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과학 - 원자 무기에서 달 탐험까지, 미국은 왜 과학기술에 열광했는가?
오드라 J. 울프 지음, 김명진.이종민 옮김 / 궁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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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대라 함은 2차 대전 종전 후부터 소련의 붕괴가 일어났던 1991년까지의 약 45년간을 의미한다이 시기가 역사상 처음으로 과학기술과 국가 권력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심원하게 연계되었던 때가 아닌가 한다이 시기 중에 과학 기술의 기본 중심축이 서구 유럽에서 미국으로 바뀌게 되었다그러니까 냉전 시대의 과학기술은 미국의 과학기술의 변혁을 의미한다물론 이렇게 된 것은 과학 발전의 역사적 필연성에 기인한다과학 기술이 정부의 통제 하에 거대한 프로젝트를 완수하려는 시도가 성사되기 위해 필요한 과학의 혁명적 발전이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이루어졌다더 나아가 사회적으로도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는데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2차 대전 후 본격적으로 전쟁 없는 전쟁의 시대를 소련과 미국이라는 레짐 중심 체제 국가들이 열었다냉전의 시대에는 국가 체제의 유지와 홍보로서 과학기술이 중대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과학의 전문성과 정치권력의 적절한 관계가 설정됨으로써 체제의 우월성의 선봉에 과학 기술이 나서게 되었다경쟁은 물론 핵무기 개발로 시작되었다. 1945년 미국에 의해 원자폭탄이 개발된 이래 1954년 수소폭탄이 엄청난 파괴력과 함께 방사능 오염의 심각성을 일찌감치 알려주었다소련이 핵 개발에 성공한 것은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기 때문에 이 둘 간의 군비 경쟁은 가속화되었다. 개방 체제인 미국은 전시에 이미 물리학 생화학 및 화학의 기초적 발견을 바탕으로 원자폭탄과 레이더항생제 등을 이미 만든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과학자들과 정부의 긴밀한 관계는 이미 설정되었기 때문에 군수산업의 발달이 군산 협력체를 낳았다
  
이 책 냉전의 과학은 전후 세계의 과학 기술의 조망이라 할 만큼 많은 양을 커버하고 이들과 미국이라는 국가 행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매우 자세히 기술하고 있다세계가 곧 미국이라 할 만큼 그들의 과학 기술은 최선봉이었다원폭 개발 다음에 등장하는 미국의 우주 개발은 순전히 1957년 스푸트니크 사건 때문에 엄청난 발전을 거듭하며 마침내는 달 착륙에 성공한다이를 위해 NASA가 창설되었는데 이런 거대과학기술 조직은 미국에서 이미 노하우가 쌓여 있던 때였다원폭 개발이라든지 이와 비슷한 시기에 가속기 개발 또는 레이더 시스템 등이 이루어져 이른바 거대과학(Big Science)이 이미 전쟁 직후에 등장하였다대규모 고비용 장치가 강조되고 연구소가 기업적 구조를 가지게 됨으로 홀로 일하던 과학자가 거대 장치에 붙어 협력하는 연구팀으로 대체되었다이들 연구는 물리화학 및 엔지니어 및 생물학자들의 새로운 관계 설정이 가능하게 되어 과에서 그룹 단위로의 전환으로 학제간 연구 분야가 탄생하였다



이러한 정부 후원의 거대 프로젝트들이 생겨난 것은 비록 군사적 목적이 아니더라도 냉전의 산물이었다그러나 군비 경쟁으로 인한 군사 연구에 대한 반감으로 반대 운동도 일어났고 개발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흑백 논리에 의한 사회의 혼란도 일어나기도 한다더구나 베트남 전쟁과 맞물려 이에 대한 거대한 반대론은 미국 과학 팽창 생성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결과 또한 자초했다. 1980년부터의 2차 냉전 기간은 군수 산업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어 전후에 융성했던 군산 협력체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이러한 군비 경쟁으로 소련은 결국 파산 상태가 되어 1991년 해체된다
     
결국 냉전이라는 산물은 과학 기술 연구가 정부에 의해 강력 지원되는 결과를 낳았다대학산업체 및 군정부 업체는 냉전 기간 동안 정부라는 공동의 후원자와 국가의 국제적 우위 다툼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공유하며 발전하게 되었다냉전이 없어진 오늘날은 과학 기술이 냉전 시대의 국가 주도의 조직적 지원 등이 느슨해진 감이 없지 않아 있다그 당시만큼 정부와 군과학계 및 산업계 등의 조직화로 인한 거대 개발 체제는 향후 다시없을 수도 있을 만큼 시대는 많이 변해 있다
     
분명한 것은 지식이 팽창된 지 많은 시간이 지난 현재는 지식의 급팽창이 시작되고 진행될 때의 기간인 냉전시대와는 다르다는 것이다과학에 관하여 써진 책이기는 하나 사회과학 냄새가 난다군데군데 매우 딱딱한 서술형으로서 둔탁한 면이 없지는 않으나 냉전이라는 정치적 주제와 과학기술이라는 전혀 다른 주제가 혼합되어 일어난 일이 여간 흥미롭지가 않다. 20세기 후반의 과학 기술의 핵심과 정책에 알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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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권하다 - 삶을 사랑하는 기술
줄스 에반스 지음, 서영조 옮김 / 더퀘스트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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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 시절의 세네카는 3대 황제인 칼리굴라 때부터 클라우디우스를 거쳐 네로에 이르는 기간 동안 집정관 등 제국의 주요직을 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네로의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세네카는 제자였던 네로에 의해 자살 명령이 내려진다. 기록에 따르면 꿋꿋하고 침착하게 자살을 했다고 한다. 그동안의 기가 막힌 네로의 실정은 갈바의 내전을 야기하고 세네카가 죽은 뒤 3년 후 네로도 자살을 당하는데 흐느껴 울며 난리를 치는 바람에 자신을 죽이는데 애를 먹었다고 한다. 죽음에 그것도 자살 강요에 동요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냐마는 세네카는 무언가 자신을 다스리는 힘이 있었고 징징거리는 네로야 뭐 모친과 부인을 죽였던 잔인함이 있었어도 자신을 죽이는 데는 지나치게 인색하여 자신만의 슬픔이 제국을 뒤덮었다.
  
세네카는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였지만 제국의 유명한 스토아 철학자이기도 하였다
. 그는 평소에 자기 계발에 대해 심취하여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법에 대해 선 굵은 사유를 한 듯싶다. 스토아 철학은 일종의 실용 철학이라 할 수 있어 세상을 살아가는 법에 대한 철학적 단상이 많다. 로마시대에는 에픽테토스, 세네카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대표적 스토아 철학자들인데 이들의 신분은 노예, 귀족 그리고 황제이기 때문에 스토아철학은 로마시대에 신분을 가리지 않고 풍미하였으며 처세술에 대한 조언쯤으로 스토아철학을 규정지어도 큰 문제는 없을 듯싶다.


이 책 철학을 권하다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기술한다. 내용은 유명 철학자를 선정하여 그들의 사유를 개개인의 일상에 끌어들여 어떻게 생활을 하고 어떻게 자신을 다지고 삶을 어떻게 즐기는가에 대해서 기술한다. 에픽테토스의 자신의 마음 제어로부터 회복의 탄력성을 유연하게 강화하는 법에 대한 것에서 자신의 통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효율적인 결실을 가져다준다. 물론 세네카의 자살이 비교적 평온했던 이유는 그의 철학이 항상 자신의 마음 속 기대치를 조절케 하여 비관적인 미래도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길렀기 때문이다. 
  
에피쿠로스의 합리적 쾌락주의는 삶을 즐기는 기술로서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는 것들이 자신의 행복을 유지시켜 준다고 가르친다. 물론 깊은 사유를 통해서 관조를 하는 것도 세상을 바라보는 한 면이 될 수도 있겠다. 플라톤의 절대 가치론에서 올바른 가치를 추구하는 기술이 나올 수도 있고 소크라테스의 죽음처럼 세상을 좋게 하직하는 것도 기술이라면 기술이다. 물론 그전까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에 귀를 기울이며 때로는 회의론자의 철학을 받아들여 상황을 의심하고 비판하기도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장한다.
  
물론 많은 철학자들이 철학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실용적인 것에 질색한다. 철학 본유의 특유한 깊은 사유가 부족한 곳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나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으면 마음은 편해진다. 그들의 이야기들이 그렇게 심오한 얘기들은 결코 아니지만 어쩐지 그들이 그렇게 평안하게 살았을 것 같은 실행 속의 얘기처럼 들리기 때문에 더욱 와닿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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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과학철학
앨런 차머스 지음, 신일철 외 옮김 / 서광사 / 198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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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과학은 철학의 테두리 안에 원리를 바탕으로 한 연역 체계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특정의 원리를 내세워 이로부터 내려가는 분파적 과학적 체계는 근대과학의 입장에서는 모순이다. 최상의 원리를 내세운 이러한 과학은 체계적이나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틀릴 확률이 더 많고 데카르트 시대에 이르러서도 이러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기법은 변하지 않았다. 물론 비슷한 시기의 갈릴레이는 자신이 직접 관찰을 통하여 자연스레 아리스토틀의 자연이 많은 부분 틀렸을 것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여러 관찰들을 토대로 어떤 법칙에 도달하는 것을 귀납이라 하는데 귀납의 시작은 고로 근대과학 이후이다. 베이컨은 처음으로 실험을 주장하고 관찰과 귀납이 과학적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를 소박한 귀납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단순 언명으로는 귀납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흄은 귀납에 대한 문제를 처음으로 제기한 철학자로서 귀납적 추론이 원인과 결과에 의한 추론에 근거하더라도 그것이 맞다고 할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 귀납 논증의 결론은 근본적으로 항상 거짓이 될 개연성이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귀납은 관찰이 수반되고 이를 바탕으로 법칙이 파생되는데 소위 관찰언명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비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보편언명은 무제한적이기 때문에 비록 관찰언명의 수가 증가하더라도 참일 확률은 보편언명이 항상 무한대이므로 0일 수밖에 없다. 이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소위 개연적 참을 확률로서 제시하는 것이나 이 또한 직관으로부터 결별하는 결과를 도출하며 과학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상을 제시하지 못한다. 이는 과학적 법칙이 수많은 관찰 결과들의 바탕 위에 어떤 직관적 행위가 덧붙여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고로 귀납 원리의 합리화를 위해 세련된 논증이 필요한 것은 자명하다.
   
귀납주의 외에 다른 과학적 방법론을 논하기 위해 방향을 달리해보자. 우선 과학적 일반화가 참이라는 결론은 불가하다. 그러나 어느 특정 일반화가 거짓이라는 논증이 가능하면 과학적 방법에서의 논증이 진보된 것이 아닐까? 특히 어떤 이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서 반증 가능성은 이론의 과학성에 대해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과학적 방법으로서의 반증이라는 무기는 과학은 문제에서 출발하는데 문제 해결을 위하여 반증 가능한 가설을 내어 놓고 이러한 반증이 계속되어 과학은 진보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반증주의는 귀납주의와 함께 과학적 방법론에서 큰 위치를 차지한다.
    
방법론도 중요하지만 과학과 비과학을 비교하는 측면에서의 논쟁이 있을 수 있다. 이에 대한 입장은 합리주의, 상대주의 및 객관주의로 나누어질 수 있다. 합리주의는 과학 이론에 보편적 기준이 있다고 믿는다. 이에 비해 상대주의는 그 기준을 인정하지 않는다. ,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보편적 기준 대신에 과학 이론의 맞고 틀리고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보다시피 과학의 방법론이 완전히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이를 매우 강하게 주장한 파이어아벤트는 어떻게 해도 좋다를 주장함으로 귀납과 반증주의를 반박한다. , 그는 과학이 보편적인 규칙에 따라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한다. 포괄적으로 그가 맞다. 다만 방법론에 대한 비판일 뿐 해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의 또 다른 논증인 불가공약성은 어떤 의미에서 맞지 않다는 인상을 받는다. 불가공약성이라 함은 만약 경쟁관계에 있는 두 이론에 대해 논리적인  비교가 불가능함을 일컫는다. 그는 예로 뉴턴역학과 상대론은 서로 공약불가능의 관계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틀린 것이다. 특수상대론은 뉴턴역학을 포함하는 관계로서 서로 논리적으로 비교 불가능하지 않다. 그의 과학에 대한 지식이 필연적으로 다른 지식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데에는 동의한다.
    
과학철학에 대해 포괄적으로 잘 정리한 책, ‘현대의 과학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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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자의 시대 - 신의 죽음 이후 우리는 어떤 삶을 추구해왔는가
피터 왓슨 지음, 정지인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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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논쟁의 장으로 던져지는 종교의 운명을 마지막으로 붙들긴 했어도 결국 필연적으로 인지했던 철학자가 아마도 헤르더가 아니었나 싶다. 그의 새로운 역사철학은 그 몸부림의 산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종교라는 것은 항상 존재해 왔고 또한 신 없이 사는 사람들도 항상 있어 왔을 듯도 싶다. 다만 신 없이 살기 위해 용쓰던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사상의 필요성이 대두되기에는 시대가 따르지 못 했을 듯싶다. 수많은 시대가 지나고 18세기 유럽에 와서야 통찰과 요령과 구체적인 지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초월적 차원 없이도 살만한 삶의 양식은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이는 주제 상 과학적 접근 방법으로는 안 된다.
    
니체는 신 없이 사는 세상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그의 저작은 에로스, 황홀경, 과잉이라는 한 시대의 생활패턴을 낳게 했으며 믿음은 유익해서이지 더 이상 득이 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독설을 정당화시켰다. 더 나아가 고정된 인간 본질은 없으며 모든 자아는 상호 비일관성이고 더욱이 조화될 필요조차 없다는 반본질주의의 원인 제공자였다. 철학적으로는 불변 실재를 포기하는 것이고 인간 사회적으로는 종교적 무리 짓기를 그만두면 인류가 도덕적으로 진보를 이룬다는 주장도 나오게 되는 단초적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그의 영향으로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자연에 은둔하는 그룹이 형성되는데 196,70년대의 미국의 히피 문화의 원조로 보면 된다.
    
반종교적인데 덧붙여 반과학적 학파로서 후설의 현상학파는 경험이 앎의 유일한 형식이라 주장한다. 고로 보통 대상들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나 개념들은 우리 의식에 존재하므로 의식은 물질이 아니며 세계를 만나고 경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현실의 지각은 의식 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세계의 이해에 수단이 필요 없고 만물을 그대로 보이는 바대로 보면 된다. 경험이라는 것은 개체적이므로 사람이란 자기 인생에서 일어난 사건의 총합일 뿐 사람에 대한 정의는 존재 않으며 세계에 각자 개별적 관점이 있을 뿐이고 이 관점은 절대로 억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절대 원리나 절대 인간 본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도 종교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을 단지 기계로 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생명의 약동으로 보는 생철학의 관점도 비종교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인류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심리학적으로 대체한 프로이트는 종교를 심리학의 부분 집합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신성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에서 나온 도덕적 기반이 중요하고 개인과 존엄 및 고귀함에 대한 믿음을 고취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피터 왓슨의 무신론자의 시대는 무신론을 얘기하는 책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 종교와 무종교가 어떻게 논증적으로 발전하여 왔으며 무신론적 사유가 사회에 끼친 영향과 종교와의 중간적 화해 등 19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된 이러한 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가에 대한 진화론적 서술이다. 통틀어 인류사의 문화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나 이러한 변화가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므로 가히 유럽과 미국사를 다룬 책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피터 왓슨은 생각의 역사의 저자로서 그의 방대한 지식의 방출이 이 책에서도 크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종교적 담론에서 그치지 않고 그 영향은 현대예술에서도 1880년부터 유럽에서 시작되어 세속적인 것을 기리는 예술로서 물리학 실험, x-, 전파, 전자들을 끌어내던 혁신처럼 예술 전반에 혁신이 자리 잡았다. 세속이 자리를 잡으므로 교회와 신의 자리는 없었다. 미래파,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등 이 모든 것들이 예술의 언어를 변화시키므로 경험의 질서를 개혁했으며 이는 기존 종교적 질서에 반항하는 커다란 축으로 작동하였다. 물론 이 영향은 소위 지적인 것을 추구하는, , 어느 정도 지성이 요구되는, 모든 분야에서 반동적으로 물밀 듯이 나타났다.
    
현대의 종교는 그 옛날의 종교처럼 종교 전체와 메시지와 빛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 고로 종교는 불신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이미 전능을 잃어버렸으며 유한한 존재 이매 이는 곧 종교의 축소를 의미하며 그곳에 다른 어떤 것이 자리 잡아야 한다. 구심점이 없다면, 즉 삶에 어떤 방향성이 없다면 삶의 의미는 오직 그 강렬함 속에만 존재한다는 어귀는 매우 강하게 다가온다. 분명히 자신의 삶을 고독으로 물들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 지성의 능력을 펼쳐 보일 의지도 갖지 못한다. 인간 중에 더 차분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신의 죽음에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결국 사흘만 굶어도 빵 부스러기가 신이 될 수 있다는 본능적 명제가 존재하는 한, 종교는 전반적으로 진화하는 지적 기후의 영향 하에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결국 개체의 수평성이 관건이며 그들 각자의 행복의 관점이 종교가 아닐 수도 있음은 틀림이 없다.
    
피터 왓슨의 역작! ‘무신론자의 시대이다. 대단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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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 - 무엇이 과학인가
팀 르윈스 지음, 김경숙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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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포퍼의 반증법은 정통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근본 의문은 마르크스의 사상이나 프로이트의 심리학 등이 진위가 불분명하므로 폐기가 되지 않는데 정확성을 추구하는 과학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데서 출발한다. 이를 귀납의 문제 제기를 통해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려는 시도로서 비록 과학적 일반화가 참이라는 결론은 불가할지라도 어느 특정 일반화가 거짓이라는 논증은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이를 반증주의라 하는데 그는 토마스 쿤과 함께 과학의 철학적 정립에 큰 공헌을 한 장본인이다.
    
과학적 일반화라는 언급은 물론 연역을 의미하고 특정 일반화의 거짓이 가능하다는 것은 귀납의 한 방법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반증법을 통해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 구분의 기준을 제시하였고 크게 보면 이를 통해 오늘날 몇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는 지적설계론 등은 과학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물론 경제학이 수학에 의해 시장 원리 등을 설명하려 한다손 치더라도 이런 관점에서는 과학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이 어느 하나로서 규정될 수는 없을지라도 과학이 어떻게 진보해 왔느냐에 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구분의 체계가 매우 중요하다.
    
토마스 쿤은 과학의 진보를 혁명을 통해서 설명을 시도하였는데 그때 혁명은 패러다임으로 본보기로 봄이 타당하다. 그러한 혁명적 성취 후에 정상과학이 도래하고 다시 혁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쿤은 보았다. 다만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의 시대라는 것은 주어진 법칙(예로 뉴턴의 법칙)에서 과학을 발전시키는 높은 지적인 행위가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진보가 없는 단조로운 행위라는 것을 절대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의 진보가 혁명과 정상과학 행위의 반복에서 일어났다면 물론 과학이 수렴적 발전을 했다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과학이 세상에 대해 점점 더 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입장이고 이를 과학적 실재론이라 한다. 이에 반하여 미결정성의 가능성 문제나 비관적 귀납 논증이 있을 수 있고 이로부터 과학이 진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기는 하나 후에 나온 법칙이 전에 나온 법칙을 포함하는 구조로서의 과학의 진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논증은 틀린 것이다. 물론 과학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생산적인 오류가 다른 더 큰 생산성을 가진 오류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이라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오류라 함은 실재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의미한다.
    
이 책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는 과학이란 무엇인가와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두 개의 화두에 대해 설명을 가하는데 전자는 좀 더 포괄적인 방법이 동원되며 후자는 이타심, 본성이 인간에게는 과연 있는가를 논하고 자유 의지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지 않을 수도 있음을 설파한다. 후편의 이런 주제는 다분히 생물 관련 분야에서 연구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질문들이다. 얼핏 보기에 확실해 보이는 것들이 실지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슈는 물리학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의 영역도 방법론에서는 포괄적 설명이 가능할지라도 결국 세부적으로는 서로 범접할 수 없는 분야마다의 특수성이 있음이다. 환원주의? 맞다고 단정짓기에는 매우 성급한 주의가 아닐까 한다.
    
1부에서의 과학에 대한 포괄적 성찰에 의한 방법론 2부에서의 애매모호한 인간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로서 인간 본성조차 불확실성의 틀 안에 놓아버려 흥미를 유발시키는 매우 잘 써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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