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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지에서 생긴 일
마거릿 케네디 지음, 박경희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7월
평점 :
갑작스레 절벽 한 쪽이 크게 무너진다. 그로 인해 몇 마일 떨어진 곳에 있던 저택, 지금은 '펜디잭 호텔'로 운영 중이며 총 스물 네 명이 머무르고 있었던 그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시각, 호텔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목숨을 잃었다. 생존자들은 충격으로 횡설수설 해서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시간을 일주일 전으로 돌려 사고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 보기로 한다.
"난 순교자인 게 좋았어요. (중략) 자신을 희생하며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던 거예요."
띠지의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한 단어 덕분에 나는 당연히(?) 이 호텔에 묻힌 사람들 중에는 단순히 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의 피해자도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며 읽어나갔는데 이 소설은 그런 류의 추리소설은 '결코' 아니었다. 어찌 보면 추리소설이라고 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주 '일상적으로' 흘러간다. 휴가 동안 호텔을 찾은 가족들, 그리고 그 호텔을 운영하는 가족들과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 역시 속마음은 어떻든 간에 평범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며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당시 영국 사회의 미묘한 계급의 사람들이 여럿 모이다 보니 아무리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려고 해도 그렇게 단순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마음 속의 부정적인 감정, 평소와는 다른 공간에서 평소와는 다르게 오가는 상호 작용은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자리하고 있었을 균열을 때로는 키우고, 때로는 메워간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모여서 결국 이들의 생사까지 갈라놓게 된다.
"못된 사람은 몇 명뿐이지만, 그들이 나머지 사람들을 지옥으로 몰아가고도 남아요."
사실 이 책은 종교적인 이야기를 포함해 은유적이고 비유적인 표현도 많고, 난해하거나 심오한 부분도 없지 않아서 가볍게 술술 읽히는 책이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어떤 '사건'이 벌어지기를 기대하며 손에 든, 평소 영미 스릴러의 장황함을 견디지 못하는 내가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에 수월한 책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그들 자신은 알지 못했지만 생사의 갈림길에서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각자의 선택을 만들어 낸 것이 모두와의 상호작용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꽤나 흥미로운 결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등장인물이 상당히 많지만 의외로 복잡하지 않았고, 제법 무거운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가볍고 유쾌한 부분도 없지 않은 희한한 책. 그대로 연극 무대에 올리면 꽤나 흥미로운 연극이, 한국에서 드라마로 만들면 꽤나 화제성 있는 막장 드라마가 되어줄 것 같은 독특한 매력을 가진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책만을 협찬받아 읽고,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