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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힘든 사람들 - 돌봄, 의존 그리고 지켜져야 할 우리의 일상에 대하여
도하타 가이토 지음, 김영현 옮김 / 다다서재 / 2025년 7월
평점 :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사회복지현장에서 일한 사람이 읽으면 완전 공감 가는 책이다. 나는 막 현장에 뛰어든 신입이 읽는다면 시행착오를 덜 겪을 것 같아 추천하고 싶다.
나는 이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그냥 있기’, ‘의존 노동’, ‘눈사람의 비유’이다.
‘그냥 있기’는 나 역시 대상자들에게 가장 많이 한 실수이다. 나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제공하기에 노력했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일하고 있다는 기준으로 삼았다. 내가 제공하는 프로그램에 대상자들이 참여하기를 바랐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발달장애와 정신장애가 있는 한 분과 푸드코트에 간 일이 있었다. 나는 재활이라는 명목하에 직접 메뉴를 선택하고 계산하는 미션을 그에게 주었다. 그는 거부했고 나는 계속 권유했다. 그는 사회복귀도 싫고 지금처럼 시설에서 살 생각이니 선생님인 내가 해 주길 바랐다. 그의 꿈은 가만히 누워있다가 식사 시간에 식사하는 것이다. 그의 요구인 ‘그냥 있기’를 용납하지 않고 끊임없이 시설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 참여하기를 강요했던 기억이 난다.
‘의존 노동’ 부분에 작가의 주장에 나 역시 공감한다. 시설에서 일하다 보면 시설장애인에게 도움을 받기도 하고 동료에게 도움받기도 한다. 한때는 시설장애인에게 도움받는 일은 사회복지사로서 책임을 다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내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이직한 직장은 첫 직장에 비해 오래 다니지 못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내가 왜 오래 다니지 못했는지를 알았다. 첫 직장에서는 동료들에게 완전히 의존 노동을 했지만, 이직한 직장에서는 내가 허용치 않았음을 깨달았다. 어울리지 못한 것이 의존 노동을 배척했다. 나의 가치를 드려 내고 싶었음을 인정한다.
마지막 눈사람 사례에서 많은 생각이 오갔다. 눈사람은 녹으면서도 길거리에 있고 싶어 할 수 있지만 책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눈사람이 녹을까 봐 냉동실로 보낸 인물이다. 길거리에 있길 원하면 얼음으로 안 녹게 하는 방법은 생각지도 않았다. 세상은 눈사람이 안 녹게 냉동실로 보내는 것이 기준이고, 어울려 사는 일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그건 정답이 될 수 없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사회복지사는 눈사람의 니즈를 알아차리고 움직이어야 한다. 나 역시 니즈보다는 세상의 기준에 따라 실수를 수차례 반복했음을 인정한다.
나는 자립이라는 단어를 싫어한다. 그 대신 연립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사람은 함께 어울려 살고 그냥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자립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연립을 더 선호하는 것일 수 있다. 증명만이 사람의 가치가 아니라 존재 자체가 가치가 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인상에 남는 구절
13쪽
'그저, 있을, 뿐'인 것은 허용되지 않고, 무언가 생산성을 발휘해 뛰어난 결과를 계속 보여줘야 하는 사회. 그럴 수 있는 사람만 살아남고, 그러지 못하면 있을 자리를 빼앗기는 사회. 그런 경향은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필연적 결과지만, 한국이 걸어 온 역사는 그리 경향을 더욱 뚜렷하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회에서는 결국 모두가 살아가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두 다리로 설 수 없는 때가 찾아 오게 마련입니다. 지금 오로지 자기의 두 다리로 서 있다고 생 각하는 사람에게도 실은 그 이면에서 밑받침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존재할 것입니다.
'있기'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있기'를 밑발침하는 돌봄을 경시하는 사회란, 모든 사람이 흔들거리는 지면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서 있어야 하는 위험한 장소입니다.
129쪽
사람은 진정으로 의존할 때 자신이 의존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295쪽
앞서 언급했듯 상처 주지 않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의 욕구란 천차만별이니까요. 다시 눈사람을 예로 들면, 녹기 싫다는 욕구만 있을 때는 얼음 등으로 냉기를 공급해주면 충분한 돌봄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눈사람이 콧대가 높아져서 "살짝 녹아서 날씬해지면 좋겠어."라고 요구하면 그때는 헤어드라이어라도 동원해야겠지요.
즉, 돌봄이란 그때그때 욕구에 대응하며 상대방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의존을 받아주는 것이 돌봄입니다. 그래서 돌봄이란 기본적으로 개체가 변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이 변하는 것입니다. '눈사람 씨. 그대로 있어도 돼요. 당신을 위해 제가 얼음을 구해 올게요.' 하는 느낌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