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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혼가 ㅣ 불야성 시리즈 2
하세 세이슈 지음, 이기웅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장기판에는 궁이 2개가 있다.
미동도 하지 않는 그 두개의 왕은 자기에게 주어진 각각의 말들을 움직여 상대의 존재를 지워버리려고 한다.
어떤 말을 잃는 것은 굉장히 아프다. 하지만 어떤 말은 때때로 다음 다음의 수를 위해 일부러 희생시키기도 한다.
상대의 의도를 모르고 상대의 움직임에 홀리는 순간, 그것을 만회하기까지 꽤 많은 희생이 따를 것임을 직감한다.
요행을 바라고 자포자기 식으로 말을 부릴 수도 있다. 운이 좋다면 상대의 목에 칼을 박아 넣을 찬스를 얻을 수도 있다.
장군이오!
그것이 만만한 상대라면 충분히.
하지만 처음부터 웃음을 잃지 않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을 알 수 없는 남자. 류젠이에겐 요행이 통하지 않는다.
사실 류젠이는 한 번, 신주쿠 카부키초라는 장기판에서 사라질 뻔 한 적이 있다.
극적으로 목숨을 건져 연명한 2년 카부키초의 썩은 인간들 사이에서 류젠이는 홀로 인간을 초월한 악마가 되어 있었다.
공존할 수 없는 강적 양웨이민과의 승부를 위해 자신이 갖추어야 할 장기말들과 그것들을 어떤 순서로 어떻게 부려야 할 지 모두 생각해 놓은 상태. 다시 한 번 진흙탕은 핏빛 거품으로 부글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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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기다려 왔던 불야성 삼부작 중 두번째, 진혼가.
더러운 인간들의 역겨운 삶, 추잡한 생각, 귀신과도 같은 언행들. 이번에도 고스란히 느꼈다.
그것도 질려버릴 정도로. 읽다가 지친다는 생각을 받을 정도로.
이 이야기의 초점은 도대체 이야기의 큰 그림이 어떤 것인가. 거기서 류젠이가 얼만큼이나 개입되어 있는가를 밝혀나가는 데에 맞춰진다.
이야기가 진창 속으로 빠져들면 들수록 류젠이-그 악마 같은 놈이 저질러 놓은 지옥도가 완성되어 가고 그 속에서 주요인물들의 절규가 울려퍼진다. 전작 불야성에서 기를 쓰고 살아 남았던 류젠이는 없다. 양웨이민을 능가하는 악귀가 되어 게임의 주최자가 된 류젠이는 그야말로 절망 그 자체니까.
사실 별점을 매기자면 별 다섯에 별 넷은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뛰어나다는 평가를 하고 있는 셈.
다만 조금의 불만은 있다. 류젠이가 이 이야기의 악역을 맡기 때문에 주요 스토리 전개는 타키자와와 추성의 역할인데, 이 둘은 일단 정을 붙이기에 대단히 어려운 캐릭터다. 차라리 빨리 소모되어 버렸으면 싶을 정도로 짜증과 애처로움을 유발하는 데다가, 이들을 중심으로 얽히는 인간관계가 핑크빛이 약간 가미되버려서 살짝 김이 새기도 한다. 행동 동력 자체가 이야기에 이질적이지는 않으나, 실망스럽다는 이야기다. 육체적 욕망, 그것도 이상성욕 같은 것에 행동이 지배되는 주인공들 따위, 정이 가질 않는다.
더군다나, 상대는 절망 속에서 증오를 불 태우며 큰 맘 먹고 2년 만에 움직이기 시작하는 류젠이...... 게임이 되질 않는다.
류젠이가 어떤 악마로 거듭나게 되는지에 재미를 느낀다면 이 책은 꽤 훌륭하다. 피냄새 진동하는 잘 짜여진 연극 한 편이 또 한 번 카부키초에서 상영되는 셈이니까. 하지만, 양웨이민과의 미칠 듯한 머리싸움 같은 것을 생각한다면 다소 실망스럽다. 왕위 찬탈은 생각보다 손 쉬우니까.
하루하루를 사는 것만 생각해야 하는 곳, 그리고 그런 삶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 살아있다는 걸 잊어야 하는 곳, 스스로 귀신의 길을 걸으며 타인을 추악하다며 경멸해야 견딜 수 있는 곳.
신주쿠 카부키초의 왕으로 군림한 류젠이. 과연 만만치 않는 동네에서 그는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대체 그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빨리 불야성 3 장한가가 읽고 싶다. 다소 시시하더라도, 결말이 꼭 읽고 싶은 불야성 삼부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