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조건 1 - 두 갈래 미래
고미카와 준페이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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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 의 마지막 부분이다. 『인간의 조건』 제1권 <두 갈래 미래>편의 첫 장의 기찻길을 보고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이 시였다. 사실 프로스트의 시에 대해서는 크게 아는 바가 없고, 이 시도 제목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지만 두 갈래의 미래란 제목과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기찻길은 가지 않은 길을 연상시키기엔 충분하였다.

 

 1945년 8월 13일, 소속 부대원 전원이 전멸하는 소련군과의 전투 후 반생반사의 상태로 겨우 출생지로 돌아 온 고미카와 준페이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인간의 조건』이라는, 앙드레 말로의 작품과 제목이 같아서 고민도 많이 했지만 결국 이 제목밖에 붙일 수 없었다는 『인간의 조건』을 발표한다.

 

 6권의 적지 않은 분량에 대하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무거운 내용을 상상하고 시작하였지만, 재미있게 쓸 수 있느냐 없느냐는 별도의 문제로 하고 무엇을 쓰든지 그것이 이야기가 되려면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다. 그런 법이다. 단 둘이 걷는 길은. 두서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건들이지 않는다. 건드리고 싶지만 서로 피하고 있다. (p. 11)'는 첫 문장부터 눈길을 끌었다.

 

 전쟁이 한창인 1943년 주인공 가지는 언제 소집영장을 받을지 몰라 미치코의 사랑을 애써 외면하고 있지만, 징집된 친구 가게야마의 마지막 충고와 때마침 부장의 제안을 받고는 소집면제의 특권과 라오후링 광산으로 파견을 가면서 미치코와 결혼을 한다. 광산의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 가지는 동료 오키시마와 함께 광부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한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현실과 관리인들의 부패 등이 얼키고 설켜 지속적으로 출광예정량을 채우지 못하는 라오후링 광산만의 문제 등에 부딪힌다. 게다가 광산의 현장감독 오카자키와는 사사건건 대립하게 되면서 둘의 골은 깊어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군으로부터 중국인 포로를 이송 받아 ‘특수광부’라는 미명하에 그들을 관리하게 되는 가지는 그들마저도 인간적으로 대우를 해 주려고 노력한다. 그 와중에 서로 사랑하게 된 포로 중 한명과 광산위안부의 결혼을 계획하면서 <두 갈래 미래>편이 끝이 난다.

 

 우리에게나 중국에게나 군국적인 일본을 곱지 않은 상대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솔직히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일본인 작가가 쓴 대하소설이라는 점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처음 1권을 읽고 난 지금은 고미카와 준페이가 보여준 1권의 가지라면 앞으로의 행보도 기대가 된다. 언젠가 본 책에선 전쟁은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같이 웃던 전우가 싸늘한 고깃덩어리가 되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총을 쏴야만 하는 그런 지옥과도 같은 곳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그런 전쟁 속에서도 상상 이상의 인간성 말살에 혐오감을 느끼고 최소한의 인간이 되고자 하는 가지가 다른 일본인들과는 달리 보였던 것이다. 책 뒷장의 서경식 교수의 말처럼 ‘침략당한 민족이 입장에서 바라보면 불충분한 점이 많지만, 바로 전쟁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조건을 일본인 스스로 자문한 작품’이기에 가지의 다음 행보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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