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밭의 파수꾼
도직 지음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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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남자친구이자 톱스타인 '차이한'에게 애정과 열등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미스터리 소설 작가 '유민'은 슬럼프로 작품 활동이 여의치 않다. 이를 걱정한 아버지로부터 당분간 할머니의 시골집과 밭을 관리하며 지내며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고 시골로 내려간 유민은 할머니의 마늘밭에서 거액의 돈을 발견하며 사건에 휘말린다. 그리고 그 사건은 뜻밖에 남자친구인 차이한의 과거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일단 400페이지를 살짝 넘기는 볼륨이 무색하게, 심지어 내 취향이 아닌(?) '사랑 타령'이 반복되는데도 불구하고 상당히 가독성이 좋아서 순식간에 독파했다. 흔히 말하는 '로맨스릴러'의 일종..으로 느껴지는데 [마늘밭의 파수꾼] 속 사랑은 영미스릴러의 끈적한 사랑과는 다른, 집착과 의심을 오가는 사랑이라서 그런지 사랑 타령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거부감 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전체 줄거리를 말하라고 하면 어렵지 않게 몇 문장으로 줄여서 말할 수 있을 것처럼 간결한 뼈대를 가지고 있는데, 그 뼈대에 과하지 않으면서 흥미로운 '살'을 붙이는 작가님의 능력이 그야말로 탁월해서 소설 속 상황에 크게 진전이 없는 순간도 늘어진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완급 없이 긴장 상황만이 계속되면 피로감이 높아지기 때문에 대부분의 소설에서는 '긴장의 상황'과 '안도의 상황'을 오가며 조금씩 긴장감을 높여나가는데, [마늘밭의 파수꾼]은 '긴장의 형태'를 바꾸는 것으로 완급을 조절하며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야기의 얼개만 놓고 보면 다소 익숙할 수도 있지만, 그 얼개를 보여주는 방식이, 그 방식 속에 숨겨놓은 복선이, 아무렇지도 않게 던진 표현에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이 연륜(?)을 느끼게 만들어서 '이게 정말 작가님의 데뷔작이라고!?'하는 의문을 품게 만들 정도였다.



[마늘밭의 파수꾼]과 '사랑'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이 책 전반에 걸쳐 사랑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그 사랑이 최고조에 달하는 장면에서 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그리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미간이 펴지지 않는- 묘한 경험을 했다. 일본에서 읽고 나면 기분이 나빠지는 미스터리 소설을 '이야미스'라고 하는데, [마늘밭의 파수꾼] 역시 그런 이야미스의 일종으로 느껴진다는 게, 이 책 전면에 내세워진 '사랑'과 매칭이 되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보다 더 잘 어우러질 수도 없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제목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는 순간의 서늘함은 한여름 열대야를 한순간이나마 잊게 만들 정도로 강렬했다. 익숙한 것 같으면서 익숙하지 않고, 뻔한 것 같으면서 뻔하지 않은, 독특한 매력을 가진 책 [마늘밭의 파수꾼]. 작가님의 다른 작품이 있다면 바로 이어서 손에 들어도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인데 아직 출간작이 한 권밖에 없다는 게 아쉽다. 빠른 시일 내에 도직 작가님의 작품을 다시 한번 만날 수 있기를 손꼽아 기대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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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살인
카라 헌터 지음, 장선하 옮김 / 청미래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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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20년 동안 미제로 남은 사건의 해결 과정이 전 세계로 스트리밍 된다!"



영화감독 '가이'는 스스로 '인퍼머스'라는 스트리밍 프로그램의 감독이 되어서 20년 전 자신의 새아버지가 살해당한 사건을 다루고자 한다. 변호사, 전직 경찰, 법정 심리학자, 법의학 수사관 등 여러 분야 전문가들을 선발하고, 직접 사건을 조사하고 토론하며 당시 경찰이 밝혀내지 못한 진범을 찾아내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들은 '인퍼머스'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놀라운 사실들을 연이어 밝혀내고 '이대로 가면 범인을 잡는 것도 가능하겠다!'라는 기대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사실들이 하나둘 밝혀지며 이들은 점점 혼란스러워지는데...



"미친 거 아닌가..."



책을 손에 들기 전까지는 몰랐던 거죠.. 이 책이 무려 600페이지 가까운 볼륨이라는걸.. 집에서 시작하는 건 무리다!(?) 하고 카페에 들고 나갔는데 앉은 자리에서 300페이지 순삭 실화인가요!? 내가 특별히 책을 빨리 읽어서!는 아니고, 그만큼 초반 몰입 및 가독성이 좋다는 게 첫 번째 이유, 그리고 책의 본문 구성이 두 번째 이유다. 대부분 방송 극본 형태로 진행되다 보니 대화체 중심이기도 하고, 줄바꿈도 많고(?), 무려 20년 동안 미제로 남은 사건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새롭게 파헤친다!라는 컨셉이 마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TV 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은 흥미로움을 더해주고 있다. 실제로 입이 떡!! 벌어질 만한 보다 더 흥미로운 요소들도 있지만, 그 부분은 책 속에서 직접 만나며 입이 떡! 벌어지면 더 좋을 것 같아서 일단은 운만 띄워놓고 넘어가야겠다.


책을 읽으며 두 번, 정말 입이 떡 벌어지게 놀랐다. 한 번은 중반부에 생각지도 못한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인 '그래프'를 마주했을 때였다. [가족 살인]은 일단 포맷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데, 시작부터 '인포머스'에 캐스팅(?) 된 등장인물들의 각기 다른 양식의 이력서를 보여 주며 단숨에 기대와 몰입감을 올려놓는다. 또 챕터의 시작 역시 마치 내가 TV 프로그램의 극본을 엿보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있어서 한층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여기에 대화 중심의 내용이, 분명 나는 텍스트를 읽고 있는데 마치 TV 화면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함이 놀라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이 책의 진정한 매력에 비하면 모두 부차적인 요소..라고 해야 할까.. [가족 살인]의 가장 놀라운 점은 '좋아요', '하트', '구독', 기타 여러 가지 단어로 대변할 수 있는 '화제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이들의 앞면과 뒷면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극대화되어서 나타난 게 바로 앞서 언급한 '그래프'라서, 그 그래프를 보는 순간 정말 '미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던...


이렇게 쓰고 보면 단순히 포맷이 좋고, 그 포맷을 잘 살린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가족 살인] 속 사건은 포맷과 분리해서 생각해도, 그러니까 '평범한' 방식으로 전개되었어도 충분히 흥미진진했을 이야기이다. 20년 전 미제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을 지지부진한 조사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밝혀진 사실 위주로 빠르게 전개된다. 그리고 한 가지, 한 가지가 밝혀질 때마다 상황이 뒤집히며 시선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무엇이 진실인가..'에 독자를 쉽게 다다르게 만들지 않는다. 거의 최종, 최최종, 진짜 최종.. 수준으로 끌고 가는데(?) 내 기준에서는 진짜 최종 딱 직전에 멈췄어도 충분히 만족스러웠을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진짜 최종은 살짝 너무 간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았던 게 유일한 아쉬움이랄까...



"600페이지 정도는 가볍게 순삭 되는 재미!"



[가족 살인]은 여타의 영미 스릴러가 그랬던 것처럼 심리 묘사가 풍부한 책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족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사족이 적지 않은 편이다. 그런데 그 사족이 단순히 분량을 늘리기 위한 게 아니라, 딱 그곳에 있음으로써 흥미를 배가시키는 사족이라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마치 드라마를 보는데 결정적인 장면에서 1화가 끝나고, 막상 2화가 시작되면 1화의 그 장면은 뭐 적당히 지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또 결정적인 장면에서 2화가 끝나고 3화를 기다리게 되는.. 딱 그게 이 책에 있다. '인포머스' 한 회차의 마지막에 던져진 폭탄의 행방(?)이 궁금해서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추지 못하고, 그 궁금증이 풀리려고 할 때쯤 다른 폭탄이 던져져서 또 페이지 넘기는 것을 멈추지 못한다. TV 혹은 영보다 재미있는 책!이라고 하면 단순한 비유인 줄 알았는데 -물론 저는 실제로 TV보다 책이 더 재미있습니다만..-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이 내용을 그대로 영상으로 옮긴다고 해도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는 없을 것 같다. 어그로가 과하다!!!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조차 섬뜩하리만치 현실적이어서 더 흥미로웠던 책 [가족 살인]. 600페이지 정도는 가볍게 순삭 되는 재미를 직접 경험해 보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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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엘릭시르 미스터리 대상 수상작품집
고수고수 외 지음 / 엘릭시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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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거짓말쟁이의 고리>(고수고수)


대상수상작이라 가장 기대가 컸던 <거짓말쟁이의 고리>. 일단 설정은 흥미로웠다. 무조건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 즉 살인을 저지른 상황에서 절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거짓말쟁이의 고리'에 들어가야만 한다면!? 그야말로 아찔할 수밖에.. 하지만 전개는 기대보다 살짝 아쉬웠는데, 아마도 복선이 너무 솔직했던 탓에 책의 노림수를 모르기 어려웠던 탓이 아닌가 싶다. 또 소설에 필요한 대부분의 정보를 인싸력 만렙(?)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과하게 설명하는 것도 -적은 분량 안에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기에 적합한 방식이기는 했지만- 썩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치만 다소 사족처럼 보일 수 있을 마무리가 의외로 괜찮았음!



<탈태>(강연서)


아내의 유골을 품에 안은 채 아내의 고향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탄 남자. 기차 내에서 느껴지는 이국적인 분위기와 더불어 감도는 묘한 공기까지.. 초반은 흥미로웠는데 중반에는 이 단편의 장르가 무엇인지 약간 헷갈리기 시작했고, 마지막에는 -제목까지 포함해서- 과연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이었을까..에 대한 의문이 남았다. 단순히 '호러'니까 풀리지 않은 게 있을 수도 있다!라기에는 풀리지 않은 게 너무 많은 거 아닌가.. 싶긴 했지만 나름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는 좋았다.



<승은만은 원치 않소>(교묘)


한국판 아라비안 나이트 같은 느낌의 구성이었는데, 시대 배경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일상 미스터리 느낌이라서 오히려 흥미로웠다. 사실 설정 자체는 굳이...? 싶은 부분도 있고, 짧은 분량의 단편에서 다루기에 뭔가 있을 듯한 느낌만 주고 아직은 비어 있는 듯한 느낌도 있는데, 자그마한 사건으로 슬쩍 운을 띄워놓고 이후 장편으로 본격적인 전개가 시작될 예정이다!라고 하면 오히려 좋을 것 같은? 이번 이야기에서 풀리지 않은 부분이 멋지게 다시 이어지기를 바라게 된다.



<설원해담>(김지윤)


아, 너무 뻔하다...라는 생각을 예상이라도 한 듯 비틀어서 '오오..'하는 감탄을 하게 만들었던 단편 <설원해담>. 예상을 비틀기 위한 일부 설정은 다소 작위적이다..라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원래 미스터리 소설과 작위적인 설정은 뗄 수 없는 관계니까요. 여러 모로 치밀하게 구성된 게 인상적이었는데, 그 치밀함이 돋보이는 만큼 너무 허술한 몇몇 설정이 상대적으로 도드라지는 건 아쉽다.



<조선 영아 발목 절단 사건>(송수예)


설정이 너무 끔찍해서 쉽게 손이 가지 않았던 마지막 단편..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작가님의 상상력이 더해져 완성된 작품이라고 하는데, 상상력이 잘 발휘되었다는 감탄 반, 아무리 그래도 이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다..라는 생각 반이었다. 복선이 없는 건 아니지만 썩 페어하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독자가 추리할 여지가 많지 않은 것 같다..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추리보다는 소설 속 '드라마'적인 요소가 오히려 좋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상상력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일부 꼭 필요하지 않은 부분을 조금 쳐내고 좀 더 컴팩트하게 전개했다면 중반부터 받았던 다소 늘어진다는 느낌은 덜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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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라는 장르만 놓고 보면 만족보다는 아쉬움이 약간 더 큰데, 아마도 나에게 미스터리는 '추리'에 가까운 느낌이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장르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다섯 편은 서로 다른 매력을 가진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이야기였다. 이 작가님은 분명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셨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 만큼 비교적 트릭(?)에 집중한 작품도 있고, 어쩐지 여행을 좋아하실 것 같은데.. 싶을 만큼 이국적인 분위기에 집중한 듯한 작품도 있고, 마치 그 시대를 살아본 것처럼 당시의 시대 상황을 잘 녹여낸 게 인상적인 작품도 있었고, 그 안에 담긴 드라마가 돋보인 작품도 있었다. 그리고 공모전의 취지 그대로, 어떤 식으로든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담고 있어서 반갑기도 했고. 장르문학의 불모지와도 같은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꾸준히 미스터리 장르의 공모전이 개최되고, 또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꾸준히 새로운 작품들을 접할 수 있게 된다!라는 걸 생각하면 여러 모로 감사하기도 하다. 특히 전년까지는 오직 대상 수상작만 만날 수 있어서 아쉬웠는데 올해에는 후보작들까지 실린 작품집이 출간되고, 그 후보작들 중에서도 '오오, 좋다!'라는 감탄을 하게 만드는 작품들이 있어서 더더 반갑다. 이후로도 이렇게 작품집으로 꼭! 출간해주시기를 바라보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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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코워커
프리다 맥파든 지음, 최주원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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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영양 보충제 회사에서 근무하는 '내털리'는 9시 10분 전, 자신이 출근했을 때 비어있던 옆자리를 보며 의문을 가진다. 아홉 달 전에 입사한 회계사 '돈'은 그동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오전 8시 45분에 출근했다. 그런 그녀가 지금까지 출근하지 않았다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게 분명하다. 심지어 그녀는 어제 내털리에게 '중요한 문제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라는 말도 했다. 외근 후 잠시 돈의 집에 들른 내털리는 곧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른다. 돈은 어떤 흔적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리고 내털리는 돈의 실종에 주요 용의자가 되었다.



[더 코워커]는 돈이 출근하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은 채 그녀의 집에 찾아갔다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내털리 시점의 현재, 그리고 아홉 달 전부터 아마도 '지금'에 이르기까지 돈이 친구와 주고받았던 메일의 내용이 교차로 전개된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묘한 어긋남이 느껴진다. 같은 사건이라도 내털리의 시점에서 회상하는 것과 돈이 쓴 메일의 내용이 좀 다르다. 단순히 '나'를 기준으로 말하는 정도, 그러니까 비교적 나에게 유리하게 묘사하는 정도를 넘어선 것 같은 어떤 '차이'가 느껴진다. 그런데 그게 참 묘한데.. 보통은 누군가의 시점의 서술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 사람에게 몰입해서, 그 사람의 편..이랄까, 혹은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게 마련인데 [더 코워커]는 정반대였다. 내털리의 시점을 읽다 보면 그녀의 수상한 행동들에 의문을 품게 되고, 돈의 메일을 읽다 보면 그녀의 생각과 행동에 묘한 위화감 같은 게 느껴진다. 여기에 경찰도 평범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행동도 뭔가 좀 희한해서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덕분인지(?)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돈의 실종에 얽힌 진실과 더불어 책을 읽어나가는 강력한 유인이 된다.



책 띠지에 "프리다 맥파든의 책은 밤늦게 시작해서는 안 된다. 해가 뜨는 것을 보게 될 테니!"라는 추천사가 있는데, [네버 라이]에서 한 번 비슷한 경험을 했던 나는 크게 공감하며 [더 코워커]는 주말 아침부터 손에 들었다. 440페이지로 적지 않은 분량인데도 쉴 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며 결국 저녁이 되기도 전에 완독할 수 있었다. 프리다 맥파든의 책은 확실히 다른 영미 스릴러와는 좀 다르다. 묘사가 비교적 적은 편이고 가독성이 좋고 전개가 빠르다. 무엇보다 사람의 심리, 그게 등장인물의 심리든, 이 책을 읽는 독자의 심리든 간에 과하지 않은 선에서 능숙하게 쥐락펴락한다. 속아 넘어가면 속아 넘어간 대로, 속지 않으면 속지 않는 대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네버 라이]에 이어서 또 한 번 들었다. 결말 부분이 다소 급전개에 그간의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행동에 비해 평면적인 것 같다..라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적당한 시점에 적절하게 넣어둔 복선 덕분에 어느 정도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모든 것을 알고 읽는 것 같은데도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고, 다 읽고 나면 '난 아무것도 모른 채 읽었던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고, 사실 답은 처음부터 나와있었다!라는 것을 알게 되며 놀라는 것까지. 여전히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이 작가의 책을 두 권밖에 읽지 않았지만 딱 프리다 맥파든 스럽다(?)라고 느끼게 만들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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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선 군함의 살인 - 제33회 아유카와 데쓰야상 수상작
오카모토 요시키 지음, 김은모 옮김 / 톰캣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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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



영국의 평범한 구두장이 '네빌 보우트'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던 중 강제로 군함 '헐버트호'의 수병으로 징집된다. 군함과는 무관한 삶을 살던 네빌이었지만, 헐버트호에 탑승한 이후로는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강제 노동 및 무차별적인 체벌에 시달리게 된다. 집으로 돌아갈 희망조차 없는 때에 헐버트호에서는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사건이 해결되기도 전에 프랑스군과의 교전까지 벌어지며 순식간에 배는 혼란에 빠지게 되는데...



[범선 군함의 살인]은 시작부터 영리한 전개를 보여준다. 주인공인 네빌은 출산을 앞둔 아내의 아버지, 즉 장인어른을 배웅하다 장인어른의 제안으로 술집에서 술을 마시게 된다. 조금만 마시고 일어났으면 좋으련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시간이 흘렀고, 수병을 징집하러 온 이들에게 강제로 징집당한다. 장인어른을 배웅하지 않았다면, 술집에 가지 않았다면, 술을 조금만 마셨다면 피할 수 있었을 징집이었는데, 몇 번의 기회를 놓친 대가는 기약 없는 군함에서의 강제 노역으로 이어졌다. 네빌의 짧은 사연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동시에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자칫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을 군함 혹은 배에서의 생활에 대한 설명도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체적인 사연과 함께 진행되니 호기심도 들고 흥미롭게 느껴졌다. 네빌이 조금씩 군함에서의 생활에 적응 아닌 적응을 해나가는 걸 보며 '그냥 이렇게 네빌의 군함 적응기만 보여줘도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잠시, 연이어 살인 사건이 발생하고 프랑스군과의 교전까지 벌어지며 그야말로 페이지가 순삭되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흥미로운 시대소설..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인데, 거기에 '범선 군함'이라는 거대한 클로즈드 서클을 배경으로 한 본격 미스터리라니 이건 재미가 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아니, 사실 읽기 전에는 '이게 정말 재미있을까..'라는 의구심이 없지 않았는데 어떻게 한순간도 재미없을 '틈'이 없었다. 여기에 범선 군함이라는 독특한 무대를 여러 가지로 잘 살리고 있다. 망망대해의 거대한 배 위, 도망칠 길이 없이 극한 상황에 몰린 등장인물들의 심리나 행동 자체도 흥미롭고, 클로즈드 서클의 배경으로써의 역할도 훌륭하다. 단순히 보여주기 위한 장소 설정이 아니라 반드시 이곳이어야만 하는 이유가 정말..... 어떻게 이게 데뷔작일 수가 있지? 하는 헛웃음 섞인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게 만든다.


 


나는 시대물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시대 배경을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고, 무엇보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생각에 공감하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시대 배경 소설을 술술 잘 읽히게 쓰는 작가는 드물고, 그래서 읽는데 시간도 오래 걸리는 편이다. 이런 여러 가지 단점들을 극복하고 읽을 만큼 재미있는 책도 만나기 어렵다. 그런데 [범선 군함의 살인]은 단순한 시대물도 아닌 18세기,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인 영국의 범선 군함이 배경이다. 보기에는 작고 가뿐해 보이지만 무려 4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초반부터 범선 군함에 대한 정보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정말 순식간에 몰입했고,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길 때까지 그 몰입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사실 이 책의 미스터리적인 부분은 '후더닛'이나 '와이더닛'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대부분 '하우더닛'에 집중하고 있는데 그 부분이 해소되는 순간 다소 극적인 게 부족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런데 다 읽고 생각해 보니 이들이 처한 상황 자체가 극적이라서 오히려 덤덤하게 해소되는 게 더 극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마 그 상황을 책에서 접하면 내가 느낀 감정이 어떤 건지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저는 이 책을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살인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어도 재미있다!는 감상이었을 것 같지만요.. 어떻게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지!? 하는 감탄만 거듭하게 만든, 너무 마음에 드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이 소동을 촌극 구경하듯 바라보았지만, 자신도 객석이 아니라 무대 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언제가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반드시 돌아오겠다. 그러기 위해서 어떻게든 살아남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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