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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폐허를 응시하라 - 대재난 속에서 피어나는 혁명적 공동체에 대한 정치사회적 탐사
레베카 솔닛 지음, 정해영 옮김 / 펜타그램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처음 이 책의 내용 소개를 읽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끔찍한
재난을 통해서 과연 인간이 사랑과 화합이라는 가치를 어떻게 깨달을 수 있는 지였다. 운이 좋게도 지진이나 해일, 화재와 같은 재난 사고를 직접 겪은 적은
없었지만 재난이 휩쓸고 난 몇몇 지역을 방문해서 단체 봉사를 한 경험이 있었다. 그곳에서 내가 목격한 곳은 원래 이 곳이 어디였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린 폐허와 널부러진 거주자들의 쓰레기들 뿐이었다. 그리고 물품을 나르기 위해서 방문한 학교 체육관이나 공공시설에 피난해
있던 재난민들의 얼굴은 어둠과 슬픔 그 자체였다. 이렇게 간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내가 느꼈던 것은 재난은 말 그대로 저주이자 공포라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나였기에 이 책을 처음 읽는 순간부터 호기심 반 의문 반 이었다는 것을 먼저 밝히고 싶다.

'대중적 지식인' 저자 레베카 솔닛은 1906년 미국에게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부터 뉴올리언스 홍수 사태까지 총
다섯 개의 재난을 통해서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재난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재난이 벌어진 이후에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반응에 대한 편견을 가장 먼저 부셔 준 인물이 바로 샌프란시스코 새크라멘토 가에 살고 있었던 애나 아멜리아 홀스하우저라는
부인이었다. 시내에서 미용사 겸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던 그녀가 지진 직후 거리로 나왔을 때는 혼란 그 자체였다. 다른 건물들처럼 그녀가 일하는
가게 또한 완전히 파괴되어 있었는데, 홀스하우저 부인은 침착하게 대형 천막을 이용해서 무료 급식소를 열었다. 사실 재난 대책 메뉴얼이 존재하고
정부는 물론 각종 시민단체들이 재난현장에 개입되는 최근과 달리 1900년대 초반에 재난 대책은 형편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료 급식소를
열어서 파이와 마실 것을 재난민들에게 제공하고 사람들을 보살폈던 홀스하우저 부인은 오늘날의 복지개념을 이미 100여 년 전에 실천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무너진 집더미를 넋놓고 보고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에게 있어서 이런 한 개인의 의지와 용기는 매우 신선했으며, 비단 재난
현장에 이런 사람이 소수일 것이라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 대지진 이후 그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선의를 볼 수 있었던 장면들이
가득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3000명이라는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하고 도심 한복판이 폐허가 된 그 재난 속에서 샌프란시스코의 많은 주민들은
음식을 만들어서 나누어 먹고 노래를 부르며 서로를 위로 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이성을 잃지 않고 서로의 이웃을 돌보는 것에 여념이 없었던
것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내가 이 책을 읽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재난민들의 고정관념이 많아 사라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가진 그런 편견과 고정관념이
비단 나의 내면에서 시작된 문제라고 할 수 없다고 저자는 말해주고 있다. 정신의학에서 재난의 영향을 일관되게 '트라우마', 곧 정신적 외상이라고
일컬으면서 나약한 인간의 본성을 부각시키고, 재난영화와 대중매체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재난에 직면하게 되고 나서 패닉에 빠지는 모습에 초점을
맞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바로 이러한 사회적 세뇌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재난 이후에는 모든 것이 끔찍하고 흉폭해진다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엄청난 자연 재난 속에서 많은 엑스트라들이 우왕좌왕하다가 무참히 희생당하고 단 한 명의 영웅이 여러 사람들을 구조하는 식의
헐리우드 재난 영화들은 이런 믿음을 더 강화시켰다고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 속에서 찰스 프리츠라는 사회학자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영화 속에 그런 공황은 실제로는 그렇게 많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놀라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공황이라는 단어 자체가 극단적이고 비이성적인
공포와 도피 행위라는 의미인데, 실제로 재난의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도망치는 것은 비이성적인 공포에서 나오는 행동이 아니라 지극히 이성적인
반응이라고 찰스 프리츠가 지적하고 있다. 쉽게 생각해보더라도 그저 무너진 집터만 바라고만 있는 사람들보다 살길을 찾기 위해서 몇 가지 물품만
간단히 챙기고 피난길에 오르는 사람들의 행위가 더 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현실 속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성적인 행위를
함에도 불구하고 헐리우드 재난 영화들 속에서는 단 한 명의 영웅이 많은 무능력한 사람들을 구하는 내용들이 많다. 저자는 그런 이유는 시민들
대다수는 무능력하고 멍청하다는 편견 속에서 훌륭한 영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헐리우드 재난 영화를 만드는 제작자들은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타를 기용할 것이고, 그 스타가 재난영화에서 할 수 있는 최상의 역할은 바로 '영웅'이다. 하지만 그런
영웅이 존재하는 영화와 다르게 재난이 일어난 현실 속에서 문제를 가장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현장에 있는 재난민들이다.
재난민들이 평상 시에는 전혀 접하지 못했던 대지진이나 홍수와 같은 비일상적인 상황 속에서 익숙하지 않은 역할을 수행할 때 비로소 인간이 만들어낸
유토피아가 형성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