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1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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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이맘때가 되면 출판계나 독자들의 시선은 지구 반대편으로 가곤한다. 한림원의 발표로 인해 이미 출간된 책이 재조명되거나 아예 새로운 옷을 입고는 다시 세상에 나오거나 소개가 미흡한 작가의 경우 이에 보상이라도 하듯이 관련 서적들이 양산되기도 한다. 노벨문학상 타이틀이 둘러진 작가의 작품은 그것만으로도 다소 난해한 이야기라도 꾹 참고 읽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마치 자신의 취향과는 조금 어긋나더라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익혀두는 유행어라든지 유행가 같이 한동안 회자되는 작가이므로 읽어 두어야 하는 것같이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매년 이맘 때 즘엔 주위에서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까지 감수하면서 노벨상 작가의 책을 한번씩 잡게 된다. 그러한 심리가 작용해서인지 올해는 오르한 파묵의 「하얀 성」을 읽었다. 솔직히 말하면 오르한 파묵의 다른 책에 비하여 분량이 많지 않은 것도 고르게 된 이유 중 하나이다. 아직까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은 많이 접해보진 못했으니까 그나마 빨리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란 얄팍한 계산에서 나온 거지만 이번 예상은 완전히 틀렸었다. 일주일 가까이 씨름하면 읽은 책이므로...

 

 오르한 파묵의 또 다른 소설 「고요한 집」의 등장인물인 역사학자가 기록보관소에서 발견한 이야기라고 시작하는 「하얀 성」은 주인공이 베네치아에서 나폴리로 가는 길에 터키함대의 공격을 받고 이스탄불에서 노예생활을 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1인칭으로 주인공이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풀어가고 있는데, 과학에 관심이 많은 호자라는 사람이 나를 노예로 삼았는데 놀랍게도 생김새가 나와 똑같이 닮아 있었다. 이렇게 국적도, 살아온 방식도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지식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는 이야기이다.

 

 동서양, 고금을 통틀어 가장 난해하면서 근원적인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여서 그만큼 더디게 읽히고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는 소설이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은 많이 있으나 동양과 서양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지정학적인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 오르한 파묵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인 것 같았다. 덕분에 나도 한 동안 답도 나오지 않은 ‘나’ 자신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 것 같았다. 그러한 잡생각(?) 때문에 더디게만 읽어간 것은 흠이었지만...^^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해도 희미한 꼬리조차 잡히지 않는 ‘나는 왜 나인가’란 물음보다 터키함대의 공격을 회상하면서 주인공인 ‘나’가 회상하는 “지금에 와서는, 선장이 그렇게 겁에 질려 버리면서부터 애 인생이 조금씩 달라져 왔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부터 결정된 인생은 없다는 것을, 모든 이야기는 실상 우연의 연속이라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사실을 아는 사람조차,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우연히 경험했던 것들이 사실은 필연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다. (p. 17-18)”는 소설 초반의 글이 더욱 기억에 남는 아직은 어려웠던 소설 「하얀 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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