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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미션 - 죽어야 하는 남자들
야쿠마루 가쿠 지음, 민경욱 옮김 / 크로스로드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야쿠마루 가쿠의 국내 최신작 [데스미션]. 출간도 되기 전에 운 좋게 출판사에서 가제본을 받아서 읽게 되었다. 야쿠마루 가쿠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소년법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가 연상되는데 이번 책은 소재가 좀 독특하다. 죽음을 앞둔 두 남자의 대결이랄까.
데이 트레이더로 성공해 평생 쓰고도 남을 자산을 가지게 된 '사카키'는 자신이 말기 위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평소 자신의 깊은 욕망이었던 살인을 실행에 옮기기로 한다. 한편 평생을 형사로 살아온 '아오이' 역시 자신이 말기 위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자신의 남은 시간을 여성 연쇄 교살 사건의 범인을 잡는데 쓰고자 한다. 같은 병으로 죽음을 앞두고 있는 두 남자가 자신의 한정된 시간을 정반대의 일에 쓰는 이야기. 과연 신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
일본 제목은 [死命]이었다고 하는데 역시 한글로 적으면 '사명'으로 전혀 다른 뜻의 단어가 되기 때문에 제목을 바꾼 듯하다. 제목처럼 죽음을 앞두고 각자 클리어하고자 하는 미션이 있는데 범인인 사카키는 한 명이라도 더 죽여서 그 때의 희열을 맛보고 싶어하고, 아오이는 그런 범인을 잡고 싶어한다. 여기에 사카키가 첫사랑이면서 동시에 사카키를 보며 어린 시절의 사건에 대한 -그리고 아마도 사카키가 여성을 죽이고 싶다는 욕망을 품게 된 계기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스미노'와 갓 형사가 되었지만 아직은 미숙하기만 한, 그렇지만 아오이와 파트너를 이뤄 사건을 수사하며 점차 성장해나가는 '야베' 등 개성 강한 인물들이 등장하며 사건이 흥미롭게 전개됨과 동시에 과거의 사건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사카키는 살인을 저지른 것에 대해 초반에는 증거가 남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어차피 6개월도 채 살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거리낌이 없고 체포되어도 사형을 당하기 전에 죽을 거라며 오로지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런 그에게 단 한 가지 위안이 되는 것이 바로 시한부인 자신의 옆에 있어주는 스미노의 존재이다. 스미노에게 자신이 살인범이라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그는 점차 증거를 인멸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만 봤을 때 이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을 추적하고 검거하는 것은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 보였다. 그렇지만 자신의 죽음도 불사한 아오이와 아직 형사로서는 부족하지만 나름의 감과 끈기로 아오이의 부족한 부분 -예를 들자면 점차 떨어지는 체력- 을 보완하는 야베의 케미로 점차 범인에게 가까워지는 과정은 다소 작위적인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흥미진진하다.
소설은 초반에 이미 범인을 드러낸 채 전개되기 때문에 흔히 추리소설에서 가장 큰 희열을 주는 '누가 범인이며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밝히는 부분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가 없다. 거하게 뒤통수를 맞는 카타르시스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있는 두 주인공이 과연 자신이 죽음에 이르기 전에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긴박감은 마치 내가 등장인물을 직접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정도로 대단하다. 최후의 최후까지 어떻게 될지 모를 긴박감 속에 책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죽음 자체가 두려운 게 아니다.
모두 죽기 직전 자신의 인생이라는 거울을 보게 되는 일이 두려운 것이다."
그렇지만 다소 아쉬운 감이 들기도 한다. 약 400페이지 가량의 분량으로 아주 적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내 스미노가 간직하고 있었던, 그리고 사카키의 잃어버린 기억 속의 사건이 다뤄지는 볼륨이 너무 아쉬웠다.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된 시점, 스미노가 사카키를 떠날 수밖에 없었고 사카키가 여성을 죽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게 된 계기치고는 조금 부족하지 않았을까,, 책을 읽는 내내 궁금했는데 조금 허무한 느낌이었다.(물론 계기 자체는 끔찍하지만,,)
그럼에도 [데스미션]에 만족한 것은 죽음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죄책감도 없고 처벌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뻔뻔한 범인에게 과연 어떤 처벌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결말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많은 추리소설들이 범인이 범죄를 저지른 계기에 대해 과거의 안타까운 사건으로 인해 살의를 품고 복수하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등, 그래서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기도 하고, 피해자 역시 동시에 가해자이기도 한 안타까운 상황을 그리는데 반해 이렇게까지 감정이입이 안 되는 범인도 드물었기 때문에 가차없는 결말이 통쾌하게 느껴졌다.
볼륨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범인이 누구이고 트릭이 어떻게 하는 부분을 완전히 배제한 채로 이만큼 흥미진진하게 진행되었다는 것에 역시 야쿠마루 가쿠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죄]에 이어 연달아 [데스미션]을 읽어서 그런지 또 야쿠마루 가쿠의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에 출간된 야쿠마루 가쿠의 책은 이미 다 읽었기 때문에 조만간 또 새로운 책으로 오래오래 생각할 거리를 남기는 특유의 매력에 빠지길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