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정영목 옮김 / 검은숲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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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흥분

 시공사의 엘러리 퀸 전집. 

 과거에 동 출판사의 '시그마 북스' 라는 타이틀을 통해 엘러리 퀸의 작품들이 꽤 많이 소개되었었지만, 절판되어 구하기 꽤 힘든 상황이었다. 셜록 홈즈와 뤼팽, 그리고 애거서 크리스티 여사의 책들은 전집으로도 만날수가 있지만 엘러리 퀸은 조악한 동서의 중역본을 읽거나 헌책방, 도서관을 뒤져야만 볼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시공사에서 과감하게 엘러리 퀸의 <국명 시리즈> 9권을 출간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짜릿함과 걱정이 뒤섞인 묘한 감정 때문에 책을 구입하기까지 이르렀다.

 

1. 장점

 이 책의 장점은 무엇일까.

 일단은 정말 공들인 책의 만듦새를 꼽을 수 있겠다. 열린 책들의 '메그레 경감 전집'(19권에서 삐끗한 것 같다만)에서 약간 자극을 받았는지, 굉장히 많은 신경을 쓴 것을 느낄 수 있다. 우선 통일성 있는 디자인 중에서도 각각의 작품의 개성을 잘 나타내 주는 로고와 그 로고를 응용한 금빛 책갈피 등이 소장욕을 불러 일으킨다. 여기에 오래된 책 분위기를 일부러 내주는 속지 디자인은 굉장히 멋드러진다. 외국에서 이미 썼던 방식일까? 만약 시공사 편집부의 100%기획이라면 이 사람들...... 머리가 정말 좋은 것이 아닐지.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 란 작품에 대해 장점을 찾아보자면, 사건이 일어나는 병원이라는 무대에서 펼쳐지는 일련의 흐름이 연극 한편을 보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는 것이다. 장황하지 않고 사건에 집중되면서도 후세의 여타 다른 클로즈드 서클을 다룬 작품들처럼 억지스럽거나 부자연스럽지 않다. 엘러리 퀸이라는 '개성이 없다는 것이 개성인 탐정'이 풀어나가는 과정은 독자로 하여금 캐릭터보다는 작품 자체의 논리에 집중하게 한다. 그 유명한 '독자와의 대결'이 나름의 공정함을 느끼게 해주는 것 또한 엘러리 퀸이 초인적인 탐정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엘러리 퀸은 사건에 집중하여 오로지 사건의 해결에 매달리고, 그 해결을 목적으로 하는 굉장히 성실한 탐정이다. 때문에 엘러리 퀸이 탐정으로 등장하는 시리즈에서는 '범인은 누구인가, 어떻게 한 것인가' 가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미스터리를 읽는 이유가 논리적이고 지적인 유희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충실한 작품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2. 단점

 그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가진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은 좀처럼 재미를 느끼기 힘들 것이다. 복잡한 사건의 퍼즐,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 Q.E.D를 외치고 범인을 잡고 끝나는 구조가 차라리 낯설 수가 있는 것이다.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는 납득이 가지 않는 작품도, 재미가 없는 작품도 아니지만, 딱히 '좋다'는 느낌을 가질 수는 없다. 동 작가가 쓴 '드루리 레인'이 등장하는 '비극'시리즈가 꽤 긴 여운을 남기면서 기억에 남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 모든 게 취향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은 극명하다. 개인적으로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본 미스터리 작가들이 '아리스가와 아리스'나 '노리즈키 린타로' 같은 사람들인데, 이들은 엘러리 퀸을 추종하고 있음을 공공연하게 밝혔으며 또 그들의 책들 또한 논리와 사건해결에 중점을 두고 있다.. '네덜란드 구두 미스터리'는 부족한 것 없이 완성된 퍼즐이지만 그 완성된 그림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내 취향은 독서 후 책을 뒤적이면서 부족한 퍼즐 조각, 잘못 끼워넣은 조각을 찾는 작품보다는 이야기의 전체적인 그림이나, 빠진 곳을 바라보면서 한없이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책들이기 때문이다.

 소장욕 때문에 힘들긴 하지만, 취향에 맞지 않는 것은 어쩔수가 없다. 일단 국명 시리즈는 몇권 더 읽어봐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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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2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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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의 책인지, 또 무슨 내용인지, 어떤 점이 장점인지는 워낙 많이 읽힌 책이라서 쓰기도 귀찮다. 또 이 책을 읽어 나가는 과정은 정말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내용에 관한 언급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 소위 페이지터너라는 책들보다도 더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기게 만들면서도 가벼움보다는 묵직함이 남아 있고, 새로운 내용이 아님에도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놀라운 작품이란 것 정도만 먼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 가카는 여성을 증오하지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도 아니니 언젠가는 꼭!>

 

 각 나라마다 꼭 존재하는 정부와 재벌의 결합, 그리고 그 딸랑이 언론들의 활약상. 2011년부터 2012년까지 ' 나는 꼼수다.' 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럼에도 뻔뻔하게 주머니를 착실히 불려가는 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르고 당하면 억울하지나 않을텐데 뻔히 알면서도 막을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답답한 일이다. 아무리 누군가 쫄지마! 우리가 언젠가는 본때를 보여줄테니! 해도... 친일파나 전두환도 제대로 처리 못한 대한민국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어떤 묘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어쨌든 진지한 정치인이나 머리아픈 복잡한 글들이 아니다. 비속어와 욕설이 난무하는 정체모를 해적방송과 <밀레니엄> 같은 허구의 소설이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통쾌함을 꿈꾸게 함으로서 우리에게도 미래를 거머쥘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어둡고 짜증나는 시대에는 그런게 바로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밀레니엄> 1부는 적어도 이것저것 따져보면 깔 곳이 많은 작품이다. 스릴러 소설로 살펴보자면 책 중에도 잠깐 등장하는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 보다 뛰어나단 생각이 딱히 들지도 않을 뿐더러, 남자 주인공의 설정 또한 거의 무협지에 가까운 설정인데다 그 덕에 이야기를 해결해 나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실력도 있으나 기구한 운명의 장난에 고난을 겪는 남자 주인공이 극강의 무공을 가졌거나 좋은 가문의 여자(들)의 몸과 마음을 취함으로서 천하에 대적할 수 없는 극강의 힘을 손에 넣는다. 딱 이거 아니고 뭐겠는가. 

 

 그렇지만 이 책의 중심이자 역대 장르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으로 꼽을 수 있는 '리스베르 살란데르 '의 존재는 쉽게 무시할 수가 없다. 그 거침없는 권력이 부패에 찌든 권력을 찢어 발기는 모습이 주는 쾌감은 지금 이시대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달콤했다. 정신없이 맛있게 먹고나서 입맛을 쩝쩝 다셔놓고, 나중에 '이런저런 점이 아쉬웠다.' 고 말하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짓인 것 같다. 간만에 느낀 완벽한 재미였으니까. 것참 이것도 가카의 은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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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1 밀레니엄 (뿔)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뿔(웅진)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얼마나 대단한 기록의 책인지, 또 무슨 내용인지, 어떤 점이 장점인지는 워낙 많이 읽힌 책이라서 쓰기도 귀찮다. 또 이 책을 읽어 나가는 과정은 정말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내용에 관한 언급은 최소한으로 하고 싶다. 소위 페이지터너라는 책들보다도 더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기게 만들면서도 가벼움보다는 묵직함이 남아 있고, 새로운 내용이 아님에도 신선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놀라운 작품이란 것 정도만 먼저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우리 가카는 여성을 증오하지도, 건드릴 수 없는 존재도 아니니 언젠가는 꼭!>

 

 각 나라마다 꼭 존재하는 정부와 재벌의 결합, 그리고 그 딸랑이 언론들의 활약상. 2011년부터 2012년까지 ' 나는 꼼수다.' 의 활약도 대단했지만 사실 그보다 더 대단한 것은 그럼에도 뻔뻔하게 주머니를 착실히 불려가는 그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르고 당하면 억울하지나 않을텐데 뻔히 알면서도 막을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은 정말로 답답한 일이다. 아무리 누군가 쫄지마! 우리가 언젠가는 본때를 보여줄테니! 해도... 친일파나 전두환도 제대로 처리 못한 대한민국이 과연 변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으니까.

 

 그러나 참 이상하게도 어떤 묘한 기대와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은 어쨌든 진지한 정치인이나 머리아픈 복잡한 글들이 아니다. 비속어와 욕설이 난무하는 정체모를 해적방송과 <밀레니엄> 같은 허구의 소설이다. 우리가 겪어보지 못한 통쾌함을 꿈꾸게 함으로서 우리에게도 미래를 거머쥘 수 있을 것만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이 어둡고 짜증나는 시대에는 그런게 바로 한줄기 빛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밀레니엄> 1부는 적어도 이것저것 따져보면 깔 곳이 많은 작품이다. 스릴러 소설로 살펴보자면 책 중에도 잠깐 등장하는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 보다 뛰어나단 생각이 딱히 들지도 않을 뿐더러, 남자 주인공의 설정 또한 거의 무협지에 가까운 설정인데다 그 덕에 이야기를 해결해 나간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실력도 있으나 기구한 운명의 장난에 고난을 겪는 남자 주인공이 극강의 무공을 가졌거나 좋은 가문의 여자(들)의 몸과 마음을 취함으로서 천하에 대적할 수 없는 극강의 힘을 손에 넣는다. 딱 이거 아니고 뭐겠는가. 

 

 그렇지만 이 책의 중심이자 역대 장르소설에서 가장 매력적인 여주인공으로 꼽을 수 있는 '리스베르 살란데르 '의 존재는 쉽게 무시할 수가 없다. 그 거침없는 권력이 부패에 찌든 권력을 찢어 발기는 모습이 주는 쾌감은 지금 이시대 이 땅에 사는 사람으로서 너무나도 달콤했다. 정신없이 맛있게 먹고나서 입맛을 쩝쩝 다셔놓고, 나중에 '이런저런 점이 아쉬웠다.' 고 말하는 것은 조금 부끄러운 짓인 것 같다. 간만에 느낀 완벽한 재미였으니까. 것참 이것도 가카의 은혜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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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드업 걸
파올로 바치갈루피 지음, 이원경 옮김 / 다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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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2010년 휴고상, 2009년 네뷸러상 양대 SF상을 석권하고 그 외에도 권위있는 상들을 먹어치운 파올로 바치갈루피의 <와인드업 걸>.

 사실, 이 책을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의외로 당황스러웠다고나 할까. 보통 한국에서 SF란 뉴스에서 수상소식을 접한 기억이 지워진 후에야 뒤늦게 색이 바랜 과거의 명성을 두르고 나타나니까 말이다.

 

 이 신선하고 팔딱팔딱 뛰는 SF를 만나게 된 행운을 찬양하며 감상을 써볼까 한다.

 

1. 책 이야기

 

 

 섣부른 추측이지만, '다른'이라는 출판사에서 <와인드업 걸>을 발간해 낸 것은 책 기획자의 약간의 '사기'가 들어간 게 아닌가 싶다. 그 동안 나왔던 책들과는 다른 장르인 SF지만 또 한편으로는 '생태.환경,평화,인권,나눔에 대해 청소년과 함께 고민한다.' 는 출판사의 모토와 기가 막히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대표님  휴고상 네뷸러상 다 싹쓸이한 책이 있는데 말이죠.이러이러한 책이 있는데 환경, 인권 이런 주제야. 딱이지 않음? 대박남. ㅋㅋㅋ' 했을지도.

 

 생태, 환경, 평화, 인권, 나눔에 대해 고민할 책은 맞다. 하지만 책의 성적수위가 꽤 높아서... 청소년과 함께 고민하긴 좀 그렇다는 게 내 생각이다. 더불어... 24,000원이라는 SF특유의 배짱튕기기 가격 또한 청소년 주머니털기를 넘어서 찢어놓는다는 심보.

 

( 갑자기 딴 곳으로 새는 것 같아 참 눈치보이는데, 왜 SF는 스릴러나 미스터리보다 책값이 비쌀까?

 해외판권이 비싸서 그런 것은 아닐 것 같은데 말이다.

 스릴러 팬들은 비싸면 안산다. SF팬들은 비싸도 산다. 뭐 이런 마인드일까...어쨌든 책의 질이 특별히 좋은 것도 아니고 좀 언짢은 부분이다.)

 

 

 

2. 왜 태국인가?

 

 

 와인드업 걸에 대한 혹평을 살펴보면, 이 책의 작가인 서양인의 시선에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담겨있다. 태국이란 나라의 불안정함을 미래로까지 고스란히 가져다가 이미지를 망가뜨리는 저질렀다는 투의 의견들이 있다. 사실 나로서는 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냥 사람 이름이 외기 힘들다 정도의 느낌만 받았을 뿐, 딱히 다른 불만은 없었다.

 

 적어도 필립 K 딕의 <높은 성의 사나이>나 작가도 기억안나는 <평양의 이방인> 같은 병신같은 맛뵈기 문화체험 같은 느낌은 못받았다는 소리다. 책 읽은 내공이 높지 않아 반론이나 반박같은 것을 내가 대신할 수는 없겠지만,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생소한 무대에서 자기 입맛에 맞게 뒤튼 이야기로 받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구글링을 통해 알아본 태국은 1. 농업대국 2. 입헌군주제하의 내각책임제 3.쿠데타 등의 정치적 불안정 4.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통치를 받지 않으면서도 외국과의 교류가 활발한 나라다. 

 

 현재 정치의 불안정을 고스란히 미래로 가져다 놓은 것이 어째서 잘못된 것일까. 우리나라만 해도 몇백년전 조선의 썩어빠진 정치인들이 하는 짓거리에 식민지시대의 친일파들이 하던 짓을 반복하고 있는데말이다. 서양인의 시선으로 태국의 정치상황을 섣불리 판단했다는 것에 대한 비난? 괜히 기분나쁜 나머지 꼬투리를 잡는 것은 아닐까? 사실 기분이 나쁘려면 왜 다른 동남아는 망해 돌아가는데 X도 없는 태국이 아시아의 마지막 보루가 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GMO 기업으로 인해 무너져버린 세계의 식량시장, 유전자 조작으로 인해 발생한 신종 전염병에 대해 버틸 수 있는 나라.

 불안정한 정치상황 속에서 외세와의 교류가 활발한 나라라는 설정으로 태국만한 곳이 있었을까? SF 답게 아예 세계를 한번 리셋해서 새로운 나라를 하나 뚝딱 만들었어야 하는 걸까? 미래에도 태국은 그럴것이다. 라는 게 이 책의 핵심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작가가 그려낸 미래의 태국을 이미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나는 그 배경을 만들어 내는 것에 사용된 계산식이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3.  디스토피아 속에서의 필사적인 인물들

 

 이 책은 챕터마다 바뀌는 시선으로 서로 다른 현실을 공유한다. 거대 GMO기업의 끄나풀인 앤더슨, 그 아래에서 재기를 꿈꾸는 몰락한 중국인 탄혹생, 성적노리개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버려진 와인드업 걸 에미코, 태국을 양분하는 거대세력 화이트셔츠의 수장 짜이디와 그의 부관 깐야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다름아닌 욕망이며, 그 욕망을 걸고 넘어지는 것은 바로 타인의 욕망이다. 서로의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질수록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자들의 인생이 가까워지고, 충돌을 피할 수 없어질 때 이야기는 폭발한다.

 

 모두의 욕망이 충족될수는 없을 것이다. 돈도 행복도 삶도 언제나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허물어져 가는 이야기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필사적으로 자신의 삶을 거머쥐기 위해 행동하고 그것이 묘한 스릴을 낳는다.

 

 

4. 2012 우리가 사는 세상

 

 와인드업 걸 에미코는 세상을 올바른 눈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하루하루 삶을 걱정하는 것도 버겁기 때문이다.

 앤더슨은 세상을 오직 회사의 이윤추구 대상으로 바라볼 뿐 어떠한 애정도 없다.

 오직 자신의 재기에만 힘쓰는 탄혹생은 자신의 선한 본성을 거세하려 애쓰며 이를 악물고 살아간다.

 서민을 착취하는 자들의 수장인 짜이디와 깐야는 권력을 지닌 듯 하지만 그보다 위에 있는 자들의 정치놀음에 휘둘릴 뿐이다.

 

 복잡하고 긴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그 이면에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져버린 세계가 있다.

 남은 화석연료를 손에 넣기 위해 전쟁이 끊이질 않는 세상.

 이미 예전의 종들이 역병과 기생충들에 의해 멸종되어 버린 세상.

 그 와중에도 자신들의 종자를 억지로 팔아먹으려는 거대 기업들의 침략.

 

 세계는 이미 엉망인데 그들은 더이상 세상을 크게 볼 수 없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태국의 한 도시. 거기에서 벌어지는 답답하고 끔찍한 삶 속에서 그냥 죽기 전까지 살 뿐이다.

 

 이 책이 두려운 이유는 그다지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이며, 점점 살아가는 것이 힘들어지기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머리에서 내몰아야 하는 현실을 새삼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듯한 스펙타클함과 묘하게 몰입되는 인물들, 짜임새있는 스토리에 감탄했다.

 다소 당황스러운... 에미코에 대한 성적 폭력 묘사부분만 뺀다면 정말 멋진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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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은 속삭인다
타티아나 드 로즈네 지음, 권윤진 옮김 / 비채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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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 된 딸을 잃은 과거가 있는 마흔살의 여인 파스칼린.

 헤어진 전 남편에 대한 사랑과 남편이 새로 꾸릴 가정에 대한 질투를 참고 견디며 살아가던 그녀는 어느 날 그 단단한 껍질이 무색하게도 쉽게 마음을 침식당합니다.

 

 연쇄살인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 중 한곳이 그녀가 새로 이사한 곳이었고, 그 과거를 알게 된 순간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그 사건에 빠져듭니다. 죽은 여인들과 그녀의 어머니들에 대해 온통 마음이 빼앗긴 그녀는 서서히 그 모든 죽음들을 자신의 피부 안쪽으로 스며들도록 허락합니다.  

 

 

 짧은 책입니다. 그런데 185쪽짜리 책을 읽으면서 참 많이 힘들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주인공 파스칼린의 여린 감수성이 그녀 스스로를 해체하는 날카로운 칼이 되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 보는 일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일이거든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주인공을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언제나 무겁습니다. 마음의 중심을 잃은 위태로운 여자를 보는 것은 더더욱 그렇고요.

 

 TV를 켜놓고 이 책을 읽었었는데, 우연히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해주더군요. 양쪽을 번갈아가며 보고 또 읽었는데 완전히 다른 것 같던 두 여인이 겹쳐지는 순간, 소름끼치도록 감정이 이입되는 걸 경험했습니다. 스스로의 지겨움마저 견디고 품고 살았던 그녀들을 폭발시키는 부분을 동시에 맞이했거든요.

 

 

 

  사람이 살해당한 집에서 보통 사람이 느낄 찝찝함을 증폭시켜 자신의 고통을 해방시켜 버리는 열쇠로 삼는 파스칼린의 모습과 외딴 섬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단계에서 폭주하는 야수로 변신하는 김복남의 모습은 꽤 닮았습니다.

 

 덕분에 다음 읽을 책은 조금 밝고, 지금의 감정을 털어낼 책을 골라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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