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하긴 쉬워도 되돌리긴 어렵다> 이 책을 2,3년 전에 읽었다면 그냥 한 권의 그림책 정도로 여겼을 거다. 하지만 2024년 1월이라는 시점에서 읽으니 책을 그냥 넘길 수가 없을만큼 마음이 무겁고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작가 이름이 황이원이라 우리나라 사람일까 생각했는데 옮긴이가 있어 의아했다. 그런데 책 날개에도 작가 소개가 없어 책을 다 읽고 살펴보니 대만 작가다. 국적을 알고 나니 대만 작가이기에 쓸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도 든다. 대만과 우리나라만큼 복잡한 역사와 상황 속에 놓인 나라도 없으니까. 어린이책을 정치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위험하거나 불편할 수 있겠지만 삶의 어느 한 순간도 정치에 영향받지 않는 것이 없기에 보이는대로 볼 수밖에 없다. 초록 애벌레를 싫어하는 한 나라의 왕자가 8살 생일에 받고 싶은 생일 선물을 묻자 초록색이 모두 사라지길 바란다고 한다. 그런데 신하들의 모습이 가관이다. 그런 왕자의 소원이 가져올 문제점은 아무도 지적하지 않고 왕자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방법만 제시한다. 초록을 모두 없앨 수 있나? 그럼 수목도, 생명체도, 누군가의 취향도 모두 사라져야 하는데 그 나라는 그 놀라운 일을 해낸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되고, 이 왕자는 무사히 이 나라를 다스리는 왕이 될 수 있을까? 내용은 이토록 어마무시하지만 그림체는 그냥 초등 2,3학년 아이들의 크레파스화 같다. 그래서 더욱 이 내용이 철없는 아이의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과 그 취향을 떠받든 어른들이 가져온 말도 안되는 상황이라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크레파스로 알록달록 색칠하듯 자기 마음대로 다른 존재의 운명을 좌지우지 하는 모습이 얼마나 무지몽매한 것인지. 왕자는 모른다. 그냥 초록애벌레만 안 보이면 좋은 거다. 마치 독재자들이 자기가 불편한 것들만 치워지면 세상이 잘 돌아간다고 느끼는 것처럼. 이 책의 겉싸개 안쪽엔 책을 매개로 활동할 수 있는 활동 내용이 들어있다. 보통 도서관에서 그림책 보관이 어려워 겉싸개를 만드는 것을 꺼려 하는데 활동 방법까지 넣은 겉싸개를 만든 출판사의 정성과 마음이 느껴진다. 그곳에 어른에게 당부하는 말이 이렇게 씌어져 있다. ‘금지에 대한 토론은 놀랍고도 자극적인 주제입니다. 서로의 이익과 가치관이 관련돼 있어 잏관계가 쉽게 충돌되고 감정을 다칠 수 있지요. 하지만 시민의 권리와 의무로 결정하는 모든 일들이 다 그렇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이런 주제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고 듣는 연습을 해보세요. 그런 과정은 아이들이 소통 능력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정말 공감되는 말이다. 이 책에서도 약물로든, 강제적인 조처로든 초록색을 사라지게 하기는 쉬웠다. 하지만 왕국이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려면 아주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거다. 부디 우리나라와 이 세상도 소수 몇몇의 취향에 맞추느라 지켜야 할 것들을 함부로 없애는 우를 더 이상 범하지 않길 바랄 뿐이다. 되돌아올 수 있는 길을 남겨 놓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림책 한 권을 읽고 이렇게 간절해질 줄은 몰랐다. #초그신서평단#책제목_초록애벌레를_싫어한_왕자#작가_황이원#번역가_박지민#출판사_작은별밭#주제어_금지와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