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사 - 조선의 독립운동가, 그녀를 기억하다
권비영 지음 / 특별한서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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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란사, 캄캄한 대한제국의 등불을 밝히다!

 

소설 <덕혜옹주>의 권비영 작가님이 새로운 여성 독립운동가 <하란사>로 다시 찾아왔다. 이번 작품 <하란사>는 역사적 사실을 더욱 충실하게 반영하여 논픽션에 가까운 소설로 보인다.

 

물론 몇몇 인물 설정은 소설적 요소를 가미한 거로 판단되나, 기본적인 큰 사건을 이끌어가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어 아주 뜻깊은 시간이었다.

 

귄비영 작가님은 믿고 보는 작가답게 이번 <하란사> 역시 영화로 이어져 많은 분이 조선의 독립운동에 관해 아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하란사>라는 이름은 원래 김란사인데, 이화학당의 선교사에게 낸시라는 이름의 한자 음역에 남편인 하상기의 성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김란사 선생의 유족들이 수년에 걸쳐 적극적으로 공론화하여 본명인 김란사로 바로잡았다고 한ㄷ. 그녀는 실존하는 인물이고, 역사적으로도 소설에서 소개하는 바와 실재 삶의 궤적이 거의 일치한다.

 

역사 소설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인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작가님은 사실에 비중을 두려고 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건을 이끌어가는 인물인 하란사, 의친왕, 하상기에 관한 고증도 충실하게 다가와 독자에게 소설의 재미뿐 아니라 역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 주었다.

 

주인공인 하란사는 사육신 하위지의 후손이자 인천의 지방관리인 하상기와 결혼하여 이화학당, 정동교회에서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운다.

 

이화학당은 개교 후 사람들의 관심과 인기로 기혼자는 받지 않기로 규율을 개정한다. 하란사는 밤중에 교장선생님 앞에 등불을 들고 나타나 그 앞에서 불을 끄면서 우리가 캄캄하기가 이 꺼진 등불 같으니 우리에게 학문의 밝은 빛을 줄 수 없느냐고 물어봐 그녀를 기특하게 여긴 선생 덕에 입학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이화학당을 거쳐 일본 게이오 대학 유학을 다녀오고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에서 국내 최초로 여자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 후 독립 운동에 헌신한다.

 

이화학당의 사감, 교장 서리로 활동하고 당시 여성을 신여성으로 계몽하기 위해 노력한다. 당시 여성에게 여성의 가치, 여성 운동의 중요성, 서양의 교육을 전달해 많은 주목을 받았고, 헐버트처럼 고종의 영어 통역관 역할을 했으며, 의친왕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한 동문으로 그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한국, 미국에서 독립 자금을 상해 임시정부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파리만국 평화회의에 참석하는 도중 중국에서 독살당한다.

 

대한 제국 시기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은 부분은 고종 황제 일가의 친일과 독립 운동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황제 일가 중 의친왕은 독립 운동에 뜻을 두었고, 그의 둘째 아들 이우는 히로시마에서 원폭을 맞았고 현재 야스쿠니에 합사된 걸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의친왕은 조선 독립을 위해 안창호의 요청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일반 국민의 한 사람으로 가입할 생각으로 상해행을 결심한다.

 

 

소설은 그의 상해 행과 미국 대통령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으로 독립을 희망하는 나라들이 생겨났고, 윌슨이 참가할 예정인 파리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려는 하란사의 여정을 쫓아간다.

 

 

특히 하란사의 주변 인물로 화영은 기생 출신으로 돈많은 영감의 후처인 화영이 등장한다. 독립운동에서 기생들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열심히 투쟁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른 하란사의 지인으로 등장하는 박에스더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 의사임에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여성이다. 실상은 우리나라 최초로 서양 의사 면허를 취득한 분은 서재필 박사라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의료행위를 대한 제국에서 하지 않았고, 본인 역시 의사 신분을 강조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일전에 제중원에서 의학을 수료한 분들이 가장 먼저 서양 의사 면허를 취득한 분으로 알았는데, 박에스더가 미국 볼티모어대학교에서 가장 먼저 의사 면허를 취득하고 고국에서 의료행위를 펼쳤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일찍 세상을 떠나 안타까움을 전한다. 몇 년 차이가 나지 않아 누가 먼저인 것이 중요한 문제는 아닌 것처럼 보이나, 하란사와 더불어 박에스더의 활동에 눈에 들어왔다.

 

 

배정자에 관해서는 일전에 역사블로거 히스토리님의 글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여자 이완용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그녀는 과거 부친이 흥선대원군을 지지하여 민씨 일가에 의해 가문의 멸족을 겪는다. 그녀는 노비와 승려를 거쳐 동래부사의 눈에 띄어 일본으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김옥균의 소개로 이토 히로부미의 애첩이자 양녀로 입적한다.

 

이토에게 스파이가 되기 위한 완벽한 수업을 받은 후, 그녀는 한국 만주에서 활약한다. 안중근에 의해 이토가 사망하고, 이후 한국에서 고종의 통역을 맡아 하게 된다. 경술국치를 끌어내도록 고종을 압박하고 한국, 만주에서 독립운동가를 고발하는 역할을 했다. 그녀의 가장 악행은 1930~40년대 위안부를 모으는 총책이 되어 난사군도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하란사를 중심으로 조선말, 대한제국의 독립운동을 되새기는 시간으로 소설 <하란사>를 추천합니다.

 

 

-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하란사 #김란사 #권비영 #특별한서재 #독립운동가 #장편소설 #덕혜옹주 #책과콩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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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제주 - 언택트 관광지부터 SNS 속 힙플레이스까지! 요즘 제주의 모든 것, Season2 ’22~’23 프렌즈 국내 시리즈
허준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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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최신 여행 정보만을 담은 최신 개정판!

 

여행의 준비물과 기념품으로 여행가이드북을 좋아해 한 권 두 권 모으다 보니 이제는 나름대로 여행지별 여행가이드북의 선택 기준이 있다.

 

가장 표준이 되는 요즘 대세인 중앙북스의 <프렌즈>, 도시별 이동이 잦거나 휴대성이 편리한 시공사 <저스트고>, 많은 정보가 필요한 낯선 여행지는 RHK<100배 즐기기>, 익숙한 여행지는 분권이 되는 길벗의 <무작정 따라하기> 정도를 우선 둘러보는 편이다.

 

그중에서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해외여행 가이드북이라 할 수 있는 중앙북스의 <프렌즈> 시리즈가 한국 여행지를 소개한다.

 

첫 번째 한국 여행지는 누구나 좋아하는 제주다.

 

<프렌즈>의 특징은 일단 깔끔한 사용자 환경이다. 142mm의 가로 폭은 한 페이지에 2단 배치할 경우, 눈에 편안하게 들어온다. 가이드북의 가장 중요한 점은 여행지의 위치가 잘 드러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일이 북마크를 붙이거나 접어서 표시해야 하고, 가이드북의 위치를 보고 다시 휴대폰의 지도 앱을 켜서 위치를 확인해야 한다.


 


이번 <프렌즈 제주 22~23>은 제주 지역을 크게 6부분을 나눠서 여행지가 어느 곳에 위치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일단 제주를 크게 아래위 두 부분으로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중심으로 동부, 서부로 나눈다.

 

북부는 제주시 중심, 제주시 동부 (조천읍, 구좌읍), 제주시 서부 (애월읍, 한림읍, 한경면)으로 분할하고,

남부는 서귀포시 중심, 서귀포 동부 (남원읍, 표선면, 성산읍), 서귀포 서부 (대정읍, 안덕면)으로 나눈다.

 

 

<프렌즈 제주 22~23>의 다른 특징은 가이드북을 크게 테마별 여행지역별 여행으로 나눈다는 점이다.

 

여행을 가고자 할 때 자신이 추구하는 테마에 따라 관련 여행지를 모아두어 가령 예를 들면, 바다를 좋아하는 분은 해수욕장을 테마로 하는 부분을 숲을 좋아하는 분을 숲을 테마로 검색할 수 있다.

 

뒷부분은 지역별 여행지를 묶고 있어 지역별로 동선을 계획할 때, 참고하기 좋다.


 


 

제주도에 관한 역사적인 장소, 신화적인 장소,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담긴 이야기를 잘 풀어놓고 있다.

 

제주도는 가로 70km, 세로 30km의 계란형 모양이다. 대략 면적은 1,849km²이라 서울 면적의 3배 정도이다. 그래서 해안도로 일주를 해도 아주 장관인 곳이 많다. 차량의 이동 방향을 생각하면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 해안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물론 시계방향으로 돌아 함덕, 김녕, 월정이해수욕장의 아름답고 투명한 바다색을 먼저 보고 제주도를 둘러봐도 좋을 것이다.

 

제주도는 약 180만 년 전부터 발생한 화산 활동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섬이다. 그래서 섬 전체가 화산지형이고 성산일출봉, 오름들, 만장굴과 같이 화산지형의 특징을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제주 설화인 설문대할망 이야기도 흥미롭다.

 

제주에는 옥황상제의 셋째 딸인 설문대할망에 관한 설화가 전해진다. 몸이 엄청나게 큰 여신인 설문대할망은 커다란 치마에 흙을 담아 옮겨 제주도를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가장 높게 쌓은 곳이 한라산이고 흙을 옮기다가 곳곳에 흘린 곳이 작은 오름이 되었다고 믿었다. 높은 한라산의 봉우리를 깎아 바닷가로 던졌는데 그게 산방산이 되었다고 한다. 한라산 정상의 둘레와 산방산의 아래 둘레가 거의 같은 크기라고 하니 재미있는 상상이다.

설문대할망이 한라산에 앉아 빨래판으로 쓰던 것이 우도요, 빨래 바구니는 성산일출봉이었다고 한다.

 

 

제주도는 예전부터 돌, 바람, 여자가 많다고 해서 삼다도로 불렀다. 화산섬이라 돌과 바람이 많고, 여자가 많은 데는 아픈 역사가 있다.

 

일본 강점기 제주도에는 일제의 비행장과 포격 부대가 있어 일제는 제주도를 최후 방어선으로 생각했다. 일제의 고통이 극심했고, 해방 후 남한 단독 선거 반대를 목표로 시작된 제주 4·3사건은 4개월간 해안선에서 5km 이외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사살하겠다고 포고령과 함께 8년 동안 최대 8만여 명이 사망 또는 실종하기에 이른다. 이 사건은 남조선로동당과 서북청년단의 개입, 완벽하게 진압하지 못하면 미국의 원조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정부의 생각, 같은 민족이고 도민인데 설마 하는 피난민의 생각으로 엄청난 결과를 가져온다. 이로써 제주도의 인구, 성비, 문화는 대규모 파괴를 가져온다.

 

제주도에는 대몽 항쟁 역사 유적지와 광해군과 김정희를 비롯한 수백여 명의 선비가 귀양을 지낸 곳이기도 하다.

그동안 제주도를 여행하며 이런 배경 이야기를 알고 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전 세계 항공 노선 출발 도착이 가장 빈번한 노선이 서울-제주 왕복 노선일 만큼 제주도에는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 장소다. 맛있는 식당과 훌륭한 숙소도 즐비하다.

 

<프렌즈 제주 22~23>은 저자인 허준성 작가님이 직접 가보고 올린 식당 정보가 가득하다.

 

지금쯤이면 제주도에 있어야 하는데, 코로나 사태와 개인적인 사정으로 제주도 여행을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언제나 가도 좋은 느낌이 드는 제주도!

 

다음 여행 때 좀 더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정보가 필요하다면 <프렌즈 제주 22~23>이 도움이 될 것이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프렌즈제주 #제주도여행 #허준성 #중앙북스 #제주 #제주여행 #리뷰어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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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제주 - 언택트 관광지부터 SNS 속 힙플레이스까지! 요즘 제주의 모든 것, Season2 ’22~’23 프렌즈 국내 시리즈
허준성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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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렌즈 시리즈의 첫 한국 여행지인 제주의 최신 여행 정보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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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부합시다 - 늘 깨어 있는 참언론을 꿈꾸다
정현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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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깨어있는 참 언론을 꿈꾸다 : 매일경제 창업주 정진기 선생 서거 40주기 기념 개정판을 내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의 창업주에 대해선 잘 알려졌지만, 정작 가장 높은 구독률을 가지고 있는 경제지인 매일경제신문의 창업주에 대해선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운이 좋게도 직장 생활을 시작할 때, 회사 생활을 알려준 상사는 매일경제를 매일 읽고 용어를 정리하라고 주문했다.

 

지금 생각하면 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경제 관점에서 사회를 바라보는 눈을 가지도록 이끌어주었다. 덕분에 매일경제신문의 낯설기만 했던 용어도 자꾸 보니 익숙해져 어느 순간 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 공부합시다>는 매일경제신문의 창업주인 정진기 선생은 무남독녀인 정현희 님이 아버지를 기리며 남긴 기록이다. 벌써 40주년이 되었다고 하니 선생의 너무나 빠른 부고 소식이 안타깝다. 나이로 계산해보니 1929년생인 선생이 1965년에 매일경제신문을 설립하고 이듬해 창간호를 냈다고 하니, 36세의 젊은 나이에 회사를 설립했고, 198153세라는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다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매일경제는 MBN이라는 종합편성채널과 창간 50주년을 맞아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신문에 많은 지원자가 선택하는 매경TEST를 시행하고 있어 선생이 오늘의 모습을 보면 흐뭇해할 거라 생각하니 더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매일경제신문은 급변하는 언론 환경-신문에서 디지털로의 전환, 미래에 대한 대비, MBN 자금 조달의 어려움, MBN 종합편성권을 따기까지의 어려움을 겪을 때 선생의 지혜가 절실했다고 저자는 전한다.

 

이 책은 10년 전 정진기 선생 서거 30주년 책의 개정판이라고 한다.

 

정진기 선생은 자신이 깨어있는 도구로 공부를 강조했다고 한다. 스스로 부족한 영어 공부를 위해 외국어 학원에 수강하고, 미국으로 산업 시찰을 겸한 어학연수를 통해 영어를 통달하고자 했다.

 

폴 새뮤엘슨의 <경제학>을 통독하고자 수많은 단어를 찾고 나중에는 홀로 읽게 된 책을 보니 만학의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당시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미국의 경제학파에 대한 이해와 경제학자의 저술을 이해한다는 것을 공부를 넘어 생존에 절실했다.

 

이에 선생은 당신 스스로 공부는 물론이고 직원들에게도 공부를 강조했다.

 

나는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사람, 특히 자기가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제일 싫다.”라는 그의 생각을 잘 나타낸다.

 

선생의 공부에 대한 집념은 아마 집안 내력이었나보다. 선생의 할아버지가 나주 향교의 전교(향교의 지도자)를 맡아보았고 호남지방 유림 모임의 계주였다. 할아버지는 늘 사나이로 태어났으면 나만을 위한 사사로운 일을 하기보다는 민족을 위해 큰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 그러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소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현해탄을 건너기 위해 밀항선을 탄다. 무일푼의 소년에게 일본 생활은 고생길이었다. 해방되고 한국으로 돌아온 선생은 경찰과 빨치산들의 대결로 아비규환이던 시기를 겪었다.

 

삼도 서국민학교에서 교장 직무 대리를 맡았던 시절 무장 공비의 습격을 받아 죽도록 구타당한 후 공비들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죽기 살기로 뛰어 탈출했다. 이어 다른 초등학교로 전근 명령을 받았을 때 한국전쟁이 터졌다.

 

이후 한국전쟁 동안 중매로 결혼했고 서울로 이사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검정고시를 거쳐 조선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했다. 낮에는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공부하는 주경야독의 생활은 운명처럼 평생 선생의 생활이 되었다.

 

가진 것 없는 시골 청년에게 서울에서 일할 수 있는 곳은 막 도농 판뿐이었다. 일주일 동안 쉼 없이 일했지만, 공사판에서 쫓겨난 그가 찾아간 곳은 광화문 네거리 국제극장 뒷골목이었다. 그곳에서 담배 좌판대를 들고 담배를 팔았다.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에도 광화문 뒷골목에 차를 대고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했다고 한다. 기업의 대표가 되어 과거 담배 좌판을 들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을 것이다.

 

그는 꾸준히 자기 계발을 했고, 1960년에 평화신문에 스카우트됐다. 곧이어 서울경제신문에서 일하게 되고 1964년에는 대한일보 상무를 영전되어 자리를 옮겼다.

 

활발히 취재하고 기자 생활을 하다 보니 정부가 국민을 위해 수립하였다는 정책들을 살펴보고 국민이 정말 원하는 것이 빠져있는 것을 확인할 때마다 실망했다.

 

국회는 경제문제가 아닌 정략을 앞세운 공방만 하고 있었고, 기업체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도덕심도 망각하고 눈앞의 이익만 추구했다.

 

선생은 이런 상황을 보며 새로운 신문을 만들어야겠다는 의지를 굳혔다.

 

신문사를 창업하기 위해 모 신문사를 인수하고자 했다. 하지만 계약 소식이 전해지자 신문사 기자들이 파업을 계획하고 인수를 반대했다. 그는 새로운 신문사를 창업하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다.

 

신문사 창간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정부의 허가였다. 특히 윤전기가 있어야 신문사를 창간할 수 있는데, 윤전기를 수입하는 조건에는 기존에 신문을 발행하고 있는 회사만이 윤전기를 수입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는 정부를 설득하기 위해 공보부를 발이 닳도록 찾아갔다. 마침내 공보부 홍종철 장관에게 윤전기 수입을 허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로써 매일경제신문사가 탄생했다.

 

그는 모든 직원을 소중하게 여겼고, 특히 윤전기를 담당하는 부서와 같이 몸으로 일해야 하는 직원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윤전기를 고속 윤전기로 교체했다.

 

신문사의 주 수입원인 광고라는 것이고, 광고를 게재하기 위해선 많은 독자가 읽을 수 있는 수준이 높은 양질의 기사가 많아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19801117일에는 언론 통폐합 조지가 발표됐다. 전국 64개 언론사 (신문 28, 방송 29, 통신 7)는 신문 14, 방송 3, 통신 1개로 통합하고 지방 언론사는 11사를 원칙으로 하는 조치였다. 4대 경제지 중 서울경제는 한국일보에 흡수·통합되며, 내외경제는 코리아헤럴드에 통합한다. 국제일보는 부산일보가 흡수한다는 내용이었다.

 

다행히도 매일경제신문은 살아남았다.

 

매일경제신문은 재도약 희망의 해로 1981년을 맞이했다. 하지만 정진기 선생을 건강은 악화일로로 치달았고, 그해 췌장암 말기를 선고받았다.

 

많은 분이 선생의 갑작스러운 유고 소식에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 그 이듬해, 언론계를 발전시킨 선생의 공로가 인정되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이 책으로 매일경제신문 창업주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이제는 언론을 바라볼 때 언론사가 가지고 있는 관점을 눈여겨보게 된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매일경제신문은 가장 중립적인 입장에서 경제 뉴스를 전달하는 언론사이다.

 

매일경제신문에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우리, 공부합시다>로 창업주인 정진기 선생의 삶과 철학을 배워보는 기회로 이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이 글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우리공부합시다 #자기계발 #정현희 #매경출판 #정진기 #매일경제 #경제 #경영 #리뷰어스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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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공부합시다 - 늘 깨어 있는 참언론을 꿈꾸다
정현희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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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신문의 창업주 정진기 선생에 관한 회고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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