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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지지 않은 소녀들 - 세상이 지우려 했던 소녀들, 그러나 끝내 지워지지 않은 이야기
수잔 위그스 지음, 허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년 이맘때에 읽었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라는 짧은 소설의 배경은 막달레나 수녀원이다.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있는 아일랜드의 막달레나 세탁소가 그 배경이었는데, 장소만 다를 뿐 선한목자의 집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형제복지원 사건.
나라만 다를 뿐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는 착취와 불법감금과 성폭행과 인권유린... 그나마 다행이란 건 책 속에 등장한 메이린을 비롯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끔찍한 기억을 세상 밖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친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엄마는 재혼을 한다. 아들 리엄과 딸 메이린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엄마의 선택은 잘못되었다. 새아버지인 콜럼은 도박에 빠져있고,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기도 한다. 그보다 더 한 것은 딸인 메이린을 성폭행 하려다 나타난 리엄에 의해 미수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리엄이 군대에 징집되어 베트남으로 떠나게 되면서 엄마는 메이린을 어딘가로 데리고 간다. 그날은 학교가 개학하는 날이었는데, 그들이 간 곳은 바로 선한목자의 집이었다. 그전부터 엄마가 수시로 꺼냈던 그곳. 엄마는 왜 메이린을 선한목자의 집에 보냈던 걸까? 새아빠의 성폭행을 막기 위해서, 아님 메이린이 남자와 어울린다는 사실 때문에?

겉으로는 문제를 일으키는 여자아이들을 교화시킨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도, 실상은 지옥과 다름없었다. 그곳에서는 아이들의 인권은 묵살당했다. 오트밀의 묽은 국물이 한 끼 식사로 나오고, 옷이나 잠자리도 형편없다. 다른 아이와 말을 섞거나 시키지 않았을 때 말을 하면 체벌이 가해진다. 소녀들은 하루 종일 뜨거운 스팀이 나오는 세탁소에서 일하며 화상을 입기도 하고,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일을 하느라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수녀들의 말에 절대복종은 기본이고, 의사라는 작자는 소녀들을 성폭행해 임신을 시켜도 수녀들은 모른 척할 뿐이다. 그리고 수녀들의 말에 토를 달거나 도망을 치거나, 마음대로 말을 하면 좁은 벽장 안에 가두어두는 체벌을 받는다. 소녀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지만, 그에 대한 돈은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재워주고 먹여주고 교화시킨다는 명목이다.
메이린은 첫날부터 탈출을 감행하지만, 결국 실패로 끝난다. 이름을 빼앗긴 소녀들은 보호소에서 지어준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이름이 잊힐까 봐 팔에 이름을 새겨두기도 한다. 그곳에서 지내면서 메이린처럼 그곳을 벗어나기를 꿈꾸는 소녀가 있는 반면, 그곳의 체제에 순응하고 살아남기 위해 수녀들에게 고자질을 하는 소녀들도 생겨난다. 그럼에도 메이린은 포기하지 않고, 주변의 소녀들로 하여금 탈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일깨워 준다.

소녀들이 그곳에서 겪은 끔찍한 일들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있는데, 그곳을 탈출한 후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기억해 내고 자신들에게 위해를 가했던 수녀를 찾아가는 이야기가 나온다. 솔직히 피해자 입장에서 과거의 끔찍한 기억들을 다시 목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들은 용기를 낸다. 그리고 자신이 당했던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상황들을 늦게라도 밝혀내려고 다시금 힘을 모은다.
악몽 같았던 1년여의 기억들은 소녀들의 평생을 옭아맨다. 잊히지 않는 끔찍한 상처들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가해를 한 수녀들의 모습은 벨라뎃다와 로트루드의 모습으로 나누어진다. 과거의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뒤늦게라도 사과를 하는 벨라뎃다와 달리 피해자들을 계속 가스라이팅 하며 스스로를 두둔하는 로트루드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어이가 없었다.
보호와 교화라는 명목의 종교시설이 저지른 끔찍한 학대의 모습은 단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우리 사회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메이린과 같은 피해자들은 지금도 과거의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들어하고 있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그들의 아픈 기억들이 조금이나마 벗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