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과 표지만 봐서는 요즘 유행하는 라이트 한 판타지 소설일 것만 같은 소설
[우리의 세계가 끝날 무렵]. 그렇지만 띠지의 책 소개를 보면 의외로(?) 미스터리 소설이다. 사실 아무리 봐도 라이트 한 미스터리 소설로
보이는데 위즈덤하우스에서 나왔다는 것이 신기하는 생각이 들었다.(아무래도 출판사가 가진 이미지라는 것이 있으니,,)

주인공이자 화자인 '와타루'는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해 흔히 말하는
'히키코모리'가 된 중학생 소년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방에서 보내던 그는 우연히 어느 고등학생 작가의 소설을 보고 이 정도는 자신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연재 사이트 '모바일 시티'에 소설을 올리게 된다. <열네 살 은둔형 외톨이가 쓴 호러 미스터리>라는 자극적인 홍보
문구 덕분인지 그의 소설 [룰 오브 룰]은 상상 이상의 인기를 끌게 된다. 그러던 중 [룰 오브 룰]의 연재를 중단하라는 협박성 메시지와
'살.인.자'라는 섬뜩한 전화를 받게 되고 심지어 그의 소설을 모방한 듯한 살인 미수 사건까지 발생하며 그는 혼란에 빠지게
된다.
사실 나는 첫째로 호러를 아주 좋아하는 편은 아니고, 둘째로 라이트노벨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사회파 미스터리처럼 묵직한 책을 좋아하다보니 가벼운 일상 미스터리를 다루는 -판타지한 라이트노벨은 논외로 한다. 아예
읽은 적이 없어서,,ㅠ- 라이트노벨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왕 시간을 들여 읽는다면 좀 더 오랜 여운을 남기고 생각할 거리가
있는 책을 읽고 싶어서, 가볍기만 한 라이트노벨에는 편견이 좀 있었다. 또 이 책의 소재인 '픽션을 모방한 살인사건' 역시 미스터리에서는 드물지
않아서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책은 400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가벼운 분량과 중학생에 불과한
주인공, 소설 속 소설인 [룰 오브 룰]의 중2병스러운 스타일까지 굉장히 라이트노벨의 느낌을 주는 것과 동시에 주인공 소년이 안고 있는 트라우마
-과거 자신의 눈 앞에서 친구가 투신을 한 사건- 와 더불어 집단따돌림이라든지 은둔형 외톨이, 그리고 픽션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한 요즘 세대의
모습까지 투영함으로써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어서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출판사의
작가 소개를 보면 2009년에 데뷔했다고 하는데 띠지에서는 '완벽한 미스터리를 구사하는 신예 작가의 탄생!'이라고 소개하고 있어 다소 읭?스러운
느낌이,,- 요즘 세대 아이들의 생각을 정말 잘 알고 있는 듯한 표현력에 여러 차례 감탄했다.
"밖에 한 발짝 내디딘 순간부터 등에 꽂힌 보이지 않는 플러그가 쑥 빠져서
체력과 기력이 떨어져가는 기분이었다. (중략) 다른 사람들 등에 꽂힌 플러그는 내 것보다 코드가 아주 긴 게 틀림없다. 아니면 무선랜으로 전파를
날리든지."
정말 요즘 아이들이 할 법한 생각이라서 웃음이 나는 것과 동시에 '와, 정말 그렇네' 하고 공감이 되었다. 누구나 비슷한 생각은
할 수 있지만 이렇게 공감이 되게 글로 쓰는 것은 정말 다른 문제라서, 이런 표현들을 보며 책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초반에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며 몰입하게 하지만 중반 이후 다소 힘이 떨어지는 느낌이 있고,
결말까지 이어지는 과정의 개연성이 조금 부족한 듯하고 무엇보다 의외의 결말에 대해 독자의 공감까지 충분히 이끌어내지 못한 것 같아 조금 아쉬움이
있다. 등장인물이 '그러한 행동을 하기까지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고 느껴질 만큼의 context가 있지 않아서 인물의 행동 변화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는 것도 아쉬웠다. 그렇지만 자잘한 복선을 깔끔하게 회수하는 것과 무엇보다 주인공이 겪은 트라우마에 대해 그 나이의 소년이 가질 법한
생각, 행동이 정말 그 나이대 소년의 행동을 보고 그대로 묘사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생생하게 실감났던 것이 좋았다. 미스터리적인 면보다는
성장소설로서의 면이 더 돋보이지 않았나 싶다.
라이트하지만 마냥 라이트하지만은 않았던 소설 [우리의 세계가 끝날 무렵].(여담이지만 끝까지 이 소설의 제목은 외워지지 않았다고
한다.ㅠ_ㅠ) 작가가 묘사하는 소년 내면의 모습을 보다보면 이 작가가 그리는 성인의 내면의 모습은 어떨지, 더 나아가 아주 묵직한 울림이 있는
소설은 또 어떨지 궁금해진다. 앞으로 작가의 다양한 소설을 국내에서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