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뺏는 사랑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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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 마땅한 사람들>의 작가 피터 스완슨의 처녀작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녀>가 <아낌없이 뺏는 사랑/푸른숲>으로 출판되었다.  이미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죽어 마땅한 사람들>처럼 반어법을 사용한 제목은 아낌없이 '주는'사랑이 아닌 '뺏는' 사랑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며 흥미를 돋운다.  하지만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녀>라는 원제를 보고 나니 책 속에 담긴 메시지가 무엇이었는지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 들어간 느낌이다.  

               

대학 입학 첫날 처음 만났던 조지와 리아나.  <아낌없이 뺏는 사랑>은 20년 뒤 두 사람의 우연한 재회로 벌어지는 사건과 20년 전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의 사건들이 각각 다른 시간대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함께 근무했던 신입 편집자 아이린이 다른 회사에서 승승장구하는 동안 회사의 발전을 기대하는 신입사원의 열정 어린 패기도 절정에 다다르는 섹스에 대한 탐닉도 사라져버린 조지의 일상은 권태로움 자체였다.  20년 전 첫사랑 리아나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20년 전 조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리아나는 오드리 백이라는 여학생을 사칭해 대학교를 다니고 그 여학생과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명 수배된 그의 첫사랑이다.  믿고 싶지 않은 그녀의 실상 앞에 언젠가 자신 앞에 나와 핑계든 거짓말이든 해명할 리아나의 모습을 기대하며 대학생 조지는 '기다림'을 선택했다.  그러나 일말의 희망으로 남겨두었던 사건의 전모를 모두 밝혀 줄 그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갈등한다.  자신의 가슴에 봉인해버린 추억 상자를 다시 열어 볼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끝은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고 생각한 자신의 추억이 어쩌면 산산이 부서질지도 모르는 것이다.  사춘기의 열병처럼 젊음과 함께 시간 속에 침잠해 있던 미궁의 사건들은 그와 관련된 모든 현실세계가 권태로울 즈음 서서히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며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세계로 자신도 모르게 얽혀들어가게 된다.

20년 전 조지가 그녀의 실체의 끝에 다가가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에 찾아가 매 순간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 앞에서도 무모할 정도로 꿋꿋했던 그의 행적을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그에게 용기가 부족해서 그만두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리아나와 함께 행복했던 시절, 그녀가 그에게 선물해 주었던 <레베카>의 한 구절처럼 진실의 끝에 언젠가 대면해야 할 그녀의 실체에 대한 일말의 희망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지만 이번 생에서 멜로드라마는 충분히 겪었다. 그러니 현재의 평화와 안도감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기꺼이 오감을 버릴 것이다. 행복은 소중히 여겨야 할 소유물이 아니라 생각의 질이자 마음의 상태이다.
<레베카 중에서>



선택할 수 없었던 상황들이 만들어내는 결과물들은 때때로 끔찍하다.  조지에게 오드리 백으로 존재했을 때 리아나는 마약에 중독된 아빠, 끔찍하게 가난한 집안의 리아나가 아닌 평범한 집안의 오드리 백으로 영원히 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이 진짜 자기 모습이라고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는 연장선 상에 있는 동일 인물이라는 조지의 말은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그녀가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의 일생에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리아나는 처음 섹스를 하는 오드리 백의 모습을 더 이상 연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약에 중독된 아빠의 빚을 갚기 위해 성 상납을 하던 시절의 리아나로 돌아가 그를 만족시켜 준다.  그날의 섹스는 조지에게 무아지경의 황홀했던 추억이 아니었다.  서늘하고, 아프고, 어딘가 아련한.  그래서 자꾸 되뇌게 되는.  버니의 마취 총에 맞아 정신을 잃었을 때 그날의 기억이 꿈처럼 나타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는 그날 그녀의 손목과 발목을 그녀가 선택하지 않았던 운명 속에 결박해버렸고, 그의 눈앞에 그렇게 결박당한 그녀가 같은 처지가 된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인정해. 알았으니까 진정하라고. 네 말에 극구 반대하는 건 아냐. 다만...... 어른이 됐을 때가 어릴 때보다 더 진정한 나에 가깝다는 말에는 완전히 동의할 수 없어. 잠깐만, 끝까지 들어봐. 난 두 모습 다 진정한 나라고 생각해. 사람의 태생은 무시할 순 없어. 아무리 그러고 싶다 해도 불가능해. 그건 늘 존재하고, 우리의 실체이기도 해. p. 288 

조지는 리아나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로 여러 사건에 휘말리게 되지만 매번 그녀 때문에 위험에 빠지게 되는 순간에도 그녀를 이해하고 싶어 했다.  조지가 아직 리아나를 오드리 백으로 알고 있었던 때, 멈춰버린 시계 심장을 가진 그녀를 찾아가지 않았다면 그녀의 일생이 지금보다 더 나아졌을까.  그렇지만 그로 인해 밝혀진 여러 상황들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그녀의 행동에 면죄부를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그녀를 사랑했다.  멈춰버린 시계를 되살리고 싶을 만큼.  그녀의 존재를 원하고 실제로 가까이 다가선 사람은 그녀의 일생에 그가 유일했다.  

리아나로 인해 일어나는 끊임없는 사건들은 조지를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만들고 결국 그녀에 대한 그의 생각마저 '똥멍청이'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치부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는 기다림을 선택하고 추억으로 봉인했던 예전과는 달리 그녀의 실체를 찾기로 결심한다.  인생은 내가 의도한 대로 흘러가지 않지만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라는 확신과 <레베카> 6페이지, 마야의 유적지 사진이 담긴 빛바랜 엽서 한 장이 그녀를 찾을 유일한 단서다.  그녀의 새로운 삶을 위해 그녀의 죽음을 증명할 마지막 증인으로 선택된 조지.  다시 한번 시계 심장을 깨우러 가는 조지의 여정에 더 이상 빼앗길 사랑이 남아있을는지.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녀 리아나는 그의 바람처럼 과연 진짜 살아 있을까.  '찾아야 할 물건이 뭔지는 모르지만 보면 알 거야.'  작가는 책의 시작과 끝을 미묘한 글귀로 아우르며 독자의 시간을 아낌없이 빼앗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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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미술관 - 잠든 사유를 깨우는 한 폭의 울림
박홍순 지음 / 웨일북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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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가면 작품의 배경이 되는 지식과 정보를 흥미진진하게 소개해 주는 도슨트를 볼 수 있다.  요즘에는 기술의 발달로 미술관 앱을 설치하면 어디에서나 미술작품과 작품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미술관 앱처럼 어디에서나 들고 다니면서 철학과 미술을 두루 섭렵할 수 있도록 구성된 <생각의 미술관>.  아침에 배운 지식이 저녁에 가물거리는 요즘, 철학이라는 상찬을 먹기 전 모양도 예쁘고 오감을 자극하는 애피타이저를 먹는 느낌.  열 개의 장에서 철학의 애피타이저를  맛본 후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감은 극도로 상승하게 된다.  훌륭한 애피타이저를 맛본 후 우리가 기대하는 철학이라는 메인 요리는 어떤 모습일까.

"엄마, 이 그림 이상해요."
"뭐가 이상하게 보이는데?"
"그림 속에 또 그림이 있어요."
"왜 그러면 안 되는 거야?"
"글쎄요... 이런 그림은 본 적이 없어서요."
"본 적이 없다고 이상한 것은 아니지 않아?"
"그래도 이상해요."
"너도 가끔 엉뚱한 생각하잖아.  그런 걸 화가들은 그림으로 표현한 거지."
"엄마, 생각하는 것이 뭐예요?"
"우리 일상이지, 우리는 매일 생각하고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매일 하는 생각을 왜 또 해야 한다고 하는 거죠?"
"글쎄, 사람들이 생각한다라고 했을 때 하는 생각이랑 좀 다른 생각을 해보라는 뜻 아닐까?"  
 "에이, 그게 뭐예요... 생각에도 차이가 있다는 건가요?"

아이와 끝이 없는 말장난 같은 이야기를 몇 차례 거듭하면서 나는 왜 <생각의 미술관>이라는 미묘한 애피타이저를 맛보며 스스로 사유의 늪으로 걸어가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철학이란 나를 포함한 세계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말한다.  생각이 가치관으로 격상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몇 가지 단계가 있다.   '이상한 생각'이 '철학'이라는 가치 있는 생각이 되는 단계를 머릿속에서 마인드 맵 그리듯 연습해 본 것이다.   굳이 말로 다시 표현해 보면 첫째, 일관성을 가져야 하고 둘째, 언어를 통한 체계화와 객관화가 동반되어야 하며, 셋째 자기반성을 전제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기묘한 그림을 보고도 아무런 지각이 일렁이지 않는다면 인간인 나와 기계가 다른 점이 무엇이겠는가.  <생각의 미술관>은 지금까지 녹슬어 있었거나 딱딱해져버린 뇌의 생각하는 감각을 말랑하게 해준다.  

각 분야에서 만들어진 구분은 세월의 경과와 함께 고정화된다. 마치 이 세상이 생기면서부터 그러한 구별이 주어져있었던 듯이 각각 확고부동한 자리가 주어진다. 한번 특정한 범주에 속하면 그 안에 있는 것들은 항상 동일한 성격으로 분류된다. 개별 사물이나 현상, 개별 특징이나 요소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오직 해당 범주 안의 고정된 의미로만 우리에게 다가온다. p170



외부 사물과 내적 지각이 맞물려 한 기계의 톱니바퀴처럼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생각이 외부 사물과 유기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하나의 개별적 독자적 가치를 만들어 갈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를 탄생시킬 수 있는 것이다.  <생각의 미술관> 북 도슨트는 미술 작품 속 숨겨진 뜻을 통해 우리는 왜 철학을 배워야 하는지, 철학이 어떻게 삶에 자리 잡고 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 엉뚱한 길로 들어서지 않도록 훌륭한 가이드가 되어 준다.  철학카페에서 00 읽기 시리즈를 좋아해서 여러 권을 읽었는데 이 책에 소제목을 붙인다면 <철학카페에서 미술 읽기>라고 하고 싶은 이유다.  사고의 문을 여는 각 장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시작된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미술동호회 활동을 하던 시절 좋아했던 작가다.  흔히 철학을 하나의 이미지로 함축해 놓았다 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찬사를 받는 마그리트의 작품들은 이전의 미술작품에서는 볼 수 없었던 깊은 사유의 만찬으로 초대하는 훌륭한 애피타이저이자 초대장이다.    


4차 산업혁명까지 얘기하지 않더라도 바야흐로 변화의 물결이 넘치는 시대다.  로봇에게 다른 행동을 인식시키는 것은 알고리즘을 입력해야 하는 복잡한 단계만 거치게 되면 금방 새로운 체계를 인식한다.  그러나 인간은 새로운 사고에 매우 취약한 대뇌 회로를 갖고 있다.  우리는 늘 우리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사고하고 판단하며 살아왔다.  변화가 없는 세상이 어떤 고통을 안겨주는지 몸소 겪었던 지난 10년의 세월은 조용한 촛불 혁명의 주춧돌이 되어 역사를 새 시대의 큰 변화의 흐름 앞에 가져다 놓았다.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 것인가.  <생각의 미술관>의 저자는 마그리트의 그림으로 기존의 사고방식의 틀에서 벗어나라고 주문을 걸고 있다.  강제되고 고정된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시야, 상상력을 통한 인식 지평의 확대를 할 수 있는 생각을 해야 한다.  멀리 가서 철학을 찾을 필요도 없다.  내 삶 가까이에 있는 현실적인 문제로부터 먼저 철학적 사고를 해야 한다.  많은 현대인들이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들어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말할 것을 미리 대비하듯 책의 말미에 시간의 문제를 다루는 방법이 나온다.  현실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시간에 익숙해지며 시간의 노예로 살게 되었는지 말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자본을 잠식하듯 다가오는 미래에는 시간 또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잠식당할 것이다.  시간의 주인이 되어 나만의 철학을 하고 나아가  넓은 세상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유와 철학의 힘이 꼭 필요하다.  한사람 한 사람의 정신적 변화는 물질적 힘으로 승화되어 놀라운 힘이 될 수 있다.  보이는 것에 집중하던 시대에서 벗어나 보이지 않는 가치에 대해 생각할 때다.  찾아가는 길이 어렵다면 <생각의 미술관> 북 도슨트의 힘을 빌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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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줄까요 - 닥터 호르헤의 이야기 심리치료
호르헤 부카이 지음, 김지현 옮김 / 천문장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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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이런 얘기 지겹다. '  솔직히 처음 몇 장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지겹다'라는 생각과 '그래봤자 변하지 않아'라는 생각이었다.  심리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나를 알기 위해 그동안 많은 심리학 도서를 읽었다.  나에 대해 알기 위해 외면하고 숨겨두었던 과거를 다시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밑바닥을 바라본다는 것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 스스로 고름 난 상처를 생으로 도려내는 아픔과 같았다.  어렵게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의 원인을 파악하고 머리로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동안 그 틀안에서 살아온 세월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순간들이 마치 나로인한 것인 양 괴롭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과거의 상처에 대한 원인을 알수록 무력해지는 기분과 회의감이 밀려왔다.  힘들게 원인을 찾아봤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결국 회피하고 외면했던 때가 더 행복했다는 생각으로 치달으며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는 습관으로 귀결된다.  매 번 헛발질하는 삶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삶은 '확' 바뀌지 않았다.  

재작년 한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며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를 통해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책 닥터 호르헤의 이야기 심리치료 <이야기해줄까요>는 평범한 청년 데미안과 닥터 호르헤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만한 명제에 대해 정답 없는 사유의 깊은 늪으로 인도한다.  늪은 금방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다.  끝까지 나오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덫이 되기도 하지만 허우적거리며 끝내 빠져나오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된다.  이름 모를 어느 책 속에 인용되어 한 번쯤 들어봤던 익숙한 이야기도 있었고, 처음 보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익숙함은 대뇌 회로를 익숙한 방식으로 작동시켜 새로운 지식의 깨달음을 방해한다.  닥터 호르헤만의 차별점을 찾아서 읽어야 무엇인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읽다 말고 저자 이력을 살펴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게슈탈트 심리요법 전문가 과정'을 마쳤다는 부분이었다.  요즘 뜨고 있는 심리치료 방법으로 내담자와 치료자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내담자로 하여금 이전에 거부했거나 보지 못했던 자신의 부분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통합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심리치료 기법이 '게슈탈트 심리요법'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을 부분이나 요소의 집합이 아닌 전체성이나 구조에 중점을 두고 파악하는 학파를 말한다.  그들에게 건강한 삶이란 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분명하고 강한 게슈탈트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치료를 받는 '그 순간'에 환자의 가장 중요한 경험과 행동을 다룬다는 점이 다른 심리상담과 다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유분증이 있는 사내의 일화는 호르헤의 상담치료법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확실하게 말해 준다.  사내는 유분증이 왜 생겼는지 알아도 그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분증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무 팬티를 입는 것도 행복에 이르는 길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속옷에 변을 보기는 하지만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마지막 사내의 말에서 나는 온전한 자유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삶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복종이냐 고독이냐
강요받고 복종하는 나와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붙잡혀 있다.
고독을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진실로 혼자 있을 수 있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수 있게 된다

 

 

성직자들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살지 않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주말마다 교회에 가서 회개하지만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고 다시 용서를 받는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는 그런 모습이 참 이상하게 보였다.  죄를 짓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저런 수고를 감내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은 지속되며 환경과 계속 생산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내 삶 속에서 흔히 고민했던 바로 현재의 상황들이다.  그 중 체념과 수용의 일화에서 나는 성직자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체념은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는 것이지만 수용은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개선하며 반성하는 자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았던 일은 앞으로의 행동에 당연한 이유가 되어 자칫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체념하게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맞는 자기반성의 시간은 결국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새로운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한다.  우리는 깨어서 현재를 살면서 끊임없이 숨겨진 날개를 펼칠만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심리치료가 자기개발서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나의 내면을 어디론가 이끌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느낌이 싫어 이끌려 가는 느낌은 상당한 거부감을 동반한다.  닥터 호르헤의 이야기 심리치료 <이야기해줄까요>는 그런 거부감이 다른 심리 상담에 비해 훨씬 덜하다.  이야기의 결론은 어디에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스스로 그 사유의 늪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닥터 호르헤의 사유의 늪이 궁금한 사람은 지금 이 책을 펼쳐 보라.  늪의 가장자리에만 머물다 나온 사람과 깊은 곳까지 걸어가 허우적거린 사람의 깨달음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 참고:  게슈탈트 요법 1979에서 <아홉 개의 개명>
1. 현재를 살아라.  과거나 미래의 환상이 아닌 현재를 돌보라
2. 이곳에 살아라.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에 몰두하라
3. 상상하는 것은 이제 그만, 현실을 경험하라
4. 불필요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그만,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 훨씬 낫다
5. 설명하고, 합리화하고, 평가하는 대신 너 자신을 받아들여라
6. 기쁜 일과 마찬가지로 기쁘지 않은 일도 받아들여라
7.'~해야만 한다'라는 의무는 너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마라
8. 너의 행동, 감정, 생각에 완전히 책임져라
9. 현재의 너의 모습 그대로 너 자신을 인정하라(다른 사람 모습도 그대로 인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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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의 논리 수업 - 행복을 이끄는 논리적 사고의 비밀
무천강 지음, 이지은 옮김 / 미래지식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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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대통령 후보들의 어떤 점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물어보는 질문에 과반수의 사람들이 후보들의 토론을 중요하게 볼 것이라고 대답했다.  꼭두각시처럼 남이 써주는 글을 읽는 사람이 아닌 자신만의 철학과 논리를 가진 사람에 대한 열망이 토론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만의 철학과 논리를 기를 수 있을까.  
철학이나 논리는 단시간에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지낼 수는 없는 법.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을 기억하며 논리를 가져야 한다는 일념에 뽑아든 책이다.  하버드라는 이름이 가진 가치는 이 책만으로도 금방 논리에 대해 섭렵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지를 불태우기 충분하다.  이 책은 논리의 개념, 판단, 추리, 논증, 규칙을 아우르는 이론 편과 논리를 삶에 적용시키는 응용 편으로 나누어 논리가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며, 행복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역설하고 있다.  

처음에는 행복을 이끄는 논리의 비밀이 궁금해 이론 편은 건너뛰고 응용 편부터 읽었다.  하나같이 도움이 되고 좋은 내용들이었지만 흔한 자기개발서와 다름없는 내용들이었기에 적잖이 실망했다.   매 장이 끝나는 페이지에 '하버드 논리 핵심'이라고 요약된 부분을 제외하고 기대했던  제목과 연결 지어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이미 자기개발서에 폭넓게 노출된 탓에 다른 관점에서 책 읽기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책 읽기 속도가 점점 늦어지기 시작하더니 손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 책을 읽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편리한 점은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새로운 지식은 쉽게 잊힌다는 것이다.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기본 편부터 차근차근 읽기 시작하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다.  '논리'는 사람들이 사물을 인식하는 중요한 사상적 도구이자 표현과 논증을 구현하는 사유의 도구를 말한다고 한다.  어떤 방식으로 사물을 인식하며 표현하고 논증하는지에 따라 행복 지수가 변화한다는 뜻에서 '행복을 이끄는 논리적 사고의 비밀'이라는 부 제목을 붙였던 듯하다.  변론은 논쟁을 펼치는 양측이 자신의 관점을 내세우고, 상대의 사유 과정을 반박하는 행위를 말하며 효과적인 변론의 수위를 만족시키기 위해 논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궤변은 의도적으로 논리 규칙을 저버리고 그럴듯한 말로 자신의 잘못을 교묘하게 가리는 것이며, 개념은 객관적 대상에 대한 사유의 반응으로서 사유를 형성하는 구성요소다.  개념은 반드시 언어를 통해 구체화되기 때문이 용어의 정확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개념의 내포와 외연 모두 명확해야 한다.  그밖에 호환 관계, 동일 관계, 모순 관계, 반대 관계 등의 논리에 적용되는 개념과 관계들을 기본 편에서 두루 정리했다.  가끔 인터넷 기사를 읽다 보면 기사의 논리와 인과관계에 대해 비판하는 날 선 댓글을 볼 때가 있는데 논리에 관한 개념들을 숙지하다 보니 앞으로 어떤 정보가 담긴 글을 맞닥뜨렸을 때 눈여겨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다.  

세 판의 승부를 모두 졌음에도 "첫 번째 판은 내가 이기지 못했고 두 번째 판은 상대가 지지 않았지. 그리고 세 번째 판은 무승부가 날 뻔했는데 상대가 그걸 원치 않더라고. "라고 표현했다.  각 문장이 내포하는 의미는 동일하지만 느낌은 전혀 다르다.  느낌과 생각의 차이는 어떤 현상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글에서도 디테일이 필요하듯 삶에서도 이런 디테일이 필요한 것이다.  기본 편을 읽고 나서야 왜 논리와 행복이 연관이 있는 것인지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응용 편의 '사고의 깊이가 운신의 폭을 결정한다'라는 말의 의미가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생물인 정치에서 논리가 중요하듯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변하는 삶의 문제들을 고정된 틀에 놓고 파악할 수는 없다.  새로운 삶을 꿈꾼다면 새로운 삶의 논리를 만들어 가야 하는데 기본 개념도 모르고서 어떻게 논리를 만들 수 있겠는가.  관점과 생각의 전환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사고의 실마리를 찾고 살아 숨 쉬는 새로운 논리를 끊임없이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있다.  우연이 남발하는 맥락 없는 드라마가 재미없는 것처럼 즐겁고 행복한 인생의 맥락을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행복은 주머니 속에 있다는 자족감에서 한 발자국 나아가 스스로 인생의 맥락을 만들어가기 위해 '논리'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관점에 아낌없는 지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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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와 일흔일곱 난쟁이 아르볼 상상나무 7
다비드 칼리 지음, 라파엘르 바르바네그르 그림, 이정주 옮김 / 아르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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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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