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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ㅣ 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 후에 2
히가시가와 도쿠야 지음, 현정수 옮김 / 21세기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추리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 바로 명콤비
'셜록 홈즈와 존 왓슨, 에르큘 포와로와 아서 헤이스팅즈, 네로 울프와 아치 굿윈'
위에 나열된 이름들은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고 자부하는 사람이라면 벌써 눈치챘을 유명한 추리 소설 시리즈 속에
등장하는 명콤비들이다. 물론 혈혈단신으로 등장해서 외롭게 사건을 해결하는 독고다이 스타일의 형사나 탐정
들도 있지만 역시나 추리소설하면 떠오르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콤비'이다. 추리소설 작가들이 한 명이나
세 명도 아닌 두 명의 등장인물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역시 둘이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만담형 서술이 독자들에게
통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 대부분의 탐정들은 사회적인 관계가
약하거나 독불장군식의 행동을 자주 보이기 때문에 이를 커버해 줄 조금은 평범하고 정상적(?)인 캐릭터가 필요했
을 것이다. 유별난 언행으로 유명한 홈즈 옆에 왓슨이 없다거나 나무늘보가 혀를 내두를 게으른 탐정 네로 울프에게
아치 굿윈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들의 명추리를 보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그만큼 직접적으로 추리를 하는 명탐정에게는 옆에서 도와주는 조수 겸 친구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히가시가와 도쿠야의「수수께끼 풀이는 저녁식사후에 2」에서도 독자들을 즐겁게 해 줄 명콤비가 등장한다. 엄청난 규모의 거대 기업의 외동딸인 호쇼 레이코 형사와 가게야마 집사는 여태까지 등장했던 추리 소설 속의 콤비들과 비슷하면서도 조금은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어서 더욱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주인과 집사, 그 갑과 을의 관계가 주는 반전
위에서 거론한 콤비들의 또 한 가지 유사점은 주로 조수 역할을 맡은 캐릭터들이 탐정 캐릭터에게 당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21세기에 나온 이 시리즈에 등장하는 콤비의 관계는 완전히 반대라는 점이 무척이나 흥미롭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주인공 호쇼 레이코 형사를 보필하는 가게야마 집사는 우리에게 익숙한 [배트맨]의 등장하는 알프레드 집사와는 사뭇 다르다. 검은 색 집사복을 말끔히 차려입고 주인을 보필하는 점은 똑같지만 주인이 듣기 싫어하는 말까지 대놓고 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한 집안에 고용되어 있는 집사라는 직업의 특성 상, 이런 언행을 보여준다는 것은 거의 하극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소설집의 첫 번째 이야기인 「완벽한 알리바이를 원하십니까」에서 유력한 용의자인 에자키 다테오가 너무나도 분명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분한 레이코에게 가게야마는 다짜고짜 이런 돌직구를 날린다.
"실례입니다만, 아가씨는 여전히 멍청이이시로군요. …… 좋은 의미로."
- 첫 번째 이야기 中 p.50
해고를 당해도 항변하지 못할 이런 돌직구에 레이코는 바로 분개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게야마 집사는 주인 레이코가 놓치고 있는 사건의 맹점들을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그녀가 사건을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기 때문이다. 부유한 집안 환경, 뛰어난 외모와 몸매, 그리고 형사라는 직업 정신까지 투철한 그녀의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고 있는 가게야마 집사를 보는 오늘날의 수많은 을(乙)들은 결국 이들 콤비에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요즘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의 한 코너인 '갑을 컴퍼니'는 오늘날의 갑을관계를 희화화시켜 시청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 막 회사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엉뚱하고 가학적인 대리, 과장, 사장을 만나 고생하는 에피소드들이 볼때마다 웃기면서 슬프다. 웃기면서 슬픈 이유는 그 코너에서는 과장되어 있지만 어쨌든 현실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이 사회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말단에 위치한 사람들은 결국 윗사람의 말 한 마디에 벌벌 기거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게야마 집사는 주인 레이코에게 당돌하다고 할 정도로 당당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과거나 지금이나 꾸준한 인기를 받고 있는 추리 시리즈들에는 독자들이 빠져들 수밖에 없는 캐릭터들이 나온다. 교묘한 반전이나 서술 트릭만큼이나 추리 미스테리 장르에서 중요한 것이 매력 넘치는 캐릭터 구축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절실하게 알려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일본에서 100만부에 가까운 판매 기록을 세울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런 독특한 을(乙) 캐릭터, 가게야마가 등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족: 일본의 여느 인기 미스테리 소설들이 그렇듯이, 이 작품 또한 화려한 캐스팅을 해서 드라마로 만들어져 인기리에 방영되었다. 일본에서 미스테리 장르 문학이 그만큼 활발하다는 증거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남녀노소가 다같이 즐길 수 있는 미스테리 소설들이 많이 출간되어서 드라마나 영화로 보는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