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풍백화점 붕괴를 뉴스를 접한 건 중학생이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 당시 붕괴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세월호 최근 광주 붕괴 사고까지 시간, 장소와 형태만 다를 뿐 끊임없이 막을 수 있었던 사고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안전에 대한 불감증, 사람 목숨의 귀함을 모르는 사람, 돈이 오가는 뒷거래들이 원인이 아닐까 싶다. 나의 아저씨에서 이선균은 건축구조기술사로 안전제일주의자로 까다롭게 점검을 하는 모습에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이선균은 드라마에서 평가된 것처럼 ‘융통성이 없던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직업의식이 투철한 사람이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그는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누군가의 가족의 행복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현 사회는 기본을 지키고 올바르게 양심에 어긋나지 않는 사람에게 칭찬 대신 비난한다.
사회적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그것에 관계된 누군가가 ‘이건 아니다’. ‘제대로 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가 있었더라면 이 책의 작가처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고통스럽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이 커가는 과정을 지켜볼 수 없고,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만질 수 없는 고통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정도쯤이야.’하는 안일한 생각이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지고 가족과의 생이별하는 일들이 벌어진다. 그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작가는 삼풍백화점 생존자로서 딴지일보의 <세월호가 지겹다는 당신에게 삼풍의 생존자가 말한다>라는 한 편의 글로 시작되어 2년 만에 책으로 나왔다. 아픈 과거를 끄집어 내는 시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 책을 통해 작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과 아픔을 겪지 않은 제3삼 자는 침묵하기를 원한다고 말한다. 고통을 겪지 않은 이들이 당사자의 아픔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아픔을 겪지 않은 자가 아픔을 겪은 당사자들에게 위로를 한다고 위로가 될까?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이 아파하는 동안 조용히 있어주는 것이다.
이 사회가 바르게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하고, 사람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사람이 영웅으로 인정받길 원한다.
끝으로 작가님에게 말하고 싶다. 아버지의 자살, 가난, 학대, 생존자로서 살아가는 시간들이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힘들었지만, ‘살아줘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2. 마음에 남는 글귀
83~84쪽
내가 겪은 사고 이후의 고통을 생생하게 잘 적어놓으면, 이를 모르고 살던 수많은 사람이 참사가 주는 비탄이 어떤 것인지 공감할 테고 그러면 건물이 되었든 배가 되었든 그 일을 하는 엔지니어들은 설계도면을 한 번이라도 더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레 시행사와 시공사도 안전 규정을 준수하고, 감리기관은 꼼꼼하게 관리 감독할 것이며, 해당 공무원은 인허가 기준을 확실히 세우고, 국가기관은 재난 대처방안에 대해 더욱더 많은 연구를 해 대응방안을 낼 테고, 사법부는 선례로 남을 피의자들의 판결을 지금보다 더 신중한 자세로 내릴 테니까. 그렇다면 정말 앞으로 세상이 조금이라도 안전해질 테니까. 잘하면 이를 통해 시민사회는 돈이 된다 해도 나쁜 일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사람이고, 이 세상에 작업자의 목숨보다 비싼 기계는 없다는 것과, 사랑하는 이의 목숨은 돈 얼마에 결코 등가교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테니까.
130쪽
그렇다. 내가 쓰고 기록하는 이런 사회적 참사 이야기 역시 그날 운 좋게 내가 마시지 않았던 폭탄주처
럼 복불복 벌칙 같은 일이라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다음에는 내 차례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다. 사회적 참사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전혀 특별한 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오늘 아침 등굣길에 만났던 학생이며, 어제 퇴근길에 마주쳤던 우리동네 이웃이다.
이쯤에서 한 가지 또 잊지 말아야 할 사실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이 흘린 붉은 피로 진보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회적 참사 이후에는 관련 법들이 개정된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정부는 기어이 소를 잃어야만 외양간을 고쳤다.
133쪽
나는 기성세대가 다음 세대를 위해 돈으로 가득 찬 국고를 물려 주는 것보다 이웃과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길러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순간의 쾌락이나 기쁨은 돈으로 살있지만 행복한 마음만큼은 사기 어렵다.
195~196쪽
일부 보수단체에서는 광화문에 나앉은 세월호 사고 유족들에게 아이들의 죽음을 빌미로 자식 장사한다고도 했다.
돈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나는 이런 종류의 불행과 맞바꿀 만한 보상금이 세상에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생각보다 돈이 주는 위로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당시 거액의 보상금을 받았지만, 그 돈이 이후의 삶에 크게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그런 일을 피하고 그 돈을 안 받을 수 있다면, 아니, 받은 보상금의 열 배를 주고라도 그 일을 피할 수만 있다면 열 번이고 천 번이고 기꺼이 그렇게 할 것이다.
197쪽
단지 보기에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어느 날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가 대체 왜 슬픔과 분노를 표현하기를 참아야 하는지도 묻고 또 묻고 싶다.
그러니까 제발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거든 차라리 침묵하자, 아니지, 자식의 목숨을 그 알량한 보상금 몇 몇 푼과 맞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면 떠들자. 그런 사람이라면 떠들어도 된다. 그도 아니라면 제발 부탁인데 그 입 닫자. 그것이 인간이 인간에게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이자 예의다.
231쪽
사회적 참사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모든 비극은 그 일에 연관된 사람들 다수의 유기적인 공조로 발생한다. 사고가 생기려면 누군가는 침묵해야 하고, 누군가는 보고도 못 본 척 해야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미루어야 하고, 누군가는 다른 사람이 해결해주리라 믿고 방관해야 한다. 그래야 결국 일이 터진다. 그러니 이 많은 사람들 중 한 사람이라도 용기를 내어 그 일을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 더는 그런 끔찍한 뉴스를 덜 보고 살 수 있으니까.
이 책은 출판사로 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