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애벌레를 싫어한 왕자 작은별밭그림책 13
황이원 지음, 박지민 옮김 / 섬드레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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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지하긴 쉬워도 되돌리긴 어렵다>

이 책을 2,3년 전에 읽었다면 그냥 한 권의 그림책 정도로 여겼을 거다. 하지만 2024년 1월이라는 시점에서 읽으니 책을 그냥 넘길 수가 없을만큼 마음이 무겁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작가 이름이 황이원이라 우리나라 사람일까 생각했는데 옮긴이가 있어 의아했다. 그런데 책 날개에도 작가 소개가 없어 책을 다 읽고 살펴보니 대만 작가다. 국적을 알고 나니 대만 작가이기에 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만과 우리나라만큼 복잡한 역사와 상황 속에 놓인 나라도 없으니까. 어린이책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위험하거나 불편할 수 있겠지만 삶의 어느 한 순간도 정치에 영향받지 않는 것이 없기에 보이는대로 볼 수밖에 없다.
초록 애벌레를 싫어하는 한 나라의 왕자가 8살 생일에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을 묻자 초록색이 모두 사라지길 바란다고 한다. 그런데 신하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그런 왕자의 소원이 가져올 문제점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왕자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방법만 제시한다.
초록을 모두 없앨 수 있나? 그럼 수목도, 생명체도, 누군가의 취향도 모두 사라져야 하는데 그 나라는 그 놀라운 일을 해낸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되고, 이 왕자는 무사히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을까?
내용은 이토록 어마무시하지만 그림체는 그냥 초등 2,3학년 아이들의 크레파스화 같다. 그래서 더욱 이 내용이 철없는 아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그 취향을 떠받든 어른들이 가져온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색칠하듯 자기 마음대로 다른 존재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모습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것인지.
왕자는 모른다. 그냥 초록애벌레만 안 보이면 좋은 거다. 마치 독재자들이 자기가 불편한 것들만 치워지면 세상이 잘 돌아간다고 느끼는 것처럼.
이 책의 겉싸개 안쪽엔 책을 매개로 활동할 수 있는 활동 내용이 들어있다. 보통 도서관에서 그림책 보관이 어려워 겉싸개를 만드는 것을 꺼려 하는데 활동 방법까지 넣은 겉싸개를 만든 출판사의 정성과 마음이 느껴진다. 그곳에 어른에게 당부하는 말이 이렇게 씌어져 있다.
‘금지에 대한 토론은 놀랍고도 자극적인 주제입니다. 서로의 이익과 가치관이 관련돼 있어 잏관계가 쉽게 충돌되고 감정을 다칠 수 있지요. 하지만 시민의 권리와 의무로 결정하는 모든 일들이 다 그렇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 주제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듣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런 과정은 아이들이 소통 능력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약물로든, 강제적인 조처로든 초록색을 사라지게 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왕국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부디 우리나라와 이 세상도 소수 몇몇의 취향에 맞추느라 지켜야 할 것들을 함부로 없애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 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림책 한 권을 읽고 이렇게 간절해질 줄은 몰랐다.
#초그신서평단
#책제목_초록애벌레를_싫어한_왕자
#작가_황이원
#번역가_박지민
#출판사_작은별밭
#주제어_금지와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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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는 망고 나무를 사랑해!
사르탁 신하 지음, 강수진 옮김 / 찰리북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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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사람을 쓸모로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 교육부 이름이 교육인적자원부였던 적도 있고, 현재 다른 나라까지 걱정하는 우리나라의 저출생 요인 중엔 지나친 입시 경쟁이 자리한다. 좋은 대학을 가지 않으면 쓸모 없는 사람이 될 거라는 불안이 우리나라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고 이젠 그 마저도 의대가 아니면 쓸모가 없다며 수능을 세 번, 네 번씩 치는 아이들도 있다.
쓸모. 무엇이 쓸모인가? 여기 열매가 열리지 않는 망고나무 한 그루가 있다. 그럼 이 나무는 쓸모를 다한 것인가? 그 나무의 열매를 정말 좋아했던 파라는 나무의 쓸모를 되살리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한다. 노래도 불러 주고, 우유도 부어주어 보지만 망고나무는 더 이상 열매를 맺지 않는다. 그런데 열매가 맺지 않는 이유나 열매를 다시 맺게 할 방법을 물어봐도 할아버진 계속 다른 일이 바쁘다며 답을 주지 않으신다.
파라는 과연 할아버지 뒷마당에 있는 이 커다란 망고나무의 열매를 다시 맛보게 될까? 그리고 할아버지는 애타는 손녀의 질문엔 답하지 않으시고 무슨 일로 바쁘실까? 이 해답은 책을 펴 보면 알게된다.
쓸모 대신 존재가 더 중요한 우리 사회가 되면 좋겠다. 그리고 나도 나에게 필요해서 누군가를 만나는게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누군가(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무생물이든)를 있는 그대로 대하는 태도를 지니면 좋겠다. 그러면 그때는 또 얼마나 다르고 풍성한 만남이 되겠는가?
내용도 좋지만 파라의 표정 변화와 능청맞은 할아버지 모습 등이 풍성한 나무 모습과 함께 어우리는 이 책은 참 사랑스럽다.
#초그신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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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가나다라
이달 지음, 강혜숙 그림, 김성미 꾸밈 / 달달북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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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자모음 관련 그림책이 많다. 주로 자음 관련 그림책이 많지만 요즘은 점차 모음 관련 그림책들도 늘고 있어 반갑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그림책은 자음과 모음이 함께 춤을 추는 그림책이다. 자음 세계에서도 나름 변신이 가능한 ㄱ이지만 다른 자음들은 도통 관심을 주지 않는다. 자음들은 워낙 반듯반듯한 사각형에 가까운 몸 형태라 자유롭게 놀기가 편치 않아 보이기도 한다.
심심했던 ㄱ은 더 재미있는 친구들을 찾아 떠나가보기로 한다. 가는 도중에 듣게 된 음악 소리를 따라가다 보니 처음 보는 길쭉길쭉한 아이들이 춤을 추며 놀고 있다. 자기들을 모음이라고 한다. 그들과 놀다보니 ㄱ은 몸 색도 바뀐다. ㄱ은 이런 즐거움을 자음 친구들에게도 주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 그리고 그 결과는?
<춤추는 가나다라> 라는 책을 읽어보면 심심했던 ㄱ이 어떤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있다. 자음과 모음들의 만남과 흥겨운 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말의 제자원리를 알게 되는 점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그냥 글자를 익히는 도구가 되는 그림책이 아니라 만남의 기쁨과 음악적 즐거움까지 함께 느낄 수 있는 이 책이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모든 대한민국 학생들과 처음 우리 말을 배우는 모든 한글학교 입학생 손에 들려지길 기대한다. 그리고 모두 같이 이 책을 쓴 이달 작가와 함께 모음춤을 플래시몹처럼 춰보는건 어떨까? 생각만해도 신난다.
#초그신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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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나! - 제23회 대한민국 독서대회 초등 고학년(인문사회) 선정도서 초등생을 위한 지식과 생각의 학교 지생학
페르난도 마린.로레토 우레홀라 지음, 가브리엘라 리온 그림, 이진하 옮김 / 느림보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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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영화가 연일 화제다. 초등학교 6학년 단체관람을 하려했던 서울과 포항에 서로 다른 학교가 있었는데 두 학교 모두 계획을 취소했다고 한다. 민주주의와 지구촌 분쟁과 갈등을 배운 아이들이 왜 이 영화를 보면 안 되는가? 아이들이 그걸 보고 판단할 능력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나!> 책은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살아오며 겪은 여러 일을 역사라 정의하고 그 속에서 어린이와 여성들이 겪거나 이룬 일, 차별과 이주가 일어난 원인과 그 속에서 투쟁한 사람들, 소통과 통신기술의 발달 과정, 전염병의 역사 등을 주제로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만나게 하는 책이다. 그리고 그 역사들은 동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7 미래는 우리의 것 장에서는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앞으로 맞이해야 할 미래의 모습을 다양한 도전 과제와 함께 제시한다. 어쩌다보니 아이들에게 행복한 세상을 지키기만 하면 된다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반대로 잔뜩 무거운 빚과 짐을 아이들에게 넘겨버렸다. 지속가능, 공정, 올바른 민주주의, 마약과 테러 없는 세상 등을 아이들은 잘 만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크게 후퇴시킨 12.12 사태를 다룬 영화를 보는 것조차 방해하는 어른들은 아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배우길 바라는가? 역사에 무지한 온실 속 화초로 자라게 하는 게 아니라면 불편한 진실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마음껏 질문하고 토론하게 해야 한다.
<역사의 주인공은 바로 나!> 이 책 속의 소주제와 사건들이 아이들에게 그런 궁금증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더 자세히 찾아본 뒤 질문을 생각해보게 하고 토론을 할 시간과 기회를 주는 어른들이 필요하다. 아이들과 어른이 함께 읽으면 좋겠다.
#초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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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원
장선환 지음 / 만만한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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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그신서평단
#선로원
#장선환
#만만한책방
#삶

기차는 내 삶에서 꽤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초등 1학년 때 기차로 강원도 춘천에서 경남 창원까지 전학을 가며 내내 울었던 기억도 나고 교사로 첫 발령을 받은 곳은 기차 통근만 가능한 낙동강 옆 작은 역 근처였다. 그때 탔던 열차가 무려 비둘기다. 덜컹 거리던 그 기차를 타고 가다 새마을이나 무궁화 등 좀 더 비싼 기차를 만나면 선로 대기가 가능한 곳에 서서 그 기차가 지나갈 때까지 대기를 해야했다. 경전선 기차길이 단선이라 그랬다.
퇴근은 5시였지만 7시 15분 비둘기 기차가 퇴근 수단이다보니 역사 안에서 놀 때가 많았다. 역무원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역무원들께서는 24시간 교대 근무체제다 보니 역사를 집처럼 예쁘게 꾸미셨다. 텃밭도 가꾸시고 꽃도 심으시고. 물론 가장 중요한 일은 플랫폼 안전 관리와 선로 수리였다. 낙동강 옆이라 홍수라도 있으면 밤새 수리를 해야할 때도 있었고 큰 더위에 철로가 휘면 탈선이 일어날 수 있어 늘 걱정하셨다.
철길과의 인연은 연애와 결혼으로 이어졌고 그러다보니 선로 위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소식을 직간접적으로 많이 들으며 살아왔다. 그 중 가장 마음 아플 때는 신호를 받지 못하고 선로 수리를 하시다가 기차가 들어오는 걸 못 보고 돌아가신 분들이 생길 때다. 선로 수리가 주로 밤에 이뤄지다 보니 사고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정말 마음이 아프다. 기차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노력하시는 분들의 안전은 왜 제대로 보장되지 않을까?
장선환 작가님의 <선로원> 그림책을 읽다보니 내 삶 속에서 철길과 이어진 여러 일들이 계속 흘러나온다. 요즘은 뚜벅이인 내가 전국 방방곡곡으로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제일 편안한 발이 기차다. 강릉으로, 춘천으로, 경주로, 부산으로, 여수로 내가 하루만에 훌쩍 떠나올 수 있는건 모두 선로원들께서 정성들여 놓아준 기찻길 덕분이다. 앞으로 이 기찻길이 도라산역과 제진역을 지나 북녘땅으로도 빠르고 안전하게 달려 그 옛날 손기정 선수처럼 우리도 베를린까지 기차로 달려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런 추억을 다시 소환시켜 준 <선로원> 그림책을 다시 찬찬히 열어보며 기찻길 덕분에 가능했던 다양한 추억을 더 떠올려봐야겠다. 그림책은 힘이 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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