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비 사회를 넘어서 - 계획적 진부화라는 광기에 관한 보고서
세르주 라투슈 지음, 정기헌 옮김 / 민음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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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을 함부로 사용하고 멀쩡한 물건도 유행이 지났다는 다소 진부한 핑계로 새로운 물건을 찾는 것을 보는 어르신들의 한마디는 늘 ‘요즘 젊은 것들은 배를 곯지 않아서 그렇다’이다. 그렇게 아껴 쓰고 절약하는 것이 무조건으로 옳은 일이고 미덕으로 배웠지만 언젠가 본 절약으로 내수경제가 어려워진다는 기사한토막이 그런 확고한 신념에 찬물을 끼얹을 때 세르주 라투슈의 「낭비사회를 넘어서」를 보게 되었다.

 

 같은 주제의 먼저 나온 책 번역본에 머리말이나 해제를 덧붙일 요량으로 노트를 정리하면서 쓰게 되었다는 이 소책자는 작고 가볍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철학자가 쓴 글이어서 그런지 프랑스인이 쓴 글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프랑스 철학자가 쓴 글이어서 그런지 무거운 주제에다 쉽지 않은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자는 분명한 필요를 위해서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기 위해 성장하는, 성장이 모든 가치를 흡수해버리는 성장 사회의 종착점인 소비 사회를 경고한다. 따라서 이러한 대량소비를 필요로 한 대량생산을 경고하면서 생산성 향상이 소비 증대를 강요하는 데 그치지 않고 더 강력하게 고용을 위협하는 요소가 된다고 진단한다. (18쪽) 그리고 「버리기 위해 만들기」의 저자 자일스 슬레이드의 ‘인위적으로 공산품의 수명을 단축시켜 새로운 소비를 자극하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기술을 가리키는 포괄적인 개념’인 계획적 진부화를 소개하면서 산업화를 주도해온 기업들이 계획적 진부화를 통해 우리의 소비를 조장하면서 낭비 사회를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계획적 진부화란 용어가 쉽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수많은 공산품들의 수명이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결코 길지 않으며, 새로운 제품을 구매하고 나서 몇 달이 지나면 신제품이 나오는 것을 경험한 이들은 누구나 한 번쯤 계획적 진부화를 겪고 있다고 한다. 그것의 근거로 전구 제조 회사 카르텔과 ‘1000시간 위원회’나 유럽과 미국의 사라진 경전철 등은 우리 삶에 깊게 뿌리내린 계획적 진부화의 현주소를 보여주기에 충분하였다. 게다가 일회용제품이 갈수록 빠른 속도로 확산되면서 상품은 쓰레기로 버려지고, 인간은 소외되거나 사용 후 해고되는 등 상품을 넘어 인간까지 포함하는 일반화된 쇠퇴는 지금도 조금씩 보이고 있는 성장위주의 부작용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이에 저자는 탈성장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다. 지속가능한 성장을 버리고 계획적 진부화를 제품의 지속 가능성, 수리 가능성으로 대체함으로써 자연 자원 채취량을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하며 성장 없는 번영과 검조한 풍요의 사회로 전환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하며 필요에 의한 성장을 강조한다. 하지만 삶의 많은 부분을 기업에서 나오는 생산물에 의존하고 있는 고도 산업사회인 요즘에는 말처럼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지속 가능한 성장’ 이면에 숨겨진 ‘계획적 진부화’에 대해서 고민해보아야 할 때인 것은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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