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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록
프리키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4년 1월
평점 :
"죽고 싶지 않으면, 죽여."
<국가생명연구소> 국가생명연구소에서 인간의 행동을 조종할 수 있는 'MCP(Mind Control Patch)'를 개발하는 일을 하고 있는 준수는 요즘 집보다 회사가 더 마음 편하다. 딸 연우가 유치원에서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아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늦은 시간에 퇴근해 지하철에서 그대로 잠이 들었던 준수에게 전화가 걸려오고, 전화 속 인물은 준수에게 죽고 싶지 않으면 같은 칸에 탄 사람을 죽이라고 지시한다.
"소네 케이스케.. 보다는 오다 마사쿠니..에 가까울 지도..??"
책을 읽으며 희한하게 '소네 케이스케'의 책보다는 얼마 전에 힘겹게 읽었던 '오다 마사쿠니'의 [화 : 재앙의 책]이 떠올랐다. 약간 순한 맛 [화] 같은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책을 다 읽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작가님이 좋아하는 소네 케이스케의 책이 [코]나 [열대야] 같은 느낌, 특히 [코]에 가까운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기승전결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는 게 아니라 일단 중후반부에 나올 법한 내용을 던져놓고, 그 이면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그런데 그 이면이 뭔가 좀 찜찜하고 뭔가 턱턱 걸리는 듯한 느낌.... 여기까지는 분명 소네 케이스케의 책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없지 않은데 아마 결말 때문에 [화]에 더 가깝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소네 케이스케의 책은 반전의 결말이 강렬한 한 방이 되든, 찜찜함을 증폭시키든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면, [기생록] 속 이야기들의 결말은 굳이 표현하자면 '닫힐 뻔했다..' 같은 느낌? 완전히 열린 것도 아니고, 완전히 닫힌 것도 아니고 '뭔가 있음직.. 하게' 끝이 난다.
"흥미로운 설정 + 적당히 불쾌한 전개 + 적당한 결말"
[화] 리뷰에서 "흥미로운 설정 + 불쾌한 전개 + 허무한 결말"이라는 표현을 했는데, [기생록]도 비슷하게 표현해 보자면 "흥미로운 설정 + 적당히 불쾌한 전개 + 적당한 결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각각의 이야기는 설정이 꽤나 기발하고 흥미를 자아낸다. 그리고 딱 과하지 않을 만큼만 불쾌해서 그런지 가독성도 꽤 좋은 편이다. 그리고 결말도 어느 정도는 '호오..' 하고 즐길 수 있다. 다만 전개와 결말보다는 설정 쪽이 확실히 매력적이라는 건 어찌 보면 웹소설의 특징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후킹'에 능하다..는 느낌?? 인터넷에서 어떤 이야기를 마주했을 때 이 이야기를 계속 이어서 읽을까, 말까..는 결국 초반에 결정되고, [기생록] 속 이야기들은 어느 이야기든 인터넷에서 초반을 읽었다면 분명 끝까지 이어서 읽어나가게 만들 힘이 있다. 만약 내가 서점에서 이 책의 앞부분을 읽었다면 뒷이야기가 궁금해서라도 책을 샀을 것 같고. 지난한 빌드 업을 거쳐 마지막에 한 방을 터뜨리는 게 여태까지의 소설이었다면, 초반에 시선을 사로잡아 어떻게든 끝까지 읽게 만드는 게 요즘의 소설일지도.. 라는 생각이 조금은 들기도 했다. 다만, 이왕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사로잡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긴 하지만.
"과히 불쾌하지 않은 기발한 상상력의 '컬렉션'"
호러, 스릴러, SF, 미스터리...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을 한 권에서 만날 수 있는 책, [기생록]. 300페이지 남짓한 볼륨에 여섯 편의 이야기라 한 편 한편 가볍게 읽을 수도 있고, 각각의 장르가 다르다 보니 비슷하게 느껴지는 이야기가 없어 앉은 자리에서 몇 편씩 읽기에도 좋은 책이다.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라면 취향에 맞는 게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개인적으로는 최근 호러소설에 많이 지쳤는데도 <이 안에 원귀가 있다>가 결말 직전까지는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게 신기하다) 과히 불쾌하지 않은 작가님의 기발한 상상력을 느껴보고 싶다면, 한 번쯤 손에 들어보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가 되어줄 듯.
작가님께 책만을 선물받아서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