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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평점 :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제목만 보면 이보다 더 로맨틱할 수 없는, 이보다 더 긍정적인 단어의 조합일 수 없는, 마치 달달한 연애소설일 것만 같은 이 책은,, 이 책은 도대체 무엇이라고 표현하면 좋을 것인가,, 대만의 여성작가 린이한이 불과 스물 여섯의 나이에 발표했고,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그로부터 두 달 후 그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작가의 부모는 이 책이 린이한의 자전적인 소설이라는 사실을 밝힌다.
소설의 주인공 팡쓰치는 유복한 가정의 외동딸이고, 영혼의 쌍둥이와 같은 친구 류이팅이 있고, 자신의 멘토와도 같은 이원이 있다. 행복하게만 보이는 팡쓰치에게 문학 선생님인 리궈화가 접근하며, 그녀의 삶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변한다. 사랑이라는 거짓된 이름 하에 5년이라는 시간 동안 팡쓰치를 수도 없이 성폭행 한 리궈화. 그러한 관계가 잘못이지 않기 위해 자신 역시 리궈화를 사랑하려 하고, 사랑하고 있다고 믿으며 긴긴 시간을 버텨온 팡쓰치. 5년이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의 가족도, 친구도, 멘토도 도움이 되지 못했고 결국은 팡쓰치의 삶은 비극으로 점철된다.
한 권의 책을 약 2주에 걸쳐서 읽었다. 이 책의 분량은 작가 후기 등을 더해도 350페이지 남짓으로 그리 많지 않다. 그럼에도 한 번에 많은 분량을 읽기 힘들어 꽤 오랜 시간을 들여야만 했다. 여성작가다운 섬세한 필체와 아름답고도 유려한 문체가 팡쓰치의 상처입으면서도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과 그에 반대되는 리궈화의 자기 방어적인 뱀같은 표현력을 동시에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보다 더 직접적일 수 없는 외설적인 표현과 이보다 더 은유적일 수 없는 섬세하게 숨기는 표현까지,, 왜 이런 폭력적인 행위를 이렇게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내는가,,,라는 생각을 참 여러 번 했는데, 그로 인해 상황이 더 비극적으로 도드라지는 것 같았다.
팡쓰치의 고통스러운 5년의 시간과 그로 인해 달라진 그녀의 삶을 보며, 또 책 속 표현으로는 팡쓰치와 영혼의 쌍둥이라고 하는 류이팅보다 오히려 그녀와 너무도 닮은 삶을 좀 더 일찍 살았던, 그래서 더 그녀와 쌍둥이처럼 닮은 이원의 현재를 보며,, 딱 한 발자국만 다르게 디뎓었도 팡쓰치의 삶이 한 번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라는 안타까움이 밀려왔다. 그녀의 여린 손을 잡아주기에는 가족도, 친구도, 멘토도, 사회의 시선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책을 읽으며 너무도 뻔뻔한 리궈화의 태도와 말에 정말 여러 차례 분노했다. 최근 사회적으로도 이슈였던 '미투'처럼 가해자들은 겉으로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고, 너무도 평범하게 혹은 너무도 행복하게, 심지어는 굉장히 온화하고 가정적인 사람의 가면을 쓰고 있다. 한꺼풀만 벗겨내면 추악한 모습이 드러나지만 그들은 너무도 능숙하게 자신까지 포함한 모두를 속이고 있다. 특히 리궈화가 문학 선생님이라는 자신의 특성을 살려 문학작품들에 비유하며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려고 할 때, 또 소녀가 가진 죄책감과 피해자를 매도하는 사회적인 시선으로 견고한 방어막을 치고 끝까지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모습을 보며,, 팡쓰치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어야 했는지가 다시 한 번 가슴아프게 느껴졌다. 처음에 책 소개글을 읽었을 때 왜 자신의 아픈 상처를 도려내며 글을 써야한 했는가,, 왜 자신과 같은 상처를 입은 주인공 팡쓰치를 그려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는데, 책을 다 읽고난 후 내가 감히 그녀가 왜 책을 썼는지 이해한다거나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마음 깊은 곳에 어렴풋이 '그럴 수밖에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책장을 덮으며 책의 띠지에 있는 문구가 내 마음을 울린다. "죽음을 향하며, 그러나 살기 위해 써낸 걸작!" 작가 린이한이 주인공 팡쓰치에게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다면 린이한 역시 누구의 손도 잡지 못한 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만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안타깝고 슬프게만 느껴지는 작가 후기 속 그녀의 메시지가 상처입은 누군가에게는 조심스럽게 내민 여린 손길처럼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천사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상처받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바로 너야. 이 세상에 너보다 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어. 너를 솜사탕 백 개만큼 포근하게 안아줄게."
"고마워. 비록 내가 이 모든 걸 영영 놓쳐버렸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