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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씨 아줌마의 우리 동네 이야기
김진수 글.그림 / 샘터사 / 2007년 12월
평점 :
'느림씨 아줌마'라고?
'느리다'는 것의 정의를 '게으르다'고 한다면 그녀는 결코 느리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강화도 조용한 시골마을로 훌쩍 떠난 결단은 그녀가 결코 느리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도시 생활이 주는 문명의 헤택을 저버리고 몸을 움직여야 생활이 가능한 시골로 떠난 그녀가 어찌 느리다고 하겠습니까?
'느리다'의 정의를 '자연의 순리에 맞춘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충분히 느리게 사는 아줌마입니다. 봄에는 봄에 할 일을, 여름, 가을, 겨울에는 또 그 철에 맞는 일을 하며 자연의 시간에 맞추어 느리게 느리게 생활합니다. 봄이 오는 소리, 겨울이 가는 소리를 들으며 느리게 살아갑니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논으로 내 옛 동료들이 손뼉 치는 소리를 따라 몰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 불쌍한 나의 친구들. 오늘 하루 남보다 빨리 달린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결혼 후 잠시 섬마을에서 생활했었지요. 작가가 살고 있는 강화도 처럼 남해바다를 끼고 있는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갓 태어난 첫째 아이를 키우며 생활한 적이 있습니다. 눈을 떠 창밖을 보면 저 멀리 바다가 보이고, 들리는 건 바람소리, 파도소리였습니다. 그때는 생활이 지루하고 재미없게만 느껴졌는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그것이 행복이었습니다. 자연의 시간과 더불어 살아가는 느림의 생활,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게 볼 줄 알고, 바람소리에도 귀를 귀울일 수 있었던 멋진 날들이었지요.
생활의 권태를 느끼시나요? 매일 바쁘게 생활하며 크게 한번 웃어본 적 없다고요? 전쟁 같은 도시생활에서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나가기도 바쁜데 '느림씨 아줌마'의 이야기 같은건 볼 시간이 없다구요? 당신이 정말 그렇게 바쁘다면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여유를 누리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불행합니까.
느림씨 아줌마의 이야기에는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때로는 가볍고 즐겁게, 때로는 가슴저미도록 슬프게 삶을 이야기 합니다. 중간중간 삽화를 보는 즐거움도 있습니다. 강화도에 사는 느림씨 아줌마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책읽는 시간이 즐거웠습니다.
"..갈대가 바람에 흔들리며 부스스 메마른 소리를 낸다. 나도 저 소리를 안다. 내 마음속이 메마르고 힘들 때 안에서 나던 소리였다. 갈대가 저희들끼리 몸을 부빈다. 혼자 뭘 잘해 보겠다고 오만 떨지 마라. 피차 불쌍히 여기고 기대며 살아라. 마른 갈대가 흔들흔들, 서로 몸을 기대며 그렇게 얘기하고 있었다. "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