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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라이프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3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환하게 웃는 백발의 앨리스 먼로의 사진을 보았을 때 처음 든 생각은 ‘이 할머니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였다. 어렸을 때 할머니 무릎을 베고는 옛날이야기를 듣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할머니의 모습도 할머니가 들려주던 이야기도 심지어는 할머니의 목소리도 흐릿하지만 여름날 할머니가 부쳐주던 부채바람이나 까슬까슬하던 할머니 옷 같은 기억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런 기억들이 더 오래가는 법이니까. 꼬꼬마 시절의 이야기를 기대했기 때문인지 앨리스 먼로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죄. 그녀는 다른 것에 관심을 기울였었다. 결연하고 탐닉적인 관심을 아이가 아닌 다른 것에 기울였었다. 죄. (p. 39, 일본에 가 닿기를)”로 표현하듯이 기차에서 사랑을 나누느라 아이를 잠시 잃어버린 엄마의 이야기였으니까.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이라는 이유로 노벨상을 받은 그녀의 소설집답게 열편의 단편소설과 이야기가 아니라 인생이기 때문에 쓰는 글에 트롤과 같은 그에 대해 더 써넣을 자리는 없고 밝힌 <디어 라이프>를 포함한 자전적 이야기 네 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편이라는 특성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가졌었지만 의외로 쉽게 읽히지 않았다. 실린 작품이 모두 1940~1950년대의 배경이고 등장인물들도 비슷한 인물들이 많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살면서 겪을 수 있는 이야기들을 담담히 써 내려가고 있어서 그런지 비숫한 내용이 많다고 느껴졌었음에도 말이다.
요양원에서 교사 일을 하다가 의사와의 사랑과 이별을 그린 <아문센>, 대부분의 작품이 여자가 주인공이지만 언청이지만 남자가 주인공인 <자존심>, 열 네살 소녀의 불면증을 그린 <밤> 등 각기 다른 주인공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곳에서 나는 왠지 모를 비슷한 느낌을 말이다. 아마도 먼로의 작품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절제된 언어로 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시인의 시에 대해 시인에게 완벽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너무 과하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게. 딱 적당히. (p. 330)”란 말이 먼로의 작품과 딱 맞아 떨어지는 구절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너무 모자라기 때문에 적당히 그녀의 단편을 딱 적당히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안식처>에서 이야기를 했듯이, “여자들은 무엇에 헌신하든 그것 때문에 바보 취급을 받는다.(p. 166)”는 세월을 살아온 그녀였기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구절도 많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었던 구절이다.
“중요한 건 행복해지는 거야.” 그가 말했다. “뭐가 어떻든 간에. 그냥 그러려고 해봐. 넌 할 수 있어. 하다보면 점점 쉬워질 거야. 주변 상황과는 아무 상관없어.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넌 모를 거야. 모든 걸 받아들이면 비극은 사라져. 혹은 가벼워지지. 어쨌든 그러면 그저 그 자리에서 편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돼.” (p. 142, 자갈)
그때 나는 생각했다. 오래 살다보면 많은 문제들이 그냥 해결된다고. 선택된 사람들만 들어가는 모임에도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어떤 장애를 가지고 살았건 그 시기에 이르면 많은 문제들이 상당수 해결된다. 모두의 얼굴이 고통을 경험했다. 당신의 얼굴만이 아니라. (p. 197, 자존심)
오랫동안 인생을 살아온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그래서 앨리스 먼로가 했기에 더욱더 크게 다가왔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 속에 많은 삶을 담아내고 있어 받아들일 역량이 크지 않기에 개인적으로는 어렵다고밖에 표현을 할 수 없을 것 같다. 장편소설이라면 작가들이 나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기도 하건만, 단편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어 그 깊이를 깨우치지 못한 눈이 한스럽기만 하였다. 장편 소설 못지않게 며칠을 공들여 읽었건만 마지막 장을 덮으니 첫 장이 흐릿해진 나에게는 너무 어려운 『디어 라이프』고, 앨리스 먼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