 몸을 쉬게 해주자. 내 정신을 맑고 깨끗한 숲으로 초대 해주자.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향기가 있고, 맑은 수채빛 그림이 있고, 작가의 숲속 일상을 들여다 볼 수 있는 일기가 담겨 있는 책, <그대 언제 이 숲에 오시렵니까>.
일요일 오후.. 나른한 시간을 함께할 좋은 친구가 될 것이다.
저것은 맨 처음 어둔 땅을 뚫고 나온 잎들이다
아직 씨앗인 몸을 푸른 싹으로 바꾼 것도 저들이고
가장 바깥에 서서 흙먼지 폭우를 견디며
몸을 열 배 스무 배로 키운 것도 저들이다
더 깨끗하고 고운 잎을 만들고 지키기 위해
가장 오래 세찬 바람맞으며 하루하루 낡아간 것도
저들이고 마침내 사람들이 고갱이만을 택하고 난 뒤
제일 먼저 버림받은 것도 저들이다
그나마 오래오래 푸르른 날들을 지켜온 저들을
기억하는 손에 의해 거두어져 겨울을 나다가
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도 바닥나고 취향도 곤궁해졌을 때
잠시 옛날을 기억하게 할 짧은 허기를 메꾸기 위해
서리에 젖고 눈 맞아가며 견디고 있는 마지막 저 헌신
'시래기' (p.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