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포퍼의 반증법은 정통 과학과 사이비과학을 구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다. 그의 근본 의문은 마르크스의 사상이나 프로이트의 심리학 등이 진위가 불분명하므로 폐기가 되지 않는데 정확성을 추구하는 과학과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는데서 출발한다. 이를 귀납의 문제 제기를 통해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려는 시도로서 비록 과학적 일반화가 참이라는 결론은 불가할지라도 어느 특정 일반화가 거짓이라는 논증은 가능함을 주장하였다. 이를 반증주의라 하는데 그는 토마스 쿤과 함께 과학의 철학적 정립에 큰 공헌을 한 장본인이다.
과학적 일반화라는 언급은 물론 연역을 의미하고 특정 일반화의 거짓이 가능하다는 것은 귀납의 한 방법이라고 얘기할 수 있다. 반증법을 통해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 구분의 기준을 제시하였고 크게 보면 이를 통해 오늘날 몇 학자들에 의해 주장되는 지적설계론 등은 과학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 있다. 물론 경제학이 수학에 의해 시장 원리 등을 설명하려 한다손 치더라도 이런 관점에서는 과학이 아닌 것은 자명하다. 과학과 비과학의 구분이 어느 하나로서 규정될 수는 없을지라도 과학이 어떻게 진보해 왔느냐에 논거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구분의 체계가 매우 중요하다.
토마스 쿤은 과학의 진보를 혁명을 통해서 설명을 시도하였는데 그때 혁명은 패러다임으로 ‘본보기’로 봄이 타당하다. 그러한 혁명적 성취 후에 정상과학이 도래하고 다시 혁명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쿤은 보았다. 다만 쿤이 말하는 정상과학의 시대라는 것은 주어진 법칙(예로 뉴턴의 법칙)에서 과학을 발전시키는 높은 지적인 행위가 이루어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진보가 없는 단조로운 행위라는 것을 절대 의미하지 않는다.
과학의 진보가 혁명과 정상과학 행위의 반복에서 일어났다면 물론 과학이 수렴적 발전을 했다는 가정이 내포되어 있다. 과학이 세상에 대해 점점 더 정확한 지식을 제공한다는 입장이고 이를 ‘과학적 실재론’이라 한다. 이에 반하여 미결정성의 가능성 문제나 비관적 귀납 논증이 있을 수 있고 이로부터 과학이 진보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기는 하나 후에 나온 법칙이 전에 나온 법칙을 포함하는 구조로서의 과학의 진보이기 때문에 이러한 논증은 틀린 것이다. 물론 과학이 시간이 지나면서 더 정확한 지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생산적인 오류가 다른 더 큰 생산성을 가진 오류에 의해 대체되는 과정이라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오류라 함은 실재론적 관점에서 인간의 한계를 의미한다.
이 책 ‘과학한다, 고로 철학한다’는 과학이란 무엇인가와 과학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두 개의 화두에 대해 설명을 가하는데 전자는 좀 더 포괄적인 방법이 동원되며 후자는 이타심, 본성이 인간에게는 과연 있는가를 논하고 자유 의지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지 않을 수도 있음을 설파한다. 후편의 이런 주제는 다분히 생물 관련 분야에서 연구될 수 있는 애매모호한 질문들이다. 얼핏 보기에 확실해 보이는 것들이 실지로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이슈는 물리학에서는 나올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의 영역도 방법론에서는 포괄적 설명이 가능할지라도 결국 세부적으로는 서로 범접할 수 없는 분야마다의 특수성이 있음이다. 환원주의? 맞다고 단정짓기에는 매우 성급한 주의가 아닐까 한다.
1부에서의 과학에 대한 포괄적 성찰에 의한 방법론 2부에서의 애매모호한 인간에 대한 최근의 연구들로서 인간 본성조차 불확실성의 틀 안에 놓아버려 흥미를 유발시키는 매우 잘 써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