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조각 난 아이는 어떻게 자라는가 - 교육이 답이라는 거짓말
롭 헨더슨 지음, 김은지 옮김 / 푸른숲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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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이를 키운다는 건 한 사회의 구성원을 키우는 일이다. 올바른 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양육자가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로버트 킴 헨더슨은 한국인 어머니와 이별, 위탁가정에서 전전하다가 입양이 된다. 입양된 가정에서의 삶도 순탄치 않다. 부모의 이혼 새엄마의 동성 결혼과 또 이별...


 주인공은 일생은 헤어짐에 늘 불안함 삶이었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술로 마약으로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다가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그러나 로버트 킴 헨더슨은 군대를 가고, 명문 대학을 가는 등 삶을 잘 살아보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지금의 그가 있다.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는 그를 응원하고 싶다.


 안정적인 양육을 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 화가 난다. 책임감이 없는 그들은 부모가 될 자격이 있을까? 어른의 무책임이 어린 로버트 킴 헨더슨이 외로움과 불안감을 겪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가혹했다. 피해를 준 가해자(부모)는 자신이 잘못하였더라도 부모로서 대접받고자 한다. 나는 그런 부모라면 자신이 더는 상처받지 않도록 경계 설정이 필요하며 키워준 것에 대한 부채감도 가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자식에게 잘못을 하더라도 사과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원한다면 사과가 필요하다고 본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하므로 관계를 개선할 기회가 있지만, 부모는 외면한다.


 자식과 부모 사이 간에 한쪽에서 양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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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은 다 거짓이야
대니얼 나예리 지음, 김래경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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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을 떠나 미국의 오클라호마에서 정착한 어느 가족의 이야기가 ‘호스로’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시선으로 펼쳐진다. 난 이 소설을 읽고 <안네의 일기>가 생각났다. 상황은 다르지만, 어른들로 인해 아이가 겪는 슬픔이 오버랩되었다.


 이란, 난민에 관한 것을 접해보지 않았고, 소설에서 신화 이야기가 섞여 있어 읽기가 조금 어려웠다. 이해하고자 앞장으로 다시 넘겨 읽기를 반복해서 가독성도 떨어졌다.


 나는 이 소설에서 줄거리보다는 ‘호스로’의 감정을 중심으로 읽었다. 여기에 나오는 문체는 담담하게 썼지만, 아이가 느끼는 슬픔은 오롯이 느껴졌다. 호스로는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친아빠에게 잘 보이고자 멋진 다이빙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아빠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러나 아이는 그 슬픈 감정을 참아 낸다. 엄마가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호스로는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자괴감을 느꼈을 것 같다. 재혼함으로 새아빠의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고 이혼으로 아빠와의 이별, 난민 생활 등 어른들의 선택과 잘못의 대가가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이 책은 자전적 소설이며 마지막 장에는 호스로는 한 아이의 아빠가 되었다고 한다. 거기서 나는 왠지 모르게 무사히 성장한 사실에 안도감을 느꼈다. 만약 호스로를 만났다면 ‘그동안 잘 견뎌져서 고맙다.’는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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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물방울 에디션)
김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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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이 책은 「불편한 편의점의 후속편 같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했다. 요즘 같은 시대는 각자도생인데 책에서는 연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이 사랑받는 이유는 모두가 소설에서 나오는 남동 빨래방이라는 공간에서 서로의 정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길 바란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외출하여도 옆집 아줌마가 나의 끼니를 챙겨주었고 우리 엄마 역시 옆집 아이를 챙겼다. 지금은 한 시간을 우리 아이를 편안하게 맡길 수 있는 곳이 없다.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다보니 힘들 때도 있다. 도움을 주고 받는 것이 낯설고 어색하다.


 지금 사회는 각자도생이 편리하고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는 것에 불필요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으나 소위 말하는 ‘정’이 없다. 어쩌면 우리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길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나의 온기가 누군가에게는 힘이 될 수 있고 상대방의 온기로 인해 내가 살아갈 힘이 생긴다. 어쩌면 우리는 연대를 그리워할 수도 있다.


 어른에게 어릴 적에 다른 사람이 곤경에 처하면 도와주어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하지만 요즘은 잘못 도왔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어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는 타인을 위로하고 보이스 피싱범을 잡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친다. 이런 일들이 날이 갈수록 소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 사회가 남은 돕고자 하는 마음에 주저함이 없고 도움받는 이들도 의도를 갖고 돕는 건 아닌지 의심하지 말고 순수하게 받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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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의 얼굴들 - 철학은 지적장애를 어떻게 보아왔는가
리시아 칼슨 지음, 이예린.유기훈 옮김 / 심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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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분노와 의문을 가진 채 읽었다. 분노를 느낀 부분은 지적 장애인을 동물과 같이 취급한 일부의 주장과 인지가 있는 사람의 기준에서 지적 장애인을 규정한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떠나지 않았다. 반대로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기준을 지적 장애인을 기준으로 바뀐다면 인지가 있는 사람들이 이상하고 주변 사람들이 된다. 즉 기준이 어떻게 정해지는가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분노’ 지점은 지적 장애인을 동물과 동일시 바라본다는 것이다.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분이었기에 나로서는 화가 났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책에서도 말했듯이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하고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에 타자가 마음대로 해석했다. 흔히들 우리는 가끔 피해당한 사람에게 ‘네가 잘못 행동해서 그런 일을 당했다’라고 말할 때가 있다. 나는 이 맥락에서 보면 ‘지적 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렇다고 결론내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인지 능력이 부족하다면 상대방이 섬세하게 캐치해서 알아내는 능력이 있으면 된다고 본다. 마치 글을 읽지 못하는 지적 장애인에게 그림 도구를, 영상을 제시하여 소통을 끌어내듯 말이다. 오히려 그들의 인지 기능의 수준으로 인간관계 맺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소위 중심부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비장애인의 기준으로만 맺을 필요가 없다. 다양한 기준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또 다른 의문점은 “지적 장애인 중에 변화의 가능성이 없는 사람”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21년간 지적 장애인들과 사회복지 현장에서 변하지 않고 정지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최중증이라도 미소를 좀 더 짓는 횟수가 늘어난다든지, 거부 표현을 나름대로 하였다. 좀 더딜 뿐이지 그들은 자신들의 기준으로 변화되었다.


 나는 지적 장애 당사자로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들을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적 장애 당사자가 인지 능력이 부족하고 자신을 대변하지 못하는 건 그들의 고유한 개별적 특성이다. 그것을 비장애인 기준으로 바뀌길 바라는 것은 억지 주장이다. 마치 인지 능력 있는 사람에게 앞으로 너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게 막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의 고유성을 인정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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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 피오
에밀리 샤제랑 지음, 마리 미뇨 그림, 이주희 옮김 / 책모종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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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책 제목이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 피오>다. 왜 이런 제목을 지었을까? 생각해 보았다. 나는 두 가지 이유로 생각해 보았다. 첫째, 사람들이 다르다는 이유로 싫어해도 그들이 좋아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호의를 베푼 피오의 넉넉하고 따뜻한 아이, 마음이 큰 아이를 표현한 게 아닌가 싶다. 둘째 세상 사람들과 다른 기준, 다름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책 내용에서 피오를 향한 엄마의 사랑과, ‘사람은 다르다는 것을 무언가를 해 내야만 인정받는가?’ 의문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엄마는 피오가 다른 아이와 다른 ‘키 큰 아이’라는 피오의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았다. 엄마로서 아이를 힘껏 사랑하였다. 엄마에게는 세상 사람과 피오의 다름이 전혀 문제 되지 않았다. 나는 장애인으로 부모님이 나의 존재를 부정까지는 아니지만 다르지 않음을 증명하기 재활하고 일반 학교를 보내기 위해 애썼다. 물론 그것이 잘못이라고 할 순 없지만 나는 부모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했고 힘들었다.


 또 다른 하나 의문점은 '세상 사람과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그들이 배척에서 호의로 바뀔 때까지 친절하게 대하고 기다려야 하는가?' 또는 '그들에게 무언가를 해 내는 존재로 증명해 내야 하는가?' 만약 피오가 노나의 안경을 찾아주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친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르면 누군가에게 증명해야 하는 존재인가? 존재 자체로 인정받을 수는 없을까?


다양함이 공존하는 사회가 다채로운 사회가 된다. 그래야만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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