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논쟁의 장으로 던져지는 종교의 운명을 마지막으로 붙들긴 했어도 결국 필연적으로 인지했던 철학자가 아마도 헤르더가 아니었나 싶다. 그의 ‘새로운 역사철학’은 그 몸부림의 산물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종교라는 것은 항상 존재해 왔고 또한 신 없이 사는 사람들도 항상 있어 왔을 듯도 싶다. 다만 신 없이 살기 위해 용쓰던 사람들을 이끌어 주는 사상의 필요성이 대두되기에는 시대가 따르지 못 했을 듯싶다. 수많은 시대가 지나고 18세기 유럽에 와서야 통찰과 요령과 구체적인 지식이 나오기 시작한다. 초월적 차원 없이도 살만한 삶의 양식은 있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물론 이는 주제 상 과학적 접근 방법으로는 안 된다.
니체는 신 없이 사는 세상에 대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그의 저작은 에로스, 황홀경, 과잉이라는 한 시대의 생활패턴을 낳게 했으며 믿음은 유익해서이지 더 이상 득이 되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다는 독설을 정당화시켰다. 더 나아가 고정된 인간 본질은 없으며 모든 자아는 상호 비일관성이고 더욱이 조화될 필요조차 없다는 반본질주의의 원인 제공자였다. 철학적으로는 불변 실재를 포기하는 것이고 인간 사회적으로는 종교적 무리 짓기를 그만두면 인류가 도덕적으로 진보를 이룬다는 주장도 나오게 되는 단초적 역할을 한 장본인이다. 그의 영향으로 20세기 초에 유럽에서 자연에 은둔하는 그룹이 형성되는데 196,70년대의 미국의 히피 문화의 원조로 보면 된다.
반종교적인데 덧붙여 반과학적 학파로서 후설의 현상학파는 경험이 앎의 유일한 형식이라 주장한다. 고로 보통 대상들은 실제 세계에 존재하나 개념들은 우리 의식에 존재하므로 의식은 물질이 아니며 ‘세계를 만나고 경험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현실의 지각은 의식 없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세계의 이해에 수단이 필요 없고 만물을 그대로 보이는 바대로 보면 된다. 경험이라는 것은 개체적이므로 사람이란 자기 인생에서 일어난 사건의 총합일 뿐 사람에 대한 정의는 존재 않으며 세계에 각자 개별적 관점이 있을 뿐이고 이 관점은 절대로 억압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현상학은 절대 원리나 절대 인간 본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과학도 종교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세상을 단지 기계로 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생명의 약동으로 보는 생철학의 관점도 비종교적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인류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심리학적으로 대체한 프로이트는 종교를 심리학의 부분 집합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는 신성이 아니라 인간의 경험에서 나온 도덕적 기반이 중요하고 개인과 존엄 및 고귀함에 대한 믿음을 고취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피터 왓슨의 ‘무신론자의 시대’는 무신론을 얘기하는 책이 아니다. 인간의 삶에 종교와 무종교가 어떻게 논증적으로 발전하여 왔으며 무신론적 사유가 사회에 끼친 영향과 종교와의 중간적 화해 등 19세기 말 유럽에서 시작된 이러한 변화가 시간이 지나면서 어떻게 변모되어 왔는가에 대한 진화론적 서술이다. 통틀어 인류사의 문화적 관점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나 이러한 변화가 유럽에서 시작되었으므로 가히 유럽과 미국사를 다룬 책이라 보아도 무방하다. 피터 왓슨은 ‘생각의 역사’의 저자로서 그의 방대한 지식의 방출이 이 책에서도 크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종교적 담론에서 그치지 않고 그 영향은 현대예술에서도 1880년부터 유럽에서 시작되어 세속적인 것을 기리는 예술로서 물리학 실험, x-선, 전파, 전자들을 끌어내던 혁신처럼 예술 전반에 혁신이 자리 잡았다. 세속이 자리를 잡으므로 교회와 신의 자리는 없었다. 미래파, 다다이즘, 아방가르드 등 이 모든 것들이 예술의 언어를 변화시키므로 경험의 질서를 개혁했으며 이는 기존 종교적 질서에 반항하는 커다란 축으로 작동하였다. 물론 이 영향은 소위 지적인 것을 추구하는, 즉, 어느 정도 지성이 요구되는, 모든 분야에서 반동적으로 물밀 듯이 나타났다.
현대의 종교는 그 옛날의 종교처럼 종교 전체와 메시지와 빛에 대해 스스로 확신하지 못한다. 고로 종교는 불신앙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은 이미 전능을 잃어버렸으며 유한한 존재 이매 이는 곧 종교의 축소를 의미하며 그곳에 다른 어떤 것이 자리 잡아야 한다. 구심점이 없다면, 즉 삶에 어떤 방향성이 없다면 삶의 의미는 오직 그 강렬함 속에만 존재한다는 어귀는 매우 강하게 다가온다. 분명히 자신의 삶을 고독으로 물들여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기 지성의 능력을 펼쳐 보일 의지도 갖지 못한다. 인간 중에 더 차분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신의 죽음에 별 문제를 느끼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니다. 결국 사흘만 굶어도 빵 부스러기가 신이 될 수 있다는 본능적 명제가 존재하는 한, 종교는 전반적으로 진화하는 지적 기후의 영향 하에 있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결국 개체의 수평성이 관건이며 그들 각자의 행복의 관점이 종교가 아닐 수도 있음은 틀림이 없다.
피터 왓슨의 역작! ‘무신론자의 시대’이다. 대단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