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진열장 2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읽었던 로버트 크레이스의 <워치맨>이 액션의 정점을 보여준 멋진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 <살인자의 진열장>은 스릴러의 정수를 만끽하게 해준 또 다른 명작이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책이 분권되어 책값이 쎄다는 점 정도. (두 권에 24,000원이라면 망설일 수 밖에 없는 가격이다. 그래, 2만원만 되었어도... ) 거기에 덧붙이자면 앞으로 나올 4작품 포함 5권이 모두 분권중독출판사 문학수첩이라는거. 도합 10권 되시겠다. 읽기엔 편하지만 성의없는 디자인과 욕 나오는 가격은 분명 출판사의 탓이다.

 



< 쪼개자! 푸짐한 게 좋은 것이야! 팔목의 건강을 생각합니다! 안 볼 것도 아니면서 버틸 수 있겠느냐!> 

 

 <살인자의 진열장>은 건물공사현장에서 발견된 백여년 전의 시체(유골)들로 인해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FBI요원 팬더개스트는 운전사가 딸린 롤스로이스를 타고다니며, 조직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자유로운 활동반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모와 성격 행실 모두 일반인과는 차이가 있어보이고, <워치맨> 을 읽고 나서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유약한 '예쁜 게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중성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뜻).

 

 팬더개스트는 액션의 중심에 서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외면상으로는 사건의 주변만을 맴도는 것으로 묘사된다. 원하는 정보를 얻어다가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 해보는 '안락의자 탐정형'에 가깝다. <살인자의 진열장>에서도 초중반부엔 고고학박사, 신문기자, 형사를 교묘히 부리면서 원하는 정보를 수집하는데, 정작 그들에겐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모습은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 셜록 홈즈'의 그것과 닮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팬더개스트의 경우  몇가지 차이가 있긴 했다. 숨기는 이유가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고 그들의 안전을 위한 것도 있었고 말이다. 셜록홈즈와 괴상한 설정과 분위기는 닮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인간적인 면도 보여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팬더개스트도 약간 '털린다'. 인형조종사 같은 이미지는 아니란 소리다.

 



<쉘든이 염색하고 무표정하게 연기하면 어쩌면 잘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작품의 초반부엔 과거 살인범을 밝히는 내용인 것 같아 <별의 계승자> 류의 전문분야의 지식을 빌어 추적하려나 싶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도대체 과거 살인을 밝혀서 어쩌려는 건지 궁금해지려던 찰나에 '모방 범죄'로 보이는 살인이 일어나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모방범죄'라고 하기엔 과거의 살인마의 그림자가 깊고도 커서 순식간에 '괴기물'이 되는 것 같았는데, 몇몇 인물들에 대한 의심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바람에 '반전'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진짜냐고? 읽어보면 안다. 작품 자체의 재미도 뛰어났지만 카멜레온처럼 순간순간 변화하는 작품의 색 변화도 또 다른 재미니까.

 

 <살인자의 진열장>은 정말 맘에 드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올 해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책이 아닌가 싶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시리즈 자체에 대한 기대를 계속 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팬더개스트의 독특함은 스릴러 장르의 마초적인 주인공들이나 하드보일드의 사립탐정들보다 과거 추리소설 황금기의 탐정을 연상시킨다. 또 딕슨 카의 기괴함과 음울함을 현대물로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는 생각도 든다. 과학과 오컬트의 경계에서 팬더개스트 시리즈는 우뚝 서 있다.

 

 소설의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불평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최근 타 출판사들의 책들과 비교했을 때 가격적으로도 디자인적으로도 경쟁력이 없다는 데에 있다. 번역이 끝난지 꽤 오랜 시간이 되서야 판권기한에 쫓기듯 나온 책. 이 책은 그렇게 찬 밥 신세를 받을 정도의 책이 아니다.

 

 별 다섯에 별 다섯. 나는 올 해의 베스트로 이 책을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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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진열장 1 펜더개스트 시리즈 1
더글러스 프레스턴.링컨 차일드 지음, 최필원 옮김 / 문학수첩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얼마 전 읽었던 로버트 크레이스의 <워치맨>이 액션의 정점을 보여준 멋진 작품이었다면, 이 작품 <살인자의 진열장>은 스릴러의 정수를 만끽하게 해준 또 다른 명작이었다.
 

 이 책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책이 분권되어 책값이 쎄다는 점 정도. (두 권에 24,000원이라면 망설일 수 밖에 없는 가격이다. 그래, 2만원만 되었어도... ) 거기에 덧붙이자면 앞으로 나올 4작품 포함 5권이 모두 분권중독출판사 문학수첩이라는거. 도합 10권 되시겠다. 읽기엔 편하지만 성의없는 디자인과 욕 나오는 가격은 분명 출판사의 탓이다.

 



< 쪼개자! 푸짐한 게 좋은 것이야! 팔목의 건강을 생각합니다! 안 볼 것도 아니면서 버틸 수 있겠느냐!> 

 

 <살인자의 진열장>은 건물공사현장에서 발견된 백여년 전의 시체(유골)들로 인해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미스터리를 다룬 작품이다. 주인공 FBI요원 팬더개스트는 운전사가 딸린 롤스로이스를 타고다니며, 조직과는 전혀 무관해 보이는 자유로운 활동반경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모와 성격 행실 모두 일반인과는 차이가 있어보이고, <워치맨> 을 읽고 나서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유약한 '예쁜 게이' 같은 느낌을 받았다(중성적인 느낌을 받았다는 뜻).

 

 팬더개스트는 액션의 중심에 서지도 않을 뿐더러, 심지어 외면상으로는 사건의 주변만을 맴도는 것으로 묘사된다. 원하는 정보를 얻어다가 머리 속에서 시뮬레이션 해보는 '안락의자 탐정형'에 가깝다. <살인자의 진열장>에서도 초중반부엔 고고학박사, 신문기자, 형사를 교묘히 부리면서 원하는 정보를 수집하는데, 정작 그들에겐 자세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 모습은 전형적인 안락의자 탐정' 셜록 홈즈'의 그것과 닮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팬더개스트의 경우  몇가지 차이가 있긴 했다. 숨기는 이유가 개인적인 문제도 있었고 그들의 안전을 위한 것도 있었고 말이다. 셜록홈즈와 괴상한 설정과 분위기는 닮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인간적인 면도 보여준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팬더개스트도 약간 '털린다'. 인형조종사 같은 이미지는 아니란 소리다.

 



<쉘든이 염색하고 무표정하게 연기하면 어쩌면 잘 맞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작품의 초반부엔 과거 살인범을 밝히는 내용인 것 같아 <별의 계승자> 류의 전문분야의 지식을 빌어 추적하려나 싶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고, 도대체 과거 살인을 밝혀서 어쩌려는 건지 궁금해지려던 찰나에 '모방 범죄'로 보이는 살인이 일어나 긴장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게 단순히 '모방범죄'라고 하기엔 과거의 살인마의 그림자가 깊고도 커서 순식간에 '괴기물'이 되는 것 같았는데, 몇몇 인물들에 대한 의심이 여기저기서 터지는 바람에 '반전'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이 진짜냐고? 읽어보면 안다. 작품 자체의 재미도 뛰어났지만 카멜레온처럼 순간순간 변화하는 작품의 색 변화도 또 다른 재미니까.

 

 <살인자의 진열장>은 정말 맘에 드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올 해 읽었던 책 중에서 가장 재밌었던 책이 아닌가 싶다.

 

 매력적인 등장인물은 시리즈 자체에 대한 기대를 계속 할 수 밖에 없게 만들고, 팬더개스트의 독특함은 스릴러 장르의 마초적인 주인공들이나 하드보일드의 사립탐정들보다 과거 추리소설 황금기의 탐정을 연상시킨다. 또 딕슨 카의 기괴함과 음울함을 현대물로 고스란히 재현해 냈다는 생각도 든다. 과학과 오컬트의 경계에서 팬더개스트 시리즈는 우뚝 서 있다.

 

 소설의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다시 한 번 불평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최근 타 출판사들의 책들과 비교했을 때 가격적으로도 디자인적으로도 경쟁력이 없다는 데에 있다. 번역이 끝난지 꽤 오랜 시간이 되서야 판권기한에 쫓기듯 나온 책. 이 책은 그렇게 찬 밥 신세를 받을 정도의 책이 아니다.

 

 별 다섯에 별 다섯. 나는 올 해의 베스트로 이 책을 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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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치맨 이스케이프 Escape 2
로버트 크레이스 지음, 최필원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노라조 라는 그룹이 있다. 한 명은 무게를 잡고 한 명은 개그맨 뺨치는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웃긴 노래를 부른다. 알고 보면 가창력도 뛰어나고, 외모도 그리 떨어지는 편도 아닌 이른바 실력파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조 파이크와 엘비스 콜을 어디 감히 노라조에 비유하느냐며 발끈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크레이스 형님의 유머가 뛰어나긴 하지만 코믹물은 아니라고. 엘비스 콜은 언제나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부딪히고 파이크는 건조하기가 사막과 같은 사람이라고 -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노라조라는 언밸런스 한 콤비가 보여주는 기가 막힌 (또는 귀에 쏙 들어오는) 하모니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때로는 몸에 전율을 불러 일으키는 콜과 파이크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말을 하려하는 것이다.

 

 <워치맨>이 조 파이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 들었기에 엘비스 콜이 나올거란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실제로 처음 등장에서 이미 비실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활약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고.

 

 <몽키스 레인코트>에서 조 파이크의 등장이 엘비스 콜의 등장을 질리지 않게 해주었다면, <워치맨>에서는 엘비스가 긴장뿐인 스토리를 서서히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둘은 떨어진다는 것이 불가능 한 존재들인 것이다. 

 

 

 

 크레이스의 서문에 따르면 조 파이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불타는 노을에 검붉게 물든 총잡이의 얼굴, 텅 빈 심장만큼이나 차가운 눈. 한없이 진지하기만 한 입술. 최악의 악몽을 선사하는 방울뱀의 눈빛.' - 워치맨 서문 중에서-

 

 작가가 직접 말하는 저 표현을 읽고 있자면 젊은 날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외의 그 어떤 이도 조 파이크라는 사내를 설명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구도 견디지 못할 존재감. 쿨함을 뛰어넘어 콜드하다고까지 불리는 사나이. 그 신비의 이미지가 비로소 납득갈 만한 형태로 머리 속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워치맨>은 주인공 '조 파이크'가 과거 도움을 받았던 용병 '존 스톤' 에게 빚을 갚는 의미로 부잣집 딸의 경호를 맡으면서 시작된다. 부잣집 철부지 딸내미 '라킨 코너 바클리'는 우연히 얽힌 사건 때문에 목숨의 위험을 받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파이크의 신세를 지게 되고, 파이크는 그 덕에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에게 쫓기게 된다.

 

 하지만 파이크가 누구인가. 사냥꾼은 될 지언정 사냥감은 될 수 없는 먹이사슬의 정점이 아니던가. 쫓는 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해 나가면서 차근차근 반격을 준비해 나간다. 느꼈던 의문점들을 엘비스 콜과 하나씩 바로잡으며 사건을 지배해 나가는 것은 물론이다. 

 

 '조 파이크' 란 인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보고 있기 힘든 인물이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 뿐만 아니라, 언제나 준비된 그 몸뚱아리가 움직이는 것, 짧고 거침없는 말과 행동들이 끝없는 긴장을 만들어낸다. <워치맨>에서 주인공의 그러한 미칠듯한 무게감은 읽기 전 느꼈던 기대감 이상이라서 약간 벅차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결국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는 것은 로버트 크레이스의 기가 막힌 글솜씨다. 라킨 바클리의 상스러운 행동, 엘비스 콜의 능글능글함, 존 첸의 속물근성이 기름기 없이 퍽퍽한 고깃덩어리에 마블링을 넣은 듯 감칠맛나게 만들어 주고- 로버트 크레이스의 유머 넘치는 글빨이 적당하게 썰고 굽고 뒤집어 준다.

 

 실제로 <몽키스 레인코트> 를 읽으면서 받았던 느낌보다 훨씬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재미가 있었다. (엄청난 시간이 흐른 후라고는 해도!) 아마도 '조 파이크' 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그의 필력이 준비되기 전 나왔다면 이 정도로 재미있진 않았을 것이다.

 

<워치맨>은 몸과 마음을 찌릿하게 만드는 책이고, 나도 모르게 '어허허허' 웃게 만드는 사람 환장하게 하는 책이다. 그 웃음이 너무 웃겨서이기도 하고 너무 어이없이 멋져서 그렇다는 거. 읽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있을라나. 어허허허.

 

 극도로 차가워 보이는 '조 파이크' 하지만 그는 외로운 호랑이 같은 사내라기 보단 무리지어 움직이는 늑대의 우두머리 같은 남자다. 실제로 그는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주옥과 같은 말들도 넘쳐나고, 너무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에 대한 할 말도 많고,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선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단지 Stay Groovy. 계속 쿨하게. 이 말을 기억하면서 당분간 파이크라도 된 양 한 번 살아보는 것이다.









 

 노라조 라는 그룹이 있다. 한 명은 무게를 잡고 한 명은 개그맨 뺨치는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 밑도 끝도 없이 다짜고짜 웃긴 노래를 부른다. 알고 보면 가창력도 뛰어나고, 외모도 그리 떨어지는 편도 아닌 이른바 실력파 가수라는 생각이 든다.

 

 조 파이크와 엘비스 콜을 어디 감히 노라조에 비유하느냐며 발끈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크레이스 형님의 유머가 뛰어나긴 하지만 코믹물은 아니라고. 엘비스 콜은 언제나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부딪히고 파이크는 건조하기가 사막과 같은 사람이라고 - 말이다.

 

 나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노라조라는 언밸런스 한 콤비가 보여주는 기가 막힌 (또는 귀에 쏙 들어오는) 하모니가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때로는 몸에 전율을 불러 일으키는 콜과 파이크의 그것과 닮은 구석이 있다는 말을 하려하는 것이다.

 

 <워치맨>이 조 파이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 들었기에 엘비스 콜이 나올거란 생각을 거의 하지 못했다. 실제로 처음 등장에서 이미 비실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활약을 기대하지 않고 있었고.

 

 <몽키스 레인코트>에서 조 파이크의 등장이 엘비스 콜의 등장을 질리지 않게 해주었다면, <워치맨>에서는 엘비스가 긴장뿐인 스토리를 서서히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둘은 떨어진다는 것이 불가능 한 존재들인 것이다.

 

 

 

 크레이스의 서문에 따르면 조 파이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불타는 노을에 검붉게 물든 총잡이의 얼굴, 텅 빈 심장만큼이나 차가운 눈. 한없이 진지하기만 한 입술. 최악의 악몽을 선사하는 방울뱀의 눈빛.' - 워치맨 서문 중에서-

 

 작가가 직접 말하는 저 표현을 읽고 있자면 젊은 날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이외의 그 어떤 이도 조 파이크라는 사내를 설명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누구도 견디지 못할 존재감. 쿨함을 뛰어넘어 콜드하다고까지 불리는 사나이. 그 신비의 이미지가 비로소 납득갈 만한 형태로 머리 속에 들어오는 순간이다.

 

 <워치맨>은 주인공 '조 파이크'가 과거 도움을 받았던 용병 '존 스톤' 에게 빚을 갚는 의미로 부잣집 딸의 경호를 맡으면서 시작된다. 부잣집 철부지 딸내미 '라킨 코너 바클리'는 우연히 얽힌 사건 때문에 목숨의 위험을 받게 되어 어쩔 수 없이 파이크의 신세를 지게 되고, 파이크는 그 덕에 정체불명의 사나이들에게 쫓기게 된다.

 

 하지만 파이크가 누구인가. 사냥꾼은 될 지언정 사냥감은 될 수 없는 먹이사슬의 정점이 아니던가. 쫓는 자들을 가차없이 처단해 나가면서 차근차근 반격을 준비해 나간다. 느꼈던 의문점들을 엘비스 콜과 하나씩 바로잡으며 사건을 지배해 나가는 것은 물론이다. 

 

 '조 파이크' 란 인물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보고 있기 힘든 인물이었다. 미처 알지 못했던 과거 뿐만 아니라, 언제나 준비된 그 몸뚱아리가 움직이는 것, 짧고 거침없는 말과 행동들이 끝없는 긴장을 만들어낸다. <워치맨>에서 주인공의 그러한 미칠듯한 무게감은 읽기 전 느꼈던 기대감 이상이라서 약간 벅차다는 느낌까지 받을 정도였다.

 

 결국 내가 진심으로 감탄하는 것은 로버트 크레이스의 기가 막힌 글솜씨다. 라킨 바클리의 상스러운 행동, 엘비스 콜의 능글능글함, 존 첸의 속물근성이 기름기 없이 퍽퍽한 고깃덩어리에 마블링을 넣은 듯 감칠맛나게 만들어 주고- 로버트 크레이스의 유머 넘치는 글빨이 적당하게 썰고 굽고 뒤집어 준다.

 

 실제로 <몽키스 레인코트> 를 읽으면서 받았던 느낌보다 훨씬 세련되고 군더더기 없는 재미가 있었다. (엄청난 시간이 흐른 후라고는 해도!) 아마도 '조 파이크' 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은 그의 필력이 준비되기 전 나왔다면 이 정도로 재미있진 않았을 것이다.

 

<워치맨>은 몸과 마음을 찌릿하게 만드는 책이고, 나도 모르게 '어허허허' 웃게 만드는 사람 환장하게 하는 책이다. 그 웃음이 너무 웃겨서이기도 하고 너무 어이없이 멋져서 그렇다는 거. 읽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 있을라나. 어허허허.

 

 극도로 차가워 보이는 '조 파이크' 하지만 그는 외로운 호랑이 같은 사내라기 보단 무리지어 움직이는 늑대의 우두머리 같은 남자다. 실제로 그는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주옥과 같은 말들도 넘쳐나고, 너무나 매력적인 등장인물들에 대한 할 말도 많고, 그들의 과거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하지만! 글이 너무 길어져선 안 될 것이다.

 

 우리는 단지 Stay Groovy. 계속 쿨하게. 이 말을 기억하면서 당분간 파이크라도 된 양 한 번 살아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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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겨울 찬비
 

원숭이도 도롱이를 
 

쓰고 싶은 듯.

 
 

 제목 '몽키스 레인코트' 는 바쇼의 하이쿠 중 하나를 인용한 제목으로 보인다. 로버트 크레이스가 어떤 의미로 썼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겨울비의 뼈 에이는 차가움을 원숭이를 통해 말하는 것을 '하드보일드' 하다고 느꼈을지도. (단순히 엘비스 콜을 원숭이로 본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바쇼의 하이쿠부터 영춘권, 태권도, 사무라이(이건 살짝 기억이 가물), 브루스 리나 그린 호넷의 '가토' 등에서 약간은 동양에 대한 '경의' 를 볼 수 있는데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조금 '오버스러운'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로버트 크레이스의 '몽키스 레인코트' 는 탐정 '엘비스 콜' 과 '조 파이크' 콤비가 등장하는 첫번째 시리즈이다. 이 두 콤비는 흡사 '시티헌터' 에서의 '사에바 료' 와 '팔콘' 을 보는 것 같다. 시티헌터에서 사에바 료가 확고한 주인공의 위치를 사수하는 반면 몽키스 레인코트에서는 '조 파이크' 라는 사내는 고생하는 주인공을 무색하게 하는 미친 존재감을 뿜어댄다. (참고로 팔콘 때문에 난 조 파이크가 미남자일 거란 생각을 꿈에도 하질 못했다. 워치맨 표지선정에서 혼란을 느꼈을 정도로)

 





 

<왼쪽이 사에바 료, 오른쪽이 팔콘. 이라고 해도 믿는 사람은 없겠지>




 엘비스 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 엘비스 프레슬리 콘서트에 다녀온 어머니가 이름을 엘비스로 '바꿔' 버렸으며, 얼굴은 존 카사베츠를 닮았다고 한다. '고자' 같은 필립 말로우와는 달리 여자를 넘기는 데에도 능숙하다. 베트남 전에 참전한 적이 있으며 영춘권, 태권도, 태극권 등 격투기에 능하...지만 왠지 파이크보다 약할 것 같은 느낌. 고양이를 키우기 때문일지도. 14세 소년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으로 미키 마우스 관련 상품을 모으는 별난 남자. 차는 자마이카 옐로 색상의 1966년제 시보레 콜벳 컨버터블, 애용하는 총은 스미스 앤 웨슨 38구경. (이상 책 뒷날개+ 주관적 의견)

정도 되겠다. 

 







<노블마인에 진실을 요구합니다 - 표지의 양지운씨 닮은 모델은 도대체 누구인가요?>




조 파이크의 외모에 대한 설명은 작품 안에 잠깐 나오는데



' 키는 183, 짧은 갈색 머리, 바람처럼 빠른 미식축구의 코너백 선수처럼 단단한 근육, 몸무게는 83-85kg. 양쪽 어깨 바깥쪽에는 베트남에 있을 때 새긴, 촉이 전면을 향하고 있는 화살 모양의 문신이 있다.' (몽키스 레인코트 p151)




 이런 자세한 설명에도 그 놈의 팔콘 때문에 이 다부진 몸의 사나이를 거구의 몸 좋은 '흑형'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실례가 아닐 수 없다. 언제나 선글라스를 쓰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미소'라고 하는 무뚝뚝한 남자. 농담과 진담을 구분할 수 없는 독특한 유머감각의 소유자. (농담, 진담 모두 문제가 될 소지 다분)

 
 아까도 잠깐 말했듯이 엘비스 콜이 첫 작품부터 조 파이크에게 약간 밀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건 엘비스 콜이 꽤 심한 꼴을 당하는 반면 파이크 형은 신출귀몰 맘대로 부수고 죽이고 다니는 모습만 임팩트 있게 보여주는 것이 크다. (재주는 콜이 부리고...재미는 파이크가 다 본다.) 둘이 하는 만담도 콜이 분위기를 띄워 놓으면 파이크가 툭툭 내 뱉어서 사람 맘을 빼앗아 버리니 원...






<약간의 왜곡과 사실과 다른 모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왼쪽이 파이크 오른쪽이 콜>










  약간은 부족해 보이는 첫 작품인 '몽키스 레인코트' 가 생명력을 얻는 것은 '조 파이크'의 등장부터였다. 엘비스 콜의 시니컬한 농담과 음담패설 등이 즐겁게 느껴지는 것도 그 즈음. 작품의 무거움을 엘비스 콜이 감당하기엔 약간 무리가 있어보였다면 조 파이크의 말과 행동은 그 무거움마저도 짓눌러버리는 압도적인 존재감이 있다. (엘비스 콜의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건 LA레퀴엠 부터라고 하더라..)





  보통 요리도 잘하지만 인간을 '요리'하는 것에도 능숙한 최강의 파트너. 어떻게 해도 튈 수 밖에 없는 주연급 조연. 작가조차도 결국 참지 못하고 '조 파이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스핀오프를 시작했다.

 드디어 워치맨이 출간되었다. 동일 직종의 모든 고생하는 액션 스릴러 스타들이 팬들의 머리속에서 다 지워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렇게까진 되지 않더라도, 어쨌든, 이제 서열을 다시 매길 때가 온 것이다.




 





덧붙임1. 루 포이트라스는 파이크를 싫어한다. 그러나 파이크는 그를 좋아하는 듯 보인다. 포이트라스에게는 2의 제곱만큼 불행한 일이겠지.





덧붙임2. 최후의 탐정 (앨비스 콜 9번째 작품), 데몰리션 엔젤 (스핀오프)가 워치맨과 스토리 연관이 있다고 한다. 데몰리션 엔젤의 주인공 '캐롤 스타키'가 최후의 탐정에 나오고, 최후의 탐정에서 용병단과 인연을 맺은 파이크가 '워치맨' 에서 활약하는 식이다. (러니님의 작업일지에서)

 순서는 꼬였지만, 어쨌든 언젠가 볼 수 있는 작품들이니까. 기다릴 수밖에.
 데몰리션 엔젤은 아마도 비채에서, 최후의 탐정은 노블마인에서 내년에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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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

 그 명성에 비해 <용의자 X의 헌신>, <백야행>은 뭔가 부족해 보였고, 다른 컨텐츠로 재생산 된 결과물이 훨씬 더 완성도가 뛰어나 보였다.

 속도감은 있지만 깊이가 없어 보였고 기세 좋게 글을 쓰지만 기교가 부족해 보였다.

 고만고만한 속도의 공을 던지는 정통파 우완투수처럼.

<악의>를 읽은 것은 단순히 나혁진 님의 '히가시노 게이고 베스트10'에서 백야행, 용의자 X의 헌신보다 위에, 당당하게 1위를 차지한 그 모습에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다.

 흥미를 느낀 후에도 바로 읽지 않은 것은 히가시노 게이고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작가들의 책이 말 그대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악의>를 읽은 후 소름이 돋고 기력이 다 빠질 것만 같은 나와 마주하게 되었다.

  책의 초반부를 읽고 있던 중, 너무 빠른 전개에 '이거 단편집이었나? 단편치고도 심하게 시시한데?'  같은 얼토당토 않은 걱정이 들었다. '빙산의 일각' 그 말을 가져다 쓰면 너무 상투적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같잖아 보이던 사건 아래에 '도사리고' 있는 커다란 '악의' 야 말로 내가 이전에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거대한 얼음 덩어리였다.

 이 책은 자체로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호들갑 떨었던 몇몇 책을 그야말로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반전폭풍이 재기발랄하다고 추켜세웠던 '잘린머리와 같은 불길한 것', 속도감이 일품이라고 했던 '고백' 심지어 내 안에 크게 드리운 아가사 크리스티나 딕슨 카와 같은 거장의 그림자 마저도 잔인하게 짓밟아 버렸다.  작가가 설치한 장치에 쉽게 휘둘린 내 마음은 이미 후반부엔 무력화 되었고, 가가의 독백을 쫓아 찝찝하고 섬뜩한 결말부를 아무런 저항없이 받아들여야 했다.

 내게 있어 히가시노 게이고는 백수의 왕, 사자와 같은 이미지다. 표범보다 치타보다 하이에나보다 사냥을 못해 보일 때도 있지만, 강함의 정도로 서열을 매기자면 단연 왕의 자리가 걸맞는 작가다. 오늘은 말로만 듣던 '왕의 품격'을 만난 날이다.

  'Why?'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풀어나가는 책 중에서 이보다 뛰어난 책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별 다섯에 별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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