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해줄까요 - 닥터 호르헤의 이야기 심리치료
호르헤 부카이 지음, 김지현 옮김 / 천문장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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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또 이런 얘기 지겹다. '  솔직히 처음 몇 장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지겹다'라는 생각과 '그래봤자 변하지 않아'라는 생각이었다.  심리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나를 알기 위해 그동안 많은 심리학 도서를 읽었다.  나에 대해 알기 위해 외면하고 숨겨두었던 과거를 다시 만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의 밑바닥을 바라본다는 것은 칼만 들지 않았을 뿐 스스로 고름 난 상처를 생으로 도려내는 아픔과 같았다.  어렵게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의 원인을 파악하고 머리로 인정하게 되었지만 그동안 그 틀안에서 살아온 세월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모든 순간들이 마치 나로인한 것인 양 괴롭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과거의 상처에 대한 원인을 알수록 무력해지는 기분과 회의감이 밀려왔다.  힘들게 원인을 찾아봤지만 변하지 않는 현실에 자포자기하는 심정은 결국 회피하고 외면했던 때가 더 행복했다는 생각으로 치달으며 다시 과거로 회귀하려는 습관으로 귀결된다.  매 번 헛발질하는 삶의 악순환을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삶은 '확' 바뀌지 않았다.  

재작년 한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미움받을 용기>를 읽으며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를 통해 행복에 이르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 책 닥터 호르헤의 이야기 심리치료 <이야기해줄까요>는 평범한 청년 데미안과 닥터 호르헤의 대화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로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이 한 번쯤 고민해 봤을 만한 명제에 대해 정답 없는 사유의 깊은 늪으로 인도한다.  늪은 금방 빠져나올 수 없는 곳이다.  끝까지 나오지 못한 누군가에게는 덫이 되기도 하지만 허우적거리며 끝내 빠져나오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된다.  이름 모를 어느 책 속에 인용되어 한 번쯤 들어봤던 익숙한 이야기도 있었고, 처음 보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어딘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익숙함은 대뇌 회로를 익숙한 방식으로 작동시켜 새로운 지식의 깨달음을 방해한다.  닥터 호르헤만의 차별점을 찾아서 읽어야 무엇인가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아 책을 읽다 말고 저자 이력을 살펴보았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게슈탈트 심리요법 전문가 과정'을 마쳤다는 부분이었다.  요즘 뜨고 있는 심리치료 방법으로 내담자와 치료자 사이의 관계에 초점을 두고 내담자로 하여금 이전에 거부했거나 보지 못했던 자신의 부분들을 다시 받아들이고 통합하도록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심리치료 기법이 '게슈탈트 심리요법'이다.  게슈탈트 심리학은 인간의 정신을 부분이나 요소의 집합이 아닌 전체성이나 구조에 중점을 두고 파악하는 학파를 말한다.  그들에게 건강한 삶이란 환경과의 접촉을 통해 분명하고 강한 게슈탈트를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며 치료를 받는 '그 순간'에 환자의 가장 중요한 경험과 행동을 다룬다는 점이 다른 심리상담과 다르다.  책 속에 등장하는 유분증이 있는 사내의 일화는 호르헤의 상담치료법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확실하게 말해 준다.  사내는 유분증이 왜 생겼는지 알아도 그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유분증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무 팬티를 입는 것도 행복에 이르는 길은 아니었다.  예전처럼 속옷에 변을 보기는 하지만 이제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마지막 사내의 말에서 나는 온전한 자유란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오늘도 여전히 삶에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지혜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복종이냐 고독이냐
강요받고 복종하는 나와
다른 사람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 사이에서
우리는 붙잡혀 있다.
고독을 선택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진실로 혼자 있을 수 있고
온전히 자기 자신을 위해 살 수 있게 된다

 

 

성직자들은 거짓말을 하면 안 되고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살지 않냐고 따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부족함을 주말마다 교회에 가서 회개하지만 또다시 잘못을 저지르고 다시 용서를 받는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나는 그런 모습이 참 이상하게 보였다.  죄를 짓지 않으면 회개하지 않아도 될 텐데 왜 저런 수고를 감내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인간의 삶은 지속되며 환경과 계속 생산적인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내 삶 속에서 흔히 고민했던 바로 현재의 상황들이다.  그 중 체념과 수용의 일화에서 나는 성직자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다.  체념은 어쩔 수 없으니 '포기'하는 것이지만 수용은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도 계속 상황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개선하며 반성하는 자세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과거의 행동에 대한 원인을 찾았던 일은 앞으로의 행동에 당연한 이유가 되어 자칫 자신을 합리화하거나 체념하게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 맞는 자기반성의 시간은 결국 삶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새로운 변화에 크게 흔들리지 않게 한다.  우리는 깨어서 현재를 살면서 끊임없이 숨겨진 날개를 펼칠만한 자신만의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심리치료가 자기개발서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나의 내면을 어디론가 이끌어 가기 때문일 것이다.  뭔가 내 의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느낌이 싫어 이끌려 가는 느낌은 상당한 거부감을 동반한다.  닥터 호르헤의 이야기 심리치료 <이야기해줄까요>는 그런 거부감이 다른 심리 상담에 비해 훨씬 덜하다.  이야기의 결론은 어디에도 제시되어 있지 않다.  스스로 그 사유의 늪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닥터 호르헤의 사유의 늪이 궁금한 사람은 지금 이 책을 펼쳐 보라.  늪의 가장자리에만 머물다 나온 사람과 깊은 곳까지 걸어가 허우적거린 사람의 깨달음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것이다. 

 

 

* 참고:  게슈탈트 요법 1979에서 <아홉 개의 개명>
1. 현재를 살아라.  과거나 미래의 환상이 아닌 현재를 돌보라
2. 이곳에 살아라. 부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들에 몰두하라
3. 상상하는 것은 이제 그만, 현실을 경험하라
4. 불필요한 일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그만, 일단 시도해보는 것이 훨씬 낫다
5. 설명하고, 합리화하고, 평가하는 대신 너 자신을 받아들여라
6. 기쁜 일과 마찬가지로 기쁘지 않은 일도 받아들여라
7.'~해야만 한다'라는 의무는 너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마라
8. 너의 행동, 감정, 생각에 완전히 책임져라
9. 현재의 너의 모습 그대로 너 자신을 인정하라(다른 사람 모습도 그대로 인정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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