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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내인 -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
찬호께이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사실 이 책만큼은 정말 아껴두고 싶었는데, 읽고 싶은 유혹을 도저히 떨치지 못했다. '그' [13.67]의 작가 찬호께이의 신작. 홍콩에서도 작년 6월에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 과연 [13.67]을 능가하는 대작일까,,하는 궁금증과 함께 찬호께이라는 만만치 않은 기대감으로 스타트.
책은 한 소녀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중학생에 불과한 어린 소녀가 22층 자신의 집에서 뛰어내린 이유는 무엇일까? 소녀의 유일한 가족인 언니는 소녀의 죽음에 무언가 원인이 있으리라 생각하고 조사를 하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한계를 느끼고 탐정에게 의뢰를 한다. 조사가 거듭될 수록 언니는 혼란에 빠진다. 중학생인 내 동생의 내가 모르는 모습에 당황하고, 동생 주변의 친구들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중학생에 불과한 어린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인가에도 회의를 느낀다. 범인 '없는' 살인을 마주했을 때 유가족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또 온라인 상의 '악의'로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이야기로 전개된다. 한 가지는 앞서 줄거리를 간단히 적은, 자살한 소녀의 언니 '아이'가 동생 '샤오원'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풀려는 것이고 다른 한 가지는 야심만만한 '스중난'이 거대 투자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이다. 이 사뭇 다른 분위기의 두 가지 이야기가 어떤 접점을 가지고 있는 지는 소설의 주요한 뿌리를 이룬다.
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 때는 망내인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과 부제 '네트워크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보고 미스터펫과의 공저였던 [S.T.E.P.]과 같은 근미래의 사이버적인 요소가 주를 이루는 책일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그런데 [망내인]의 중요한 글자는 '망'이 아니라 '인'이다. 다분히 인간적이다. 사이버폭력은 우리나라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어 낯선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직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이 편하고, 디지털보다 아날로그가 편한 기성세대보다는, 혹은 그 중간에 있던 2~30대보다는 태어날 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해 온 '요즘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옆에 있는 친구와도 카톡으로 이야기하고, 일상의 아주 소소한 부분까지 SNS를 통해 공유하고, 나의 사생활이 공개적인 곳에 게재되었을 때 미칠 수 있는 영향보다는 '좋아요'나 '덧글'이 더 중요한 사람들에게는 내 주변에서 들리는 이야기 혹은 소문보다 온라인을 통해서 퍼지는 가십 쪽이 훨씬 무게감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나와 관련된 '부정적인 이야기'라면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는 기술적인 내용도 많은 부분을 설명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주요인물의 심리를 중점적으로 그리고 있고,심지어 그 심리를 당사자가 '내가 이러이러한 기분이다' 혹은 절대자의 시점에서 '지금 저 사람이 이러이러한 심정이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객관적이기 어려운 등장인물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심리'라는 데서 보다 묵직하게 다가온다.
"인터넷은 단지 도구에 불과해요. 인터넷이 사람 또는 사물을 정의롭게 혹은 사악하게 만드는 게 아닙니다. 살인을 한 것은 칼이 아니라 그 칼을 쥔 사람,, 그리고 살인자의 손을 움직이게 만든 악의인 것처럼요. 누리꾼이라는 라벨을 붙이는 건 현실을 회피하는 변명일 뿐입니다. 누구나 인간성 속의 이기적인 면, 욕심 많은 면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기 죄를 뒤집어씌울 희생양을 찾게 됩니다." [망내인] 중에서,,,
그러면서도 홍콩이라는 배경에 대한 내용 역시 빠지지 않는다. 다소 낯선 곳인 홍콩이 배경이 되었을 때 과연 이 책의 몰입도를 방해하지 않는 만큼 그 곳(지칭하기 참 애매하다,, 나라라고 해야할지 지역이라고 해야할지,,,)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은 여전히 감탄하게 된다. 어색하지 않게 홍콩에 사는 사람들, 홍콩에 살기 때문에 처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도드라지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아니 사실 은근히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물 흐르듯, 당연히 그런 듯 홍콩의 상황을 등장인물과 사건에 관계시킨다. 물론 작가가 홍콩에서 태어나 홍콩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겠지만, 자국민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람이 읽었을 때도 위화감 없이 그 곳의 특수한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것은 정말 대단한 스토리텔링이라고 생각한다.
"분량은 점점 길어졌다. "15만 자 정도는 써야 끝나겠어." "아니야, 20만 자는 써야 완성되겠군." "26만 자도 부족해......"
탈고했을 때는 30만 자를 넘어 [13.67]보다도 길었다. 망했다." [망내인] 작가의 말 중에서,,,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던 작가의 말처럼 조판까지 신경써야했다는 [13.67]보다도 더 많은 분량인데, 정말 어느 한 곳 지루한 부분이 없고 잠시나마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있는 구간이 없다. 내일 이동시간이 많으니 내일 마저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열 번쯤 한 것 같은데 결국 멈추지 못해 다 읽고 말았다. 다 읽고 시계를 보니 이미 날짜가 바뀌었다. 망했구나,,, 찬호께이의 책을 다 저녁에 잡다니 내가 잘못했네 싶었다.
[13.67]을 읽고 한동안 독서 슬럼프가 왔었다. 이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어떤 책을 읽어도 비교가 되었기 때문인다. [망내인]도 그런 이유에서 읽는 것을 조금 미뤘었다. 독서 슬럼프도 두려웠지만 그보다는 '[13.67]만 못하네,,,]라는 생각이 들면 어쩌나,,하는 생각때문이었다. 다 읽고난 후 다른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이 작가와 동시대에 태어나 살고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