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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왕이 온다 ㅣ 히가 자매 시리즈
사와무라 이치 지음, 이선희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10월
평점 :
"딩동. 초인종이 울린다.
대답하면 안 된다. 문을 열어줘도 안 된다.
절대, 안으로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된다.
...... 그것이 온다."
최근에 호러 작품들을 여러 편 읽었는데, 아무래도 오롯이 '호러'만으로 이루어진 책은 나에게는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 '이러이러한 알 수 없는 일이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알 수 없는 존재로 인한 것이지!!!' 라고 하는 결말은 다소 개연성이 없더라도 '그런가보다,,'하게 만들어주기는 하지만 어쩐지 명쾌하게 납득하기에는 조금 부족한 느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기왕이 온다]의 띠지 속 "제22회 일본 호러소설대상 대상 수상작"이라는 문구만으로는 '과연 재미가 있을까,,'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심사위원 중 '미야베 미유키'가 있는 것을 보고 결국 호기심에 못 이겨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응?)
책은 총 세 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장의 소제목이 자못 의미심장하다. '제1장 방문자', '제2장 소유자', '제3장 제삼자'이다. 각 장은 각기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전개가 되는데, 첫 장의 시작부터 긴박함이 몰려온다. 긴박함이 절정에 달한 시작에서 잠시 시간을 돌려 첫 장의 화자인 히데키가 '보기왕'을 처음 만났던 초등학교 6학년 때로 돌아가면 외할머니 댁에서 할아버지와 단 둘이 있던 히데키는 누군가 차례로 가족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그만 대답하고 만다.
"돌아가!"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의 뜻밖에 일갈에 상황은 일단락되고, 무섭기는 해도 이 정도면 단순한 헤프닝으로 넘길 수 있었을 텐데 시간이 흘러흘러 '보기왕'은 가나라는 여성과 결혼하고, 곧 딸의 출산을 앞둔 현재의 히데키의 삶에 강한 바람을 일으킨다. 육아에 관심이 많은 좋은 아빠이자 아내를 이해하는 자상한 남편인 히데키는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단순히 1장만의 줄거리를 적어보았지만 이것만으로는 사실 이 책이 가진 매력을 단 1/10도 설명할 수 없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조여오는 공포, 현실세계에 있어서는 안될 법한 기괴한 존재가 평범하고 행복하게만 보이는 가족을 한순간에 어떻게 바꿔놓는지, 같은 장면을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그 상황이 얼마나 다르게 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각 이야기마다 얼마나 충격을 받을 수 있는지,,를 아무리 말해도 책을 읽기 전에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굳이 숨기려는 것은 아니고 인터넷상에도 정보가 많이 떠돌겠지만 그럼에도 2,3장의 화자를 모르는 채 읽는다면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엄청난 건 부르지 않으면 안 올 걸세."
이 책이 내가 단순한 호러 이상의 매력이 있었던 것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책 속에서 나름대로 '보기왕'이라는 초자연적인 존재를 납득이 가능한 수준까지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단순히 '전승이니까', '원래 그래왔으니까'가 아니라는 데서, 그리고 그 초자연적인 존재에서 묘하게 현실감을 느꼈을 때 마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것 같은 즐거움이(단지 즐거움이라고 표현하기에는 가슴이 아리지만) 찾아왔다. 그리고 또 하나는 '보기왕' 외에도 상황을 반전시키는 요소들이 있다는 점이다.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초자연적인 존재 앞에서 드러나는 본성이랄까, 맨얼굴이랄까,, 암튼 꽤 적나라했다.
"거기서부터는 제 일이니까요."
어린 시절 우리도 흔하게 들었던 '할머니의 무서운 이야기 보따리'처럼 어린 시절에나 통할 법한 (우리나라로 치면 망태할아버지쯤 되려나?) 단순한 괴담에서 목숨을 위협하는 무시무시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던 그 과정, 그리고 초자연적인 존재의 행위라고 하기에는 너무 영리하고 섬뜩해서 더욱 무서운 유혹(?)까지,, 보기 드물게 무섭고, 중간중간 소름이 돋았고, 지하철에서 나도 모르게 '헉!'하고 소리를 낼 정도였고, 책장을 덮으며 호러답지 않게(?) 모든 퍼즐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쾌감까지. 단연 호러 이상의 호러라고 평할 수 밖에 없는 책 [보기왕이 온다]. 사와무라 이치의 데뷔작이라는 것에 또 한 번 감탄하며, 작가의 다른 책을 다시 만날 날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