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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가 정상이라면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은모 옮김 / 작가정신 / 2019년 12월
평점 :
국내에는 [엠브리오 기담] 이후 무려 5년만에 야마시로 아사코의 책이 -우여곡절 끝에(?)- 출간되었다.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다시피 야마시로 아사코는 '오쓰이치'의 다른 필명으로 호러, 기담 등의 이야기를 쓴다. 그렇지만 -우연히 앞선 리뷰에서도 언급했듯이- 호러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탓에 [엠브리오 기담]은 다소 내 취향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 책은 호러적인 느낌을 가진 미스터리의 색채도 있고 무엇보다 제목이 묘하게 매력적이라서 꽤 빠르게 읽게 되었다.
단편집인 [내 머리가 정상이라면]은 채 300페이지가 되지 않는 볼륨에도 무려 여덟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출판사의 책소개를 빌리자면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감정인 공포와 슬픔을 '상실'과 '재생'이라는 주제에서 바라본 소설"이라고 한다. 실제로 여덟 편의 이야기는 그 분위기에는 차이가 있을 지라도 결을 같이 한다고 해야할까 묘하게 비슷한 느낌이 있다. 상당히 잔혹한 이야기들이 있음 불구하고 결국은 한 줄기 희망이라도 비추고 있음을 느낄 수 있는 소설들이다. 흔히 오쓰이치가 아주 '다크'한 소설과 이와 상반된 '퓨어'한 작품들을 썼는데 이 책은 다크에 물을 조금 타고, 퓨어에 물을 조금 타서 섞었는데 완전히 섞이지는 않은 채 묘하게 어우러진 결과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매우 다크하지도 퓨어하지도 않지만, 때로는 잔혹하고 섬뜩하지만 그래도 묘하게 잔잔하고 따뜻하다.
각각의 이야기는 호러 소설답게 기묘한 설정이 있다. 예를 들면 평온해야 할 나의 집에 낯선 유령(?)이 계속 나타난다든지, 내가 열 달을 품고 낳은 소중한 내 딸이 내가 과거에 따돌렸던 소녀와 그 모습과 행동이 너무 똑같다든지, 죽은 내 아들의 목소리가 건전지도 들어있지 않은 무전기에서 나온다든지,, 등장인물들은 '내가 어딘가 이상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 머리가 정상이었다면 이러한 일들이 내게 오지 않았겠지'라는 식으로 기묘한 현상을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기묘한 현상은 무언가를 '상실'한 이들에게 하나의 위로가 된다.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기에 만날 수 있었던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호러라고는 하지만 그 기묘한 현상이 결국 치유가 되는 이야기. 내가 생각한 '야마시로 아사코' 작품의 느낌과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오쓰이치'의 작품과 비슷한 이야기. 짧은 분량이 아쉽긴 하지만 오랜만에 오쓰이치의 매력을 잔잔하게 느낄 수 있는 즐거운 작품이었다.

덧붙임. 이 책에 실린 단편 '무전기'는 작년에 출간된 앤솔로지 -라고는 해도 결국은 한 작가의 작품인- [메리 수를 죽이고]에 실린 단편 '트랜시버'와 같은 작품이다.
덧붙임2. 책을 다 읽고 표지를 보면 내용과 참 잘 어우러지는 느낌있는 표지라는 생각이 든다. 문득 일본의 표지는 어땠을까,,하고 검색해봤는데 '읭? 이게 진짜 리얼 동일한 책의 표지!?'하는 느낌이 들었다. 역시 국내 책이 표지를 예쁘게 잘 만든다고 다시 한 번 감탄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