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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 도쿄 하우스
마리 유키코 지음, 김현화 옮김 / 하빌리스 / 2023년 10월
평점 :
'G방송국'에서는 개국 60주년 특별 방송으로 지금으로부터 딱 60년 전, 그 당시의 생활을 그대로 체험하면 500만 엔을 주는 리얼리티 쇼를 기획한다. 방송국의 '입맛'에 맞는 일반인 가족을 두 팀 선정하고, 60년 전에는 중산층의 상징이었던, 실제로 그 당시에도 있었던 재개발을 앞둔 단지를 배경으로 촬영에 돌입한다. 처음에는 60년 전 생활에 익숙하지 않아 어려움이 있었지만 점점 그 생활에도 익숙해질 무렵, 단지 내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정확히 60년 전 그날, 그 단지 내 그 장소에서 똑같은 살인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데...
'1961 도쿄 하우스'는 리얼리티 쇼이다. 이 '리얼리티 쇼'라는 단어는 우리에게도 꽤 익숙한데, 소설을 읽으며 묘하게 이 단어가 계속 마음에 걸렸다. '리얼리티'는 현실이고 '쇼'는 다양한 의미를 지니겠지만 방송을 전제로 생각하면 '어떤 짜여진 방송'의 느낌이 강하다. 이 모순된 두 단어의 결합이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처음에는 단순히 60년 전의 생활을 체험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실제로 참가가 확정된 이후 이들에게는 직접적으로, 혹은 넌지시 어떤 역할, 혹은 그런 '이미지'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와카코'는 방송 관계자들로부터 '현모양처의 모습을 기대한다'라는 말을 듣고 고민하지만, 결국 카메라 앞에서는 현모양처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애쓰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60년 전 생활에 익숙해져 방송으로서의 재미가 부족하다고 생각될 무렵에는 좀 더 강한 압력과 함께 또 다른 행동에의 '의무'가 부여된다. 분명 참가한 가족들에게는 대본이 없지만, 이들에게는 '60년 전 생활에 대한 매뉴얼'이 주어지고, 간간이 '행동에 대한 매뉴얼'까지 주어지며 어디까지가 리얼이고, 어디까지가 쇼인지 경계조차 모호해진다. 누군가가 부여한 역할에 사람은 얼마나 몰입할 수 있는가. '해야 한다'는 상황 하에 놓였을 때 얼마나 쉽게 터부를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 이 소설이 가진 가장 섬뜩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소설 속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이러한 리얼리티 쇼 속 등장인물들의 행동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실제로 단지 내에서 현재 벌어진 살인 사건, 그리고 그 사건과 정말 '똑같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60년 전의 사건은 소설을 읽는 도중 절대 책에서 손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유인책이 된다. 유아등에 이끌린 불나방처럼 이러한 유인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는 결국 새벽 2시까지 이 책을 읽은 후에야 잠을 청할 수 있었다.(그러니 이 책은 낮에 손에 들기를 추천하고 싶다. 밤잠을 설치고 싶지 않다면) 그만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눈치채는 것이 쉽지 않았는데, 어찌 보면 상당히 작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이 설정을 작가는 그야말로 '방송'이라는 소재를 최대한으로 살리며 개연성 있는 흐름으로 이끌고 간다. 그럼에도 진실이 밝혀졌을 때 아주 약간의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었는데, 결국 모든 의문을 해소시켜주는 마무리는 소름 그 자체였다. 과연 마리 유키코는 마리 유키코구나, 하는 쓴웃음은 덤이었고.
설정도 흥미롭고, 이에 못지않게 전개도 흥미롭고, 대략적인 흐름은 알아냈다며 의기양양하려던 나의 뒤통수를 내려친 소설 [1961 도쿄 하우스]. 다소 과한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정말 그 상황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그래서 기분이 나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게 이런 -띠지의 표현을 빌리자면- '다크 미스터리'를 굳이 기분이 나빠질 걸 예상하면서도 자꾸 읽게 되는 이유가 아닐까. 같은 이유에서(?) 마리 유키코의 책이 국내에 더 꾸준히 출간되어서, 다크 미스터리에 대한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기를 바라보며.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